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RNA 치료제 실현하려면 기초연구 기술개발 함께 가야”

2019.04.20 06:00
김빛내리 교수가 ′행복한 실험실′을 만들려면 자율성과 배려, 협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빛내리 교수가 '행복한 실험실'을 만들려면 자율성과 배려, 협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질병과 관련 있는 유전자를 이용해 난치병을 고치려는 맞춤형 의학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다. 하지만 하나의 병처럼 보일지라도 여러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탓에 유전자치료에 대한 우려도 많다. 그렇다면 유전자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발현되는 정도를 조절하는 치료법은 어떨까. 그것도 제 할 일을 다 하면 사라져버리는 물질로 말이다.

 

19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년도 한국미생물학회 창립 6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만난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은 세계적인 마이크로RNA(miRNA)의 대가다.

 

miRNA는 다른 RNA와 마찬가지로 뉴클레오타이드(DNA와 RNA를 이루는 기본 단위)로 이뤄져 있지만 단백질을 합성하지 않는다. 그 대신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DNA의 유전정보는 RNA로 만들어지고 단백질을 합성해 유전자가 발현된다. 우리 몸에 있는 수만 종의 RNA 가운데 miRNA는 700종쯤 된다.

 

생성부터 구체적인 작용 밝혀 

마이크로RNA가 생기는 과정(왼쪽). 마이크로RNA도 다른 RNA와 마찬가지로 DNA에서 만들어진다(➊). 마이크로RNA는 드로셔에 잘려(➋) ′머리핀′을 닮은 구조만 남은 채 핵에서 빠져나온다(➌). 다이서에 잘린 마이크로RNA는 단백질과 복합체를 이뤄(➍) 특정 mRNA에 붙을 수 있다. 그러면 mRNA가 분해된다(오른쪽). 동아사이언스 제공
마이크로RNA가 생기는 과정(왼쪽). 마이크로RNA도 다른 RNA와 마찬가지로 DNA에서 만들어진다(➊). 마이크로RNA는 드로셔에 잘려(➋) '머리핀'을 닮은 구조만 남은 채 핵에서 빠져나온다(➌). 다이서에 잘린 마이크로RNA는 단백질과 복합체를 이뤄(➍) 특정 mRNA에 붙을 수 있다. 그러면 mRNA가 분해된다(오른쪽). 동아사이언스 제공

miRNA는 1993년 빅터 앰브로스 미국 다트머스대 의대 교수가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의 배아 발생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찾다가 처음 발견했다. 5년 뒤 이 RNA조각이 짝이 맞는 RNA만 골라 선택적으로 없애는 현상(RNA간섭)을 발견했지만, miRNA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구체적인 과정은 알지 못했다. 

 

김빛내리 단장 연구팀은 2002년 miRNA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어 2006년에는 miRNA가 드로셔(Drosha)와 다이서(Dicer), 두 효소에 잘려 짧은 두 가닥 형태가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두 가닥 중 한 가닥은 단백질과 붙어 복합체가 된다.

 

miRNA-단백질 복합체는 세포질을 돌아다니다가 짝이 맞는 mRNA를 만나면 들러붙어 없앴다. 

2014년에는 miRNA가 초기 배아에서 위스피(Wispy) 효소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을, 이듬해에는 miRNA와 복합체를 이루는 단백질이 1개의 드로셔와 2개의 다른 분자(DGCR8)로 이뤄져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DGCR8이 miRNA에서 잘라낼 부분을 알려주면 드로셔가 자른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김 단장팀이 miRNA에 대해 알아낸 연구성과는 모두 세계 최초다. 

  

치료제 개발 조건들

지난해 8월 RNA간섭을 일으키는 소간섭RNA를 이용해 최초로 FDA 승인을 받은 유전질환 치료제 ′파티시란(제품명 온파트로)′. 앨나일람 제공
지난해 8월 RNA간섭을 일으키는 소간섭RNA를 이용해 최초로 FDA 승인을 받은 유전질환 치료제 '파티시란(제품명 온파트로)'. 앨나일람 제공

최근 학계에서는 miRNA를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 miRNA가 세포 안에서 발생, 성장, 노화 등 다양한 생명 현상과 관련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김 단장팀 역시 세포분열에 관여하는 유전자(let-7)의 miRNA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DNA의 사본격인 RNA는 단백질 합성이 끝나면 사라진다. DNA보다 화학적으로 불안정하지만, 그만큼 치료제로 쓰기에는 안전한 셈이다. 대개 RNA의 크기가 수천 뉴클레오타이드이지만 miRNA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뉴클레오타이드 20~22개 정도로 매우 작다. 

 

하지만 miRNA 신약의 탄생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김빛내리 단장은 “치료제로 상용화하려면 기술 개발은 물론, 기초 연구도 많이 해야 한다”며 “가령 miRNA를 타깃까지 전달하는 과정이나 어떻게 단백질 합성으로 이어지게 하는지, 치료 효율을 높임과 동시에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지 등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 역사는 이미 25년째로 길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많고, 반면 신약 소재로서는 관심을 받고 있다.
 
김 단장은 “지난해 8월 미국 제약업체 앨나일람사가 miRNA와 비슷하게 RNA간섭을 일으키는 소간섭RNA(siRNA)를 이용해 개발한 유전질환 치료제 '파티시란(제품명 온파트로)'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최초로 승인했다”며 “이것을 발견해 임상까지 성공하는 데 20~3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 초기 단계에서는 이것이 추후 어떻게 응용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오로지 호기심만 갖고 진행하지만, 이후 목적을 갖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생명과학이 발달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산업 분야가 넓어졌기 때문에 기초에서 응용까지의 사이클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김빛내리 단장팀은 서울시 보라매병원 연구팀과 함께 노화한 연골세포가 손상돼 퇴행성관절염이 일어나는 원인이 miRNA(miR-204) 때문이며, 이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를 만들면 관절염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전임상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 4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

 

‘행복한 실험실’의 3요소는 자유, 배려, 협동

 

국내 대표 과학자로서 '꽃길'만 걸었을 것처럼 보이지만 김빛내리 단장에게도 힘든 역경이 있었다. 육아와 연구 활동을 병행했을 때와, 초기에 연구비가 부족했을 때다. 김 단장은 “하지만 miRNA의 생성 과정에서처럼 가설을 세운 뒤 실험으로 증명을 해냈던 순간이나, 새로운 검출법을 개발해 miRNA의 꼬리를 발견했던 때처럼 즐겁고 보람 있는 날들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김빛내리 단장은 오래전부터 ‘행복한 실험실’을 꿈꿨다. 합격한 세 학교 중 미국 펜실베니아대 RNA대사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했던 이유도 “연구실 사람들이 행복해 보여서”란다. 그 덕분인지 김 단장이 이끄는 연구실은 ‘화목하고 열정적’이기로 유명하다.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단장은 ‘개인의 자율성’과 ‘서로 간의 배려’, ‘협동하는 문화’를 꼽았다.

 

먼저 그는 “연구원끼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협동하는 문화를 만들었다”며 “교수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것도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서구보다 개인적인 성향이 적고 정이 많은 한국 연구실 문화는 이런 환경을 조성하기가 좋다”고 덧붙였다.

 

김 단장은 또 “연구를 하다 보면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므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려면 각자가 자유롭게 생각하면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가 시키는 대로 학생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해야 효율이 훨씬 커진다”고 강조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