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과의 상생, 기업들도 나선다

2019.05.05 06:00
대웅제약이 서울 본사에 개점한 편의점 ‘베어마트’에는 총 12명의 발달장애인과 2명의 발달장애 직무전문가가 함께 일한다. 전문가들은 반복, 단순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취업 기회를 제공해 성인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사회 참여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제공 대웅제약
대웅제약이 서울 본사에 개점한 편의점 ‘베어마트’에는 총 12명의 발달장애인과 2명의 발달장애 직무전문가가 함께 일한다. 전문가들은 반복, 단순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취업 기회를 제공해 성인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사회 참여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제공 대웅제약

발달장애인을 위해 일자리를 개방하거나 직업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과 기관이 늘고 있다. 대웅제약은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 이마트24의 도움을 받아 발달장애인을 12명 고용한 사내매점 ‘베어마트(위 사진)’를 개장했다. 지난달 29일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전발달장애인훈련센터에서 공단과 업무 협약을 맺고 ‘발달장애인의 가상 직업훈련 콘텐츠 기술 개발’ 과제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평균수명이 동일하다”며 “영유아 외에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취업 기회와 직업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성인 발달장애인은 ‘사각지대’ ...치료 아닌 자립 위한 지지와 지원이 필요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합쳐 부르는 말로, 국내에서는 2016년 기준으로 21만 7500명이 발달장애인으로 등록돼 있다. 이는 전체 등록장애인(252만 명)의 8.7%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분당서울대병원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한해 동안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 가운데 장애인 등록을 위해 진단서를 받아간 비율은 8분의 1(12.6%)에 그친다. 등록된 수보다 8배는 더 많은 발달장애인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상당수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등록을 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 비율(유병률)은 2%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인구를 대입해 보면 100만 명 이상이 된다.


발달장애는 95% 이상이 지적장애를 동반하고, 의사소통 능력 부족과 급격한 감정변화 등으로 사회적 적응이 어려운 경향이 있다. 특히 영유아에게만 해당된다는 인상을 주는 이름과 달리, 평생에 걸쳐 장애가 지속돼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고통이 심하다. 발달장애 전문가인 유희정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발달장애인의 수명이 다른 사람보다 짧다는 의학적 증거는 없다”며 “한국인의 평균수명(2014년 기준 82.2세)이 곧 발달장애가 지속되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성인 발달장애인은 사각지대다. 이호희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대전지부장은 지난해 2월 대전에서 개최된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과 책임’ 토론회에서 “발달장애인은 (영유아 때 심하다가) 학교라는 보호막 하에서 청소년기까지 조금씩 나아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갈 곳이 없어지는 성인기부터 더 나빠지는 경향을 보인다”며 “이제는 이들을 치료 대상이 아닌 ‘재활’ 대상으로 봐야 한다. 느리지만 꾸준히 발달하는 장애이므로 지지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제공
동아일보 제공

●성인 발달장애인 고용 기회 절실해...발달장애인 특성 고려 업무·직업교육 개발
발달장애인 전문가들은 발잘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취업과 이를 위한 직업 훈련이라고 입을 모은다. 간병이나 도서관 사서 일, 바리스타 보조 등 반복적이거나 단순한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어 이 분야 진출도 권장된다. 해외에서는 패스트푸드 점에서 수십 년 동안 일하며 지역주민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은 발달장애인 직원의 사례가 자주 소개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2015년 장애인통계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 수 비율(고용률)은 총인구의 3분의 1~5분의 1 수준으로 매우 낮다. 총인구의 고용률은 60.9%, 지체장애인의 고용률은 43.7%인데 반해, 지적장애의 고용률은 22.6%, 자폐스펙트럼장애인의 고용률은 14.5%다. 월 평균 소득 역시 낮아서, 2014년 장애인통계에 따르면 전자폐성 장애인의 월평균 근로소득액은 거의 0원에 가깝다. 매우 소수만이 취업했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 중에서는 ‘베어베터’가 발달장애를 지닌 성인을 고용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베어베터는 명함이나 책, 카드 등 인쇄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다. 발달장애인이 일하기 쉽게 명함 출력과 재단과 책 제본, 포장, 배송 등의 직무의 작업 과정을 세분화해, 단순작업을 여러 명의 발달장애인이 분업을 통해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또 발달장애를 지닌 직원을 전체 직원의 80% 이상 고용해 발달장애인이 주인이 되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2012년 창립 이후 올해까지 꾸준히 발달장애인을 채용해 현재 약 230명의직원이 일하고 있다. 

 

베어베터는 지난달 개점한 대웅제약 베어마트에 6명, 지난해 6월 카카오 자회사에 9명이 이직하도록 하는 등 발달장애인 고용의 생태계도 꾸리고 있다. 베어마트는 베어베터 이직 사원에 추가 채용 인원을 더해 발달장애인을 총 12명 고용하고, 두 명의 발달장애 직무 전문가를 채용해 함께 일하도록 했다.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는 “사내매점, 카페 등 발달장애인들이 직무전문가와 함께 팀으로 움직이면서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업무가 많다”며 “관심 있는 기업들이 연락하면 설립과 운영 방법을 아낌없이 공유해 사회적으로 장애인 채용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대학도 발달장애인 고용에 앞장서고 있다. 이화여대는 2009년, 국내 대학 가운데에서는 처음으로 발달장애인 5명을 고용하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16명을 중앙도서관과 행정실 등에 고용했다.

 

길연희(왼쪽), 신희숙 ETRI 책임연구원이 발달장애인의 직업훈련을 위한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제공 ETRI
길연희(왼쪽), 신희숙 ETRI 책임연구원이 발달장애인의 직업훈련을 위한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제공 ETRI

ETRI는 발달장애인의 직업훈련을 도와 취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ETRI의 연구분야인 정보통신기술(ICT)를 접목했다. ETRI 관계자는 “기존의 장애인 훈련센터 안에 직업훈련을 위한 시설이 있지만, 설치된 직업군만 훈련 받을 수 있어 다양한 직업 훈련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며 “가상현실(VR) 등 ICT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직업의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개인의 인지나 감각, 행동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콘테츠를 만들 수 있어 보다 적합한 훈련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길행 ETRI 차세대콘텐츠연구본부장은 “발달장애인이 경제적 자립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 참여권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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