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왜 이럴까?]인간은 험담을 통해서도 공감을 얻고 싶어 한다

2019.04.07 06:00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옮긴다. 그리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픽사베이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옮긴다. 그리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픽사베이

김 대리가 또 시작입니다. 회사에 일하러 온 것인지 수다를 떨기 위해 온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유용한 정보도 아닙니다. 험담입니다. 직원의 소통을 돕기 위해서 칸막이를 제거한 회사의 정책이 한스럽습니다. 한번 시작되면 주변 10m 사람은 도리없이 김대리의 험담을 강제 청취해야 합니다. 약간의 사실과 상당량의 뇌피셜, 그리고 모두가 주목할 만한 자극적인 주제를 적당히 섞어서 구비 문학의 세계를 펼치는 김대리의 수다를 듣다보면 차라리 소설가로 전향하는 편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하지만 듣다 보면 솔깃해집니다.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을 수도 없으니 관심 없는 척 하면서도 왼쪽 귀가 슬며시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건 진짜 사실인데’라는 말로 시작하는 뻔뻔한 거짓말과 뒷담화. 그냥 대꾸도 없이 못 들은 척 합니다. 맞장구쳐주면 신이 나서 더 떠들 것입니다. 짜증이 나서 친구 단톡방에 김대리 욕을 실컷 퍼붓습니다. ‘어떻게 맨날 남의 험담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라며 카톡방에 험담하는 사람에 대한 험담을 잔뜩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카톡방이 잠잠합니다. 아니 왜 아무도 내 맘을 몰라주는 걸까요? 이런 공감 능력도 없는 인간들. 하는 수 없습니다. 거짓을 살짝 보태서 김 대리에 대한 욕을 더 리얼하고 흥미진진하게 적어 보냅니다. 드디어 반응이 오는군요. 진실을 알려주었으니 호응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조금 뻥을 더했지만 뒷담화를 일삼는 김 대리에 대한 정당한 분노만은 진실이니 결국 거짓도 실체적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받고 싶은 인간


사람은 모두 이해받고 싶어합니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거의 유일한 동물입니다. 물론 박쥐나 고래도 초음파로 대화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꿀벌도 꽃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춤을 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사용하는 아주 복잡하고 세련된 수준의 언어와 비견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물리적 사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신호 체계보다 인간의 언어는 대단히 정교합니다. 마음속 공명을 일으키는 깊은 이해가 바로 언어를 통해 가능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진실과 거짓이라는 개념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지도 모릅니다. 동물의 세계에도 위장 색이나 기만 전략이 있지만, 인간처럼 아예 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타고난 이야기꾼입니다. 거짓말쟁이기도 합니다. 타인을 속이고, 심지어 자신도 속입니다. 진정한 기만은 자기 자신마저 속아 넘어갈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 같이 살기로 한 지 수백만 년이 흘렀습니다. 집단의 크기는 점점 커졌고 이제는 거의 전 인류가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고 살아갑니다.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공감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골백번도 넘게 들었지만, 사실 불필요한 설교입니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끊임없이 공감하고 소통합니다. 카톡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억 건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움직이는 방법


타인을 움직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당근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시키려면 무엇이라도 주면 됩니다. 돈을 주든 떡을 주든 말이죠.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부터 직장에 출근하는 이유입니다. 둘째는 채찍입니다. 총부리를 들이대면 누구나 양순해집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은 비용도 많이 들고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일단 대부분 사람은 타인을 움직일만한 당근이나 채찍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공감은 돈도 들지 않고 억지로 강요할 필요도 없습니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내 안으로 수용하여 같이 느끼는 것을 공감이라고 합니다. 공감을 통해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바꾸고, 급기야는 행동도 바꾸게 됩니다. 말 그대로 마음 깊은 곳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공감은 사실상 공짜인 데다가 그 힘도 강력하고 오래 갑니다. 타인을 움직이는 세 번째 방법입니다. 


하지만 공감이 좋은 방향으로만 사용된다고 믿는다면 세상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강력하고 오래가는 값싼 설득 수단을 사람들이 그냥 두고 볼 리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공감의 힘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연예인이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맛있게 라면을 먹습니다. 물론 광고라는 것을 잘 알지만, 군침이 흐릅니다. 쇼핑 카트에는 라면 상자가 쌓입니다. 포스터에는 배만 볼록 나온 제3세계 어린이가 흙바닥에 앉아 맑은 눈망울을 글썽이고 있습니다. 자선모금함에 돈이 쌓입니다.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야말로 당근과 채찍보다 강력한 힘입니다. 말의 힘, 공감의 힘입니다. 

 

공감은 특히 인간에 발달한 인지 기능이다. 그러나 공감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플리커
공감은 특히 인간에 발달한 인지 기능이다. 그러나 공감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플리커

이야기를 만드는 인간, 이야기가 만드는 인간


인간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었다면 아마 지금 같은 문명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사람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물길을 바로 잡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사통팔달의 길을 내었습니다. 협력과 공생을 통해서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역시 그럴듯한 이야기로 사후세계를 만들고 외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한 번뿐인 삶을 허비했습니다. 이쪽 무리와 저쪽 무리가 서로에게 적이 되면서 그사이에 거대한 벽이 쌓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벌입니다. 


서로 생존을 위해서 싸우고 경쟁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하는 일은 자연의 세계에서 흔히 일어납니다. 개미도 전쟁하고 침팬지도 전쟁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을 보내어 꿀벌을 공격하는 말벌을 막고 평화협상을 시킬 수 없습니다. 당연한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조금 더 나아갔습니다. 이익이 되지 않아도 싸웁니다. 인간 폭탄이 폭격을 하고 자살폭탄 테러를 합니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을 미워하고, 경쟁하지 않는 사람을 질투합니다. 말이 다르다고, 생김새가 다르다고, 생각이 다르다고, 믿음이 다르다고, 서로 증오하고 추방하고 죽입니다. 물론 이유 없이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서로 공감하는 이야기가 다를 뿐입니다. 


타인에 대한 공격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은 드디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기에 이르렀습니다. 10세부터 30세 이전 사망 원인 중 1위는 자살입니다. 인간은 남을 죽일 뿐 아니라 자신도 죽이는 이상한 동물입니다. 마음속에 자리한 어떤 믿음, 어떤 생각, 어떤 감정은 독버섯처럼 자랍니다. 그래서 그 생각과 믿음, 감정을 담고 있는 주인마저 공격합니다. ‘너는 살 필요가 없다.’, ‘이쯤 해서 죽어야 한다’, ‘더 높은 이상, 내세의 영광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그럴듯한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과는 무관한 이야기일까요? 타인을 배척하지도 않고 험담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헛된 이상과 신념에 목숨을 바칠 만큼 용감하지도 않습니다. 적당히 냉소적인 태도로 살아가면 콩 튀듯 팥 튀듯 타인의 이야기에 현혹되어 이리저리 휩쓸릴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정말 세련된 방식으로 자신의 삶도 스스로 속이기 때문입니다. 

 

1915년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징집 독려 포스터. 당시 수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참전 군인은 무려 약 7000만 명에 달했다. 이들 중 약 940만 명이 죽고, 2300만 명이 다쳤다. 이들이 믿고 공감한 ‘이야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1915년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징집 독려 포스터. 당시 수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참전 군인은 무려 약 7000만 명에 달했다. 이들 중 약 940만 명이 죽고, 2300만 명이 다쳤다. 이들이 믿고 공감한 ‘이야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만들어진 이야기, 만들어진 믿음


당신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오늘도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지만, 정말 그런 목표에 ‘동의’한 적이 있습니까? 죽는 날까지 가장 멀리 가고, 가장 많이 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것인지 되물어봐야 합니다. 하지만 도무지 찾기 어렵습니다. 아마 피라미드를 건설한 인부도, 성벽을 만든 일꾼도 그렇게 열심히 하루하루 살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숙명은 죽은 자를 위한 무덤을 만들고, 다른 부락과 경계를 짓는 벽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우리 마음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야기’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더불어’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여러 기쁨은 다른 이와 어울리며 누릴 수 있지만, 역시 삶의 여러 불행도 다른 이와 어울리며 생겨납니다. 너와 내가 다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만들어진 공감에 스스로 속아 ‘우리는 하나’를 외치고, ‘너네는 다르다’를 부르짖습니다. 외톨이로 사는 대가는 만만치 않지만, 핵인싸(무리 속에서 아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의 신조어)로 사는 대가도 적지 않습니다. 둘 사이의 현명한 균형점을 찾는 일은, 모든 인류를 하나로 뭉치게 하겠다는 이상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차라리 이룰 수 없는 이상을 추구하는 편을 택합니다. 같이 살기 위해 치러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불행일까요?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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