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분비 물질로 심근경색 치료…세포 치료 패러다임 바꾼다

2019.04.19 09:56
권익찬 KIST 테라그노시스연구단 책임연구원(왼쪽)이 ′절친′ 동료연구자인 최귀원 바이오닉스연구단 책임연구원(오른쪽)과 서 있다.
권익찬 KIST 테라그노시스연구단 책임연구원(왼쪽) 이 '절친' 동료연구자인 최귀원 바이오닉스연구단 책임연구원(오른쪽)과 서 있다.

권익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지난해까지 5년 연속으로 글로벌 데이터베이스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약리학 및 독성학 분야 권위자 중 한 명이다. 10년 동안 논문 피인용 횟수가 가장 많은 업적을 인정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테라그노시스' 분야에서만 논문 400여 편을 발표했다. 다소 낯선 용어인 테라그노시스는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합성어로 생체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해 질병 조기 진단은 물론 치료법을 동시에 개발한다는 뜻이다.

 

현재 병원에서 병을 진단할 때 사용되는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장비들은 몸속에서 이미 일어난 결과를 보고 질병을 판단한다. 조기 진단을 하거나 약물치료 시 효율이 떨어진다. 테라그노시스 기술을 이용하면 생체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또는 유전적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해 질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질병 부위에만 약물을 선택적으로 전달해 효율적인 치료도 가능하다.  

 

KIST는 2012년부터 하버드대 의대 부속병원인 다나파버 암연구소(DFCI)와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표적 치료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KIST 의공학연구소와 임상 연구에서 베테랑인 DFCI가 힘을 합쳤다. 2015년에는 현재 미국 보스턴에 KIST-DFCI이라는 이름의 공동 연구실도 열었다. 권 책임연구원은 바로 이 KIST-DFCI를 이끌고 있다. 국내 연구기관이 해외 대학에 운영하는 유일한 공동 연구실이다.


연구실은 ‘근적외선 광학 영상장비’를 이용해 살아있는 세포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살아 있는 쥐를 마취시키고 챔버에 넣은 뒤 미리 형광으로 표지한 물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할 수 있다. 권 책임연구원은 "이 물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면 세포에서 분자 단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데 이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테라그노시스연구단이 투과전자현미경(TEM)을 이용해 엑소좀을 촬영했다. KIST 제공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테라그노시스연구단이 투과전자현미경(TEM)을 이용해 엑소좀을 촬영했다. KIST 제공

연구진은 지난 6년간 엑소좀이란 물질을 이용하는 면역항암제를 집중 개발하고 있다. 엑소좀은 세포가 분비하는 50~150nm(1nm는 10억분의 1m)의 작은 소포체다. 세포가 가지고 있는 단백질과 RNA를 포함하고 있어 세포의 성질과 상태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엑소좀은 과거 물질대사 후 찌꺼기를 내보내는 현상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세포가 엑소좀을 통해 다른 세포와 정보교환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세포가 처한 상태에 따라서 엑소좀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건강한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주변 세포에게 알리기 위해 평소와는 다른 물질을 담은 엑소좀을 내보내는 식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엑소좀을 의료용으로 활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대부분 난치병을 조기 진단하려는 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아직 초창기에 머물고 있다.

 

가령 암세포도 암세포만의 엑소좀을 내보내기 때문에 일종의 바이오마커로 활용할 수 있다. 환자의 혈액을 뽑아 엑소좀을 분석하면 증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초기 환자도 찾아낼 수 있다. 발레리 르블루 미국 텍사스대 앤더슨암센터 교수팀은 난치암 중 하나인 췌장암을 조기 진단하는 엑소좀을 개발해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2017년 6월 7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췌장암과 관련있는 유전자(KRAS)를 표적으로 하도록 엑소좀 속 유전정보를 교정했다. 이 엑소좀을 쥐 췌장에 넣었더니 암세포를 찾아내고, 유전자를 차단해 암이 더 이상 전이되는 것을 막았다. 이외에도 국내외 과학자들은 폐암이나 대장암, 전립선암 등을 조기진단하는 바이오마커로 엑소좀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국내에서는 KA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한양대 등에서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권 책임연구원 연구진은 조기 진단을 넘어 치료에 활용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흔히  대식세포 같은 면역세포는 암세포가 내는 정상세포와는 다른 신호를 보고 암세포라고 인식해 공격한다. 문제는 암세포가 무척 영악하다는 점이다. 자기들을 잡으러 온 대식세포들을 자기편으로 만든다. 성질이 바뀐 대식세포들은 암세포를 공격해야 하는 임무를 잊고 오히려 암세포가 증식하도록 돕는다.  연구진은 이렇게 암세포에 ‘홀린’ 면역세포을 ‘깨워’ 암을 치료하는 면역항암제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권 책임연구원은 “대부분의 다른 연구에선 암세포가 내는 신호물질을 항체로 차단해 면역계가 정상적으로 암세포를 공격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접근하지만 우리 연구는 면역계가 건강한 세포는 놔두고 암세포만 정확하게 공격하기 위해 엑소좀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잠들어 있던 대식세포가 본연의 임무를 할 수 있도록 흔들어 깨우는 셈이다. 

 

연구진은 엑소좀을 활용해 심근경색으로 혈관이 막히면서 심근세포가 섬유화(섬유아세포)되는 것을 막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혈액이 굳어 덩어리가 되는 혈전으로 혈관이 막히면 심근경색이 생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급성 심근경색은 초기 사망률이 30%~50%에 이를 만큼 위험하다. 심근경색이 발병하면 심근세포가 섬유화돼 심장의 펌프 기능도 떨어진다. 


지금까지는 섬유아세포를 줄기세포로 만든 다음, 다시 심근세포로 분화시키는 방법이 널리 알려져 있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가 개발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이용한 것이다.  iPSc를 비롯한 줄기세포 기반 세포재생 치료 기술은 과정이 복잡하고 세포의 생존율이 낮아 실제 치료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연구진은 여기서 줄기세포를 거치는 단계를 없앴다. 섬유아세포에 엑소좀을 적용하면 줄기세포로 굳이 만들지 않아도 심근세포로 분화된다. 
 

권익찬 KIST 책임연구원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엑소좀을 이용한 세포 재생 치료법은 자신의 세포를 넣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기존 치료법과는 달리 독성이 없다”며 “근섬유아세포가 심근세포로 분화되는 비율이 최대 80%로,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책임연구원은  “엑소좀은 세포막에 둘러싸여 있어 동결건조 보관이 가능한 덕분에 약으로도 만들 수 있다”며 “줄기세포와 세포치료 연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권 책임연구원은 이어 “엑소좀을 이용한 치료제는 자기 세포 물질을 자기 몸에 넣는 방식이므로 독성이 없어서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 연구는 KIST와 하버드대 간에 밀접한 협력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권 책임연구원은 40년간 암세포 신호를 연구한 토마스 로버츠 DFCI 암생물학과 교수와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KIST 연구진이 엑소좀을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하면, 로버츠 교수 연구진이 어떤 방식으로 암을 치료할지 방법을 찾는 식이다. 현지랩을 바탕으로 하버드대와 KIST 연구자간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크게 늘었다. 올 6월에는 KIST에서, 9월에는 하버드대에서 워크숍을 열고 미국 과학자와 KIST 등 국내 과학자들이 모여 연구성과에 대해 소통하는 자리를 가질 예정이다.  

 

연구실이 신약 개발과 상용화까지 환경이 잘 이뤄진 환경에 자리한 것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 보스턴은 하버드대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비롯해 뛰어난 연구기관과 연구자, 대형병원들이 모여 있는 ‘의학생명분야의 메카’로 불린다.  연구자들이 이뤄낸 성과를 상용화하는 데 딱 맞는 환경이다.  권 책임연구원은 “미국 현지랩에서의 경험을 살려 국내 연구자들이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벤처 창업을 돕고 싶다”며 “언젠가는 KIST 주변에 ‘홍릉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트’ 같은 이름으로 연구기관과 벤처기업, 주변의 대형병원과 협업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말했다. 

 

세포가 엑소좀을 만들어 내보내 세포끼리 교신하는 과정을 그린 일러스트. Journal of Cell Biology 제공

세포가 엑소좀을 만들어 내보내 세포끼리 교신하는 과정을 그린 일러스트. 저널오브 셀바이올로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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