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조사중인데…연구비 끊고 장비사용료 지급 일방 중단

2019.03.28 06:00
이미지 확대하기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방사광가속기 고등광원(ALS) 내부의 모습을 찍었다. 이곳과 연동된 연구장비 이용 대금은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신성철 KAIST 총장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다. 최근 이 장비이용대금 지급이 일방적으로 보류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공 LBNL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방사광가속기 고등광원(ALS) 내부의 모습을 찍었다. 이곳과 연동된 연구장비 이용 대금은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신성철 KAIST 총장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다. 최근 이 장비이용대금 지급이 일방적으로 보류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공 LBNL

신성철 KAIST 총장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미국 연구소와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연구비를 부당으로 송금해 현지 제자를 지원했다는 의혹이 명확한 입증 과정 없이 넉 달 이상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논란이 된 미국 연구소와의 계약을 무시한 채  장비 사용대금을 일방적으로 지불을 보류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금을 받지 못한 미국 측이 근거를 요구하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 총장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대금지급을 보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의혹만으로 해외 연구계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신뢰를 자칫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과학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감사관실은 지난 2월 초 DGIST로 하여금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에 내기로 되어 있는 장비사용 대금의 지불을 보류하도록 지시했다. 대금 최종 지급 마감은 4월 1일로 아직까지 시간이 남아 있지만, LBNL에 장비사용료를 납부하던 DGIST 바이오자성글로벌융합센터는 감사관실 지시에 따라 현재로선 사용료 지급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 감사관실이 지급 보류를 지시한 표면적 이유는 아직 관련사안에 대한 감사 및 검찰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기관간 계약에 따라 진행중인 국제 공동연구사업을 결론이 나지 않은 의혹만으로 일방적으로 보류시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상대방인 LBNL측은 한국 정부에 “결정을 뒷받침할 근거와 물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더구나 과기정통부의 지시는 지난해 말 “LBNL과의 계약에는 어떤 문제도 없다”라고 스스로 발표했던 사실과도 모순된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의혹이 불거진 뒤 LBNL이 직접 나서 "계약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하자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같은 내용을 LBNL 측에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비이용 대금은 신 총장을 둘러싼 의혹에서 중요한 논쟁지점 중 하나다. DGIST는 2012년 2월 LBNL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같은 해 7월 DGIST 내에 연구협력센터를 설립하며 협력연구를 시작했다. 이 센터를 바탕으로 DGIST는 한국연구재단의 공동연구센터 사업을 수주했다. 이후 2013년 7월부터 미국 LBNL의 엑스선광학센터(CXRO)에 운영비 분담 명목으로 매년 10만~40만 달러를 지급하고 있다. 

 

금액은 장비 독점사용시간 확보량에 따라 늘어나, 2017년 이후 연 40만 달러를 지급했다. 이 금액은 DGIST의 자체 재원으로 마련됐다. 따라서 한국연구재단 과제와는 별도의 재원이 들어가지만, 과기정통부는 한국연구재단 과제 수주시 장비 사용이 전제조건이었던 만큼 무료가 아니라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공동연구 과정에서 나온 각종 연구성과까지 하나하나 점검하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 과제의 결과인지, DGIST 자체 과제의 결과인지 분류하기도 했다. 한국연구재단에 제출된 성과에 DGIST 자금이 들어간 성과가 섞여 있는지, 즉 허위 또는 과장된 보고가 있는지 찾으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DGIST가 4월 1일까지 LBNL에 지급할 사용대금은 아직 금액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이후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관련 연구자들은 (정부로부터) “봉변을 당할까 두려워” 장비 사용 연구 자체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장비 사용자 확보가 지난 2017~2018년보다 저조한 실정이라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증언이다.

 

2017~2018년 DGIST가 전체의 최대 50%까지 확보한 장비 이용시간을 국내 연구자 다수가 국제공동연구에 활용해 왔다. 연구자는 DGIST 외에 고려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기관의 교수 또는 연구원과 대학원생이었으며, 총 이용 날짜도 최소 약 80일(국내 연구자 한정)에서 최대 157여 일(LBNL 및 국외연구자 포함)로 활용도가 높았다.  결국 XM-1 빔타임 50% 독점확보라는 초기 취지도 빛을 잃게 됐다. 

 

해외와 공동 연구를 해본 과학자들은 이런 조치는 국제적인 관례를 벗어난다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자칫 2012년 이후 어렵게 쌓아 온 LBNL과의 협력연구가 위태롭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LBNL의 방사광가속기 고등광원(ALS)의 빔라인(빛 송출구) 가운데 하나인 X선 현미경(XM-1)은 강한 X선으로 물질의 표면과 내부 나노 특성을 밝히는 고성능 관측 장비다. 같은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장비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없다. 이 장비는 특히 최근 차세대 전자계산 및 저장소자로 각광 받는 ‘양자물질’이나 ‘스핀트로닉스’ 등을 연구할 때 유용하다. 

 

실제로 DGIST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공동연구팀의 연구는 지난 2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와 UNIST, 광주과학기수원(DGIST) 등이 참여한 2017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발표 연구도 다 이 장비를 이용해 수행된 재료 분야 첨단 연구다. 정부도 성과가 좋다고 인정해,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인 2018년 11월 초에는 과기정통부 국제공동연구센터에서 공동연구를 우수 연구 성과로 뽑아 장관 표창을 하기도 했다. 

 

이미지 확대하기나노 자성체 내에서도 특이점이 존재할 수 있음을 비유를 통해 형상화했다. 우주 속 블랙홀과 같은 특이점적 존재가 물질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UNIST 및 DGIST 연구팀은 LBNL과 공동으로 이 성질을 밝혀 올해 2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사진 제공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나노 자성체 내에서도 특이점이 존재할 수 있음을 비유를 통해 형상화했다. 우주 속 블랙홀과 같은 특이점적 존재가 물질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UNIST 및 DGIST 연구팀은 LBNL과 공동으로 이 성질을 밝혀 올해 2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사진 제공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장비 이용 대금 지급이 중단되면서 당장 관련 연구가 중단되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장비 이용을 꺼리고 공동연구를 위한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연구자들에 대한 연구비 지급 역시 일방적으로 중단돼 연구와 대학원생 지도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구체적으로 입증된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제기된 의혹만으로 관련 실무자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이제 막 연구에 참여한 신진연구자에게 많은 제동이 걸리고 있다.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한 연구자는 “관측 장비는 가전제품처럼 스위치를 켠다고 바로 작동해 실험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여러 해에 걸친 경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며 “이에 따라 2017년 이후 (경험이 좀 쌓인) 신진연구자의 장비 이용과 연구가 늘어나는 추세였는데, 이번 일로 기세가 꺾일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관련 연구자들은 과제 연구비 지급이 묶이고, 참여하던 연구에서도 배제되는 등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인 등을 통해 여러 경로로 확인한 결과, DGIST와 LBNL 공동연구과제 책임자였던 A 교수는 관련 공동 연구과제의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물론, 참여하던 다른 연구에서도 배제됐다. 연구비 역시 지급이 보류된 상태다. 사실상 아무런 연구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로, 당장 연구실 내 박사과정생 등 제자들의 학위 과정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또다른 연구자 B 교수는 장비를 써도 되는지 자기 검열이 심해 눈치를 보며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연구자는 “어쩔 수 없이 가더라도 과제 연구비 지급이 중단돼 있으니 체류비 등을 다른 연구비를 통해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변에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방적 지시들로 현장 연구자 사이의 혼란도 극심하다.  C교수는 “장비사용대금 지급이 보류됐다는 말을 들었는데, 한쪽에는 미국 연구소와의 계약이라는 국제적 신뢰도 문제가 걸려 있고 다른 쪽에는 정부의 눈이 있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몰라 다들 큰 혼란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연구자 D 교수 역시 “공동연구와 연구원 파견 등이 다 차질을 빚고 있다”며 “연구를 열심히 한 일밖에 없는데 이런 제약을 받고 있어 안타깝다. 빨리 마무리되길 빌 뿐”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감사관실은 LBNL에 대한 장비 대금 지급이나 연구비 지급 보류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박노재 감사담당관은 “관련 지시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감사 외에 검찰 조사도 진행중인데, 그쪽에서 진행되는 일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감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사업이 중단되는 것이 절차상 맞느냐는 질문에는 “감사 중이라도 사업은 계속 진행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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