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창업은 이제 대학의 주업무, 인식 바꿔야"

2019.04.03 17:25
리노 구젤라 ETH취리히 전 총장은 대학의 산업 관련 업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윤신영 기자
리노 구젤라 ETH취리히 전 총장은 대학의 산업 관련 업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윤신영 기자

”대학의 기초과학이 산업으로 확대되길 바란다면 교수 창업과 기업활동 제약해서는 안됩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취리히)는 특허나 산업화 업무도 부가업무가 아닌 대학이 해야 할 본연의 업무로 보고 적극 지원합니다. 20명의 풀타임 전문가가 포진한 전문행정조직 지원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와 함께 각종 대학평가에서 항상 유럽 3대, 세계 10대 이공계 대학으로 꼽히는 ETH취리히의 리노 구젤라 전 총장을 3일 오전 대전 KAIST에서 만나 대학의 지식재산 사업화 문제에 대해 인터뷰했다. 구젤라 전 총장은 KAIST와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기관 더(THE)가 공동 주최한 '이노베이션&임팩트 서밋'의 기조강연자로 참석하기 위해 2일 방한했다.

 

그는 "지금은 지식이 전례없이 빠르게 창출되는 시대로, 과거와 결별한 새로운 대학 교육이 필요하다"며 "1억 편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학술 연구가 쌓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단 한 번도 인용되지 않는 ‘지식인플레이션 시대’다. 이에 맞는 새로운 대학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탄탄한 기초과학으로 생산한 지식과 기술을 지역과 산업에 적극 퍼뜨리는 게 그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교수와 학생이 기초연구 외에 들이는 시간을 언급했다. 구젤라 전 총장은 “보통 세계의 대학은 일주일에 하루 꼴인 20%의 업무를 외부 기관 및 기업 자문 등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며 “하지만 ETH취리히는 나머지 80%의 ‘본연의 업무’ 시간에도 산업과 협력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연구를 통해 발견한 새로운 현상의 특허를 얻고 산업화하는 것도 다 ETH취리히의 업무로 본다는 뜻이다.

 

그는 “특허나 산업화에 필요한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교수들이 모든 과정을 번거롭지 않게, 완전히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20명의 상근자로 구성된 전담조직이 행정처리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구젤라 전 총장이 젊었을 때에는 스위스도 교수가 산업에 관여하는 것을 나쁘게 여겼지만, 이런 노력들 덕분에 지금은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KAIST에서 3일 기조강연 중인 구젤라 ETH취리히 전 총장. 대전=윤신영 기자
KAIST에서 3일 기조강연 중인 구젤라 ETH취리히 전 총장. 대전=윤신영 기자

 

이런 분위기는 학생 교육에도 확장돼 있다. ETH취리히에서는 매년 1회 스위스의 기업 대표 500~600명이 참석하는 기업·기술소개(피칭) 대회가 열린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은 자유롭게 특허나 기술이전을 논의할 수 있다. 우승하면 우리 돈으로 1억~2억 수준의 지원금을 받는다. 정부도 벤처캐피탈을 구성해 창업을 돕는다. 학내에서 2년간 기술개발을 할 인큐베이터도 지원하고, 이후에는 지역에서 인큐베이터를 지원해 성장을 돕는다. 그는 “덕분에 스위스는 현재 핀테크 분야 창업이 대단히 활발하다”고 말했다.

 

구젤라 전 총장은 “학생 때부터 부딪혀보고 실패하는 경험을 익힌 게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ETH취리히 학생들은 1학년 2학기 때부터 이론수업을 빼고 일단 무언가를 만드는 수업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정원 400명의 기계공학과 학생은 20명씩 20개 팀으로 나눠 ‘로봇으로 공을 던져 목표를 맞추는’ 과제를 직접 수행하며 문제해결과 실패 경험을 쌓는다. 그는 “한국 등 동아시아보다는 낫지만, 스위스에서도 실패는 힘든 경험이다. 하지만 실패에 관대한 문화가 있어 창업을 향한 도전을 막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무작정 ‘한번 해볼까’하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가 심도 있게 뒷받침하지 않으면 기술 창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젤라 전 총장은 “ETH취리히는 연구 및 교수법 센터를 따로 운영해 자율적인 연구과 교육을 돕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과 지역의 긴밀한 연계도 강조했다. 만든 지식을 대학 내에서 인큐베이팅하도록 2년간 지원한 뒤 지역에 내보내는데, 이들을 받아 성장을 도울 인큐베이터가 대학 주변에 산적해 있다. 여기에 원래 강했던 기초과학 연구 능력이 더해져 대기업도 찾아오며 자연스럽게 산업 기반이 탄탄해진다고 설명했다. 구글맵 연구소가 취리히에 세워져 300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게 대표적 예다. 구젤라 전 총장은 “측지 분야 선구자를 배출하는 등 ETH취리히가 지리정보 분야 기초과학을 선도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구젤라 전 총장은 세대간 차이에 주목해 대학의 역할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윤신영 기자
구젤라 전 총장은 세대간 차이에 주목해 대학의 역할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윤신영 기자

세대간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1940년대생은 성인이 됐을 때 부모보다 잘 살 확률이 거의 100% 가까이로 높았지만, 1980년대생은 그 확률이 3분의 1 수준으로 낮다”며 “지금 20~30대가 어려움을 겪는 이런 경향은 전세게의 ‘메가트렌드’”라며 “이를 대학교육이나 정부 정책으로 극복하기란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이를 극복할 교육을 대학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이 차별화된 능력을 배양하도록 도와야 한다. 산업이나 지역과의 융합도 그런 맥락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성에 대해서는 “이공계는 여성 진출이 부족하며, ETH취리히도 교수 중 여성이 10%대로 낮다는 점이 문제”라며 “지난 4년의 총장 임기중 뽑은 교수는 여성 비율을 25%로 맞췄다”고 말했다. 최고의 여성 인재는 전세계가 탐을 내기 때문에 어려웠지만, 좋은 조건을 제시해 가며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기계공학과 교수로 수소전기차 등 에너지와 기계공학을 결합한 분야를 1999년부터 취리히연방공대에서 연구하다 2015~2018년 총장을 맡았다. 총장을 물러난 올해도 여전히 연구를 하고 있는 현역이다. 그는 “기계와 에너지라는 전통 분야가 인공지능과 데이터라는 새로운 분야를 맞아 큰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이를 통해 기초공학이 재발견되고 혁신을 맞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소재와 사물인터넷(IoT)에 관심을 갖는 그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폐기물 양을 줄이는 등 구체적인 효과를 내는 데 이들 기술이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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