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촌평]지진,‘알 권리’와 정치,그리고 과학

2019.03.31 10:10

2년 전 발생한 포항지진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정부조사연구단의 공식 조사 발표가 지난 20일 열렸다. 지열발전을 위해 삽입한 지열정이 미소진동을 일으켜 알 수 없었던 단층을 자극해 일어난 이른바 ‘촉발(triggered) 지진’이라는 결론이다. 적어도 ‘자연지진은 아니다’는 결론을 낸 정부조사연구단의 공식 발표 후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었던 포항시민들은 반색했다. 

 

공식 발표 뒤 포항지진에 대한 책임과 보상안에 대한 공방이 정치권으로 튀었다. 여당은 포항 지열발전 실증사업이 MB정부 때 시작된 일이라며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을 공격했다. 야당은 정치 공세라며 반발했고 산업부는 포항지진 지열발전 관련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 포항지진 원인 발표 후속대책으로 당정청협의회가 열려 추가경정예산 반영 등을 논의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열발전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가 의뢰한 정부조사연구단의 연구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절차다. 

 

그러나 정치권의 ‘네 탓 공방’과 포항 EGS 지열발전소 처리 문제, 포항시민 보상방안 논의에 관심이 쏠리는 사이 지질학계에서는 정부조사연구단의 연구 결과가 완벽하지 않다는 의구심이 나온다. 2개의 지열정이 있는 곳에서의 지하수위가 600m나 차이가 나는 원인은 물론 약 1만톤이 넘는 물 주입만으로 규모 5.4의 지진을 유발할 정도의 미소진동이 발생할 수 있는지가 명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지진을 일으킨 단층의 임계응력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축적됐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의구심은 지난 20일 열린 정부조사연구단 연구결과 발표 간담회를 주관한 대한지질학회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학계 내에서의 다양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질학회 전체의 의견인 모양새로 간담회가 진행됐다. 다소 긴 시간 동안 조사결과 발표가 이뤄진 뒤 포항시민과 지역구 의원들, 관계자 등이 직접 참석해 자연지진 여부와 향후 대책과 보상 등에 관심이 집중된 나머지 정작 연구결과에 대한 궁금증이 명확하게 해소되지 못했다. 포항지진 원인의 ‘과학적 근거’에 대한 국민들의 ‘알 권리’가 충족되긴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 

 

과학이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결론은 섣부른 판단을 낳는다. 정부는 정부조사연구단의 결과 발표 뒤 포항 지열발전소를 폐쇄하고 원상 복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질학 분야 연구자들은 단순한 원상 복구가 더 큰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포항 지역에서는 “포항지진이 인재(人災)로 결론났기 때문에 포항은 이제 (지진에) 안전하다”는 단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조사연구단도 “지진이 난 단층은 응력이 많이 해소됐지만 임계응력 단층이 여럿 있을 수 있다”고 밝힌 만큼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다. 긴 호흡을 갖고 포항 일대 단층과 지질 구조를 조사해야 한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정부의 의뢰로 1년간 포항지진 원인을 밝힌 정부조사연구단의 연구 결과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그만큼 포항시민들을 위한 보상과 적절한 후속대책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고 1년간의 조사만으로 마치 모든 과학적 근거가 밝혀진 것으로 호도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정치 논리만 들이대면 곤란하다. 논쟁을 통해 진보하는 과학의 특성을 무시해서도 안된다. 학계 내에서의 이견을 충분히 검토하고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국내외 연구 역량을 모으는 방안을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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