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IT 뒷받침된 천만 게놈 프로젝트, 한국의 미래 이끌 것"

2019.03.27 14:56
이미지 확대하기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이 의예과 시절부터 그려온 유화 작품 앞에 서 있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이 의예과 시절부터 그려온 유화 작품 앞에 서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병, 암처럼 치료하기 어려운 병을 미리 예측해 예방할 방법이 있을까. 또  나에게 딱 맞는 방식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있을까. 과학자들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유전체를 가장 정확하게 해독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유전자 기능을 밝히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유전체는 인간이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유전정보를 말한다. 유전자의 기능을 알면 특정 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아 차단하는 방법으로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 유전체가 최초로 해독된 뒤 2009년 국내에서도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와 마크로젠 연구팀이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를 완성했다. 마크로젠은 당시 유전체의학연구소를 이끌던 서정선 회장(한국바이오협회장)이 교수 시절이던 1997년에 세운 정밀의학 생명공학기업이다. 

 

연구팀은 2016년 염기서열을 기존보다 100배 길이로 정확하게 읽는 기술을 적용해 과거 알아내지 못했던 유전체 정보 190곳 중 절반이 넘는 105곳을 완전히 해독, 72곳을 일부 해독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서 회장과 마크로젠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지난 20일 경기도 분당 헬스케어혁신파크 6층에 있는 마크로젠 정밀의학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2016년 비교적 정확한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를 완성했다. 언제쯤 의료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까?
 

이미지 확대하기2016년 서정선 회장이 이끄는 연구팀이 한국인(AK1) 유전체를 분석해 도형화한 그림 중 하나. Nature 제공
2016년 서정선 회장이 이끄는 연구팀이 한국인(AK1) 유전체를 분석해 도형화한 그림 중 하나. Nature 제공

최근 학계에서는 인종별로 유전체 분석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이미 2000년대 후반에 한국인 유전체 지도를 완성했고, 2016년 정밀한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를 완성했다. 당시 연구 결과를 실었던 국제학술지 '네이처'로부터 '현존하는 유전체 중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의 유전자 수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유전자를 조절하는 부분이 조금씩 달라진다. 이 사실을 우리 연구팀이 최초로 발견했다. 가령 이매티닙이라는 항암제는 특정 유전자를 조절하는 부위를 표적으로 하는데, 몇몇 한국인은 여기 염기서열이 6000개쯤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한국인의 약 7~8%가 이 약이 듣지 않는다.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를 활용하면 한국인의 유전적인 특징에 맞게, 한국인 맞춤형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체 지도를 의료 분야에 활용하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의 유전체 정보, 즉 빅데이터가 필요하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10만 명의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100만 명 이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마크로젠에서는 한반도에 사는 1000만 명을 대상으로 유전체 데이터 분석을 계획하고 있다. 일명 ‘1000만 명 한반도 게놈(유전체) 프로젝트’다. 한국과 북한에 사는 사람 800만 명과 한반도에 사는 아시아인 200만 명의 데이터를 합치는 것이다. 
 

‘1000만명 한반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맞춤형 의료 외에도 무엇을 할 수 있나?

 

이미지 확대하기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역사적인 증거를 찾고 싶다. 한국은 반도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와 달리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다. 그래서 북방계의 문화와 남방계의 문화가 섞여 있다. 그래서 1000만명 한반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서의 북방계와 남방계를 연구할 예정이다.

 

중국이 2002년부터 추진한 동북공정과 특히 만주인에 대해서 객관적인 증거를 찾고 싶다. 한국과 중국 만주, 몽골, 북방계 아시아가 유전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며 한국인이 주역이라는 것을 유전적으로 밝히고 싶다. 이미 2003~2009년 6년 동안 몽골에서의 유전체 분석 연구를 했었다. 

 

또 아시아인들이 환경에 맞게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도 밝혀낼 계획이다. 나는 아시아인들이 다른 인종에 비해 ‘동안’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동안의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이 턱이다.

 

유인원의 턱은 사람에 비해 두드러지게 튀어나와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편평하다. 나는 과거 화석인류도 턱이 튀어나와 있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인간의 턱은 튀어나오지 않게 진화했거나, 유인원과 달리 어린시절이 형질에서 멈췄을 것(유태성숙)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만약 1000만명 한반도 게놈 프로젝트를 완성한다면 이 가설 중 어떤 것이 맞는지, 실제로 동안이 진화의 결과인지 등에 대해서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바이오연구기업이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이미지 확대하기마크로젠 서정선 회장. 마크로젠 제공
마크로젠 서정선 회장. 마크로젠 제공

이제 바이오는 기술이 아니라 산업이다. 과거처럼 선진국의 기술을 배워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해야 한다. 계속 도전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남들이 닦아 놓은 길이 아닌 내가 새롭게 길을 내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돼야 한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부터 게놈 프로젝트를 생각했다. 의식주를 위한 기술발전이 끝나면 인류가 의료와 오락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간 기업, 연구소 등이 협업을 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워낙 연구성과나 기술이 뛰어난 기관과 사람들이 많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바이오제약 생태계가 구축됐다. 나는 이것을 집단지성의 힘이라고 본다. 결국 오래 전부터 미리 대비했던 덕분에 결국 미국은 현재도 의료 바이오에서 1위다. 

 

최근 여러 국가에서 10만명 게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지난해 10월 28일부터 100만명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병원과 연계해 특히 아시아인과 히스패닉계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미래에 찾아올 혁명적인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대비해야 한다. 다행히 바이오 분야에 있어서 한국은 한중일 중 가장 유리한 입장이다.
  
일본의 경우 2012년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유도만능줄기세포(iPSc)연구소장이 역분화 줄기세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재생의학에 몰두해왔다. 그래서 유전체 의학 분야에서는 한국보다 뒤떨어져 있다. 

 

중국의 경우 미국처럼 100만 명 게놈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하지만 과거 중의학과 양방을 섞어버리는 바람에 의사마다 진단 기준이 달라 의료 표준화가 돼 있지 않다. 정보의학을 하기 위해서는 IT 기술도 필요하다. 10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에 반해 한국은 미국과 견줄 만큼 의료강국이다. 이뿐만 아니라 IT기술이 발달해 빅데이터를 모으는 데도 뛰어나다. 나는 이것이 기회라고 보고, 미래 한국을 이끌 수 있는 힘이 게놈 프로젝트에 있다고 본다.

 

현재 마크로젠 연구팀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유전체 분석 연구를 하고 있으며 5년 뒤부터는 북한 사람 유전체 데이터를 확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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