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세상의 룰 공정하다'는 믿음, 열정페이를 강요하다

2019.05.04 06:00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착취당하더라도 참아야한다는 인식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나타난다. 게티이미지뱅크제공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착취당하더라도 참아야한다는 인식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나타난다. 게티이미지뱅크제공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착취당해도 괜찮잖아?”라고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회운동, 예술, 작가 등 본인이 정말 좋아서 한다고 하는 류의 직업들에는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저임금, 심지어는 무급인턴 같은 금전적 착취와 고강도 노동을 아무 불평 없이 감당해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위 ‘열정페이’라고 하는 현상 말이다. 온 열정을 다 바쳐 하는 일이기에 더 행복하고 건강한 환경 속에서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왜 열정에는 착취가 따라붙는걸까?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듯 하다. 최근 듀크대학의 심리학자 아론 카이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착취당할지라도 참아야 한다는 인식이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80가지의 다양한 직업 리스트를 주고 각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체로 얼마나 일에 열정적일 것 같은지, 얼마나 일을 즐기고 일에서 의미를 찾을 것 같은지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나서 각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밤을 새거나 주말에 출근하는 등 자발적으로 오랜 시간 일을 할 것 같은지에 대해 물었다. 마지막으로 각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회사 사정이 어려울 때 이들의 임금을 깎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지, 휴일에 나와서 일하도록 하는게 얼마나 정당한지, 또 업무 외의 자질구레한 일을 시키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본인이 좋아서 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박힌 직업일수록 사람들은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려도 괜찮으며 회사가 이들을 착취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판단에는 ‘시키지 않아도 어차피 더 오랜 시간 일할 것이고 굳은 일도 본인이 하겠다고 자원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한몫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조건을 다르게 해서 가상의 철수라는 사람(예술가, 회사원, 컨설턴트, 박사과정생 등)에 대해 한 집단에는 철수가 자신의 일을 매우 사랑하고 열정적이라는 정보를 주고, 다른 집단에는 열정에 대한 언급 없이 철수가 단지 일을 열심히 한다는 정보를 주었다. 이후 사람들에게 철수에게 야근 수당 없이 야근을 시키거나 시간이 지나도 월급을 인상하지 않거나 철수같은 사람을 무급인턴으로 쓰는 일들이 얼마나 정당한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철수가 ‘일을 사랑하고 열정적’이라는 정보를 들었던 조건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조건의 사람들보다 철수의 노동을 착취하고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고 응답하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에도 일에 열정적인 사람은 어차피 본인이 자발적으로 과로할 것이고 그렇게 일 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인식이 한 몫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열정과 착취가 함께 다니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세상의 룰이 공정하다고 믿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예컨데 가난이라는 불공정함에 대해서는 게으르거나 본인이 자초해서 가난한 것이라고 불공정함을 정당함으로 합리화시킨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살았고 능력도 좋은데 가난하다는 정보를 받으면 이는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을 방해하므로 ‘가난하지만 행복할 것’ 같은 환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니까 가난한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부자가 더 힘들 수도 있다 같은 ‘상보적’ 믿음을 통해 어쨌든 세상은 이치에 맞게 돌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유지한다.

열정페이 역시 힘들지만 그만큼 일을 하며 행복하니 괜찮다고 합리화하는 현상이라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누군가 별다른 이유 없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다는 정보를 받으면 이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일하는 것이 곧 행복인 사람일 것이라고 어림짐작하며 착취를 합리화하는 현상이 확인되기도 했다.

어쨌든 세상은 오늘도 평화롭고 공정하다고 믿으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때로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합리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착취당하고 있지만 행복하다’ 같은 이야기가 들려올 때 착취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이대로도 괜찮은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해봐야할 것이다.

 

참고자료 

-Kim, J. Y., Campbell, T. H., Shepherd, S., & Kay, A. C. (2019, April 18). Understanding
-Contemporary Forms of Exploitation: Attributions of Passion Serve to Legitimize the Poor
-Treatment of Worker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Advance online publication.
-http://dx.doi.org/10.1037/pspi0000190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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