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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과속을 하는 이유

2019년 05월 05일 06:00
이미지 확대하기수백만년 동안 광할한 사바나에서 수렵과 채집을 하며 지낸 우리 조상들. 지금까지도 우리는 속도를 좋아한다. 사진 연합뉴스
수백만년 동안 광할한 사바나에서 수렵과 채집을 하며 지낸 우리 조상들. 지금까지도 우리는 속도를 좋아한다. 사진 연합뉴스

도로교통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국가에 큰 이익이 됩니다.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고요. 교통범칙금 이야기입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교통 범칙금과 과태료 건수는 총 1649만 건, 금액은 약 8000억 원에 이릅니다. 교통 신호를 걸핏하면 무시하고 과속으로 내달리는 운전자는 정부 재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교통 법규 위반 중에 제한 속도 위반은 가장 흔한 위반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위반은 해본 적이 없는 분이라도 과속 딱지를 끊어본 일은 아마 한두 번은 있으실 겁니다. 인간은 왜 이렇게 빨리 달리고 싶어하는 걸까요.

 

빠르게, 빠르게, 더 빠르게

인류의 조상은 수백만 년 동안 광활한 사바나에서 수렵과 채집을 하며 지냈습니다. 따라서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능력은 우리 조상에게 아주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사실 네 발로 걷다가 두 발로 걷게 된 이유도 바로 더 빨리, 더 멀리 다니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물론 다른 가설도 많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속도를 좋아합니다. 상당수의 운동 경기는 단지 빠름에 따라서 우열을 매깁니다. 100m 달리기부터 마라톤으로 이어지는 육상 경기뿐 아니라, 수영, 조정, 스키, 사이클도 모두 속도가 유일한 잣대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와 같은 호칭은, 사실 고작해야 100m 달리기는 다른 사람보다 몇 초 빨리한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부와 명성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습니다. 단지 ‘빠르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두 다리로 달리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6,000년 전 일입니다. 오로지 빠른 이동을 위해 한 종의 동물을 완전히 길들였습니다. 말고기의 맛은 소고기에 미치지 못하고, 성장하는 속도는 돼지에 뒤집니다. 닭처럼 알을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처럼 귀염을 부리며 인간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오직 빠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인위적인 육종을 통해서 말은 점점 더 빨라졌습니다. 경주용 말은 과도할 정도로 빠르게 달립니다. 야생마와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드디어 인간은 말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자전거와 기차가 등장하고, 이내 자동차가 등장했죠. 자동차는 아주 빠를 뿐만 아니라, 운전자가 그 속도와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점점 빨라졌습니다. 과도할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우리는 승용차를 고르면서도 “제로백”이 몇 초인지 물어봅니다. 국내에는 시속 120km 이상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최고 속력이 시속 300km라며 자랑합니다. 자동차의 속도계는 시속 240km까지 표시할 수 있습니다. 마치 그런 속도로 달릴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빠른 것을 좋아합니다. 본성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속도를 찬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도한 속도는 오히려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퍼블릭도메인
속도를 찬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도한 속도는 오히려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퍼블릭도메인

분노와 속도

 

속도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잠시 마음을 놓으면 점점 액셀러레이터에 힘이 들어갑니다. 추월이라도 당하면 괜한 경쟁심이 생깁니다. 평소에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이었다면 문제가 커집니다. 지기 싫은 마음에 핸들을 움켜잡습니다. 본 적도 없는 사람과 분노의 질주극을 벌입니다. 과태료는 물론이고, 자칫하면 많은 사람이 위험해집니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심리학과 제리 디펜바커 교수는 분노와 사고의 관련성을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사고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숙련되지 않은 운전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분노였습니다. 앞 차에 너무 가까이 붙는 것, 제한 속도 초과, 난폭한 방향 전환이 모두 분노와 관련되어 있었죠. 아주 얌전하고 신사적인 분인데도, 핸들만 잡으면 돌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운전대를 잡아야 평소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과속의 몇 가지 그럴듯한 원인을 제시해보겠습니다. 한번 답을 맞혀보십시오.
 

 평소 화를 잘 내는 성격

 남자

 운전 실력이나 운전 경험

 도로의 느린 속도나 차량 정체

 다른 운전자의 매너없는 행동이나 법규 위반, 욕설


매너가 운전자를 만든다

일단 평소 성격은 별로 관련이 없었습니다. 물론 원래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운전할 때도 급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남자라고 속도를 더 내는 것도 아닙니다. 남녀 차이는 별로 없었고, 어떤 경우에는 여성이 더 난폭 운전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운전 실력이나 운전 경험도 별로 관련이 없었습니다.

차량 정체는 원인 중의 하나였지만, 보다 중요한 원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타 운전자의 매너없는 행동입니다. 난폭 운전이 난폭 운전을 부르고, 광란의 질주를 일으키는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매너가 사람을, 아니 좋은 운전자를 만듭니다. 그럼 어떤 행동이 매너없는 운전 습관일까요? 다음과 같습니다. 정말 목록만 봐도 화가 납니다. 

 야간에 뒤 차가 밝은 상향등을 켜고 따라오는 행위
 야간에 마주 오는 차량이 헤드라이트 빛을 줄이지 않는 행위
 내 뒤에 따라오는 차도 없는데, 굳이 내 앞으로 끼어드는 행위
 끼어들려고 하는데, 오히려 옆 차선의 차가 속도를 높이는 행위
 뒤에서 오는 차를 보지도 않고, 차선을 바꾸는 행위
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행위(소위 칼치기)
 뒤에서 오는 차가, 자신의 차 뒤꽁무니에 바싹 달라붙는 행위

 

반칙과 사회적 과속

 

이미지 확대하기반칙과 난폭 운전 등 매너 없는 운전은, 다른 운전자의 연쇄적인 난폭 운전, 과속 운전을 부른다. 속도를 사랑하는 인간에게 ‘알아서 속도를 줄이시오’라는 조언을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키피디아
반칙과 난폭 운전 등 매너 없는 운전은, 다른 운전자의 연쇄적인 난폭 운전, 과속 운전을 부른다. 속도를 사랑하는 인간에게 ‘알아서 속도를 줄이시오’라는 조언을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키피디아

과속은 도로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인의 삶은 점점 과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만 인생의 과속을 단속하는 경찰이 없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인생이라는 도로에서 최대한 빠르게, 가능한 한 멀리 가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과속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삶의 적당한 속도라는 것을 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속도를 좋아하는 것은 본성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삶도 마찬가지인지 모릅니다. 삶을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속도는 모두 다릅니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여행길을 즐길 수 있습니다. 과도할 정도로 속도를 내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 다른 운전자의 매너없는 행동 때문입니다. 인생에서도 반칙을 통해서 더 큰 이익을 누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제 속도로 가고 있는 사람의 마음도 덩달아 초조해집니다.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습니다. 슬슬 액셀러레이터에 힘이 들어갑니다. 즐거운 여행은 갑자기 레이싱 경주로 바뀝니다. 곳곳에서 사고가 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핸들을 움켜잡습니다. 다들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는 도로에서 자신만 제 속도로 가면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비매너가 비매너를 부릅니다.

운전자에게 자율적으로 안전 속도를 지키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바람입니다. 도로를 넓혀서 짜증 나는 일이 없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도로에 있는 위험한 장애물도 치우고, 시설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운전 교육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과속 카메라입니다. 범칙금은 아깝지만,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의 과속, 광란의 난폭 운전이 넘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도로, 즉 삶의 기회를 더 많이 늘려야 할까요? 아니면 운전 교육, 즉 자발적인 각성과 계몽이 필요한 것일까요? 혹은 과속 카메라, 즉 반착하는 사람에게 딱지를 날리는 경찰일까요?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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