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과학카페] 사람도 지구자기장을 느낄 수 있을까

2019.03.26 16:57

최근 몸무게가 12g에 불과한 철새 검은머리솔새가 연간 2만㎞를 이동한다는 사실을 밝혀졌다. 북미에서 살다 겨울을 피해 남미 아마존까지 날아가 지내다 이듬해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 작은 새가 그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어떻게 길을 알고 찾아가는지도 신기하다.

 

철새나 바다거북, 연어류 등 수천㎞를 이동해 정확히 살던 곳을 찾는 생물들의 행동을 규명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뛰어들었고 그 결과 지구자기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의 몸에 생체 나침판이 있어 지구자기장의 정보를 파악해 항해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하기철새가 먼 거리를 이동해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은 세 단계로 나뉜다. 먼저 ‘먼 거리 단계’로 지구자기장과 천체(태양과 별)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다. 다음으로 ‘고향찾기(homing) 단계’로 지구자기장 정보와 함께 시각이나 후각 정보도 이용한다. 끝으로 ‘도착(pinpointing-the-goal) 단계’로 익숙한 지형지물과 냄새를 통해 찾는다. ′네이처′ 제공
철새가 먼 거리를 이동해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은 세 단계로 나뉜다. 먼저 ‘먼 거리 단계’로 지구자기장과 천체(태양과 별)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다. 다음으로 ‘고향찾기(homing) 단계’로 지구자기장 정보와 함께 시각이나 후각 정보도 이용한다. 끝으로 ‘도착(pinpointing-the-goal) 단계’로 익숙한 지형지물과 냄새를 통해 찾는다. '네이처' 제공

실제 이들의 몸에 작은 자석을 붙이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지구자기장의 세기는 수십 μT(마이크로테슬라. 마이크로는 100만 분의 1)에 불과해 이보다 100배는 강한 자석이 붙어있으면 신호가 묻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병원의 진단 장비인 MRI(자기공명영상)는 자기장의 세기가 지구자기장의 10만 배 수준이다.

 

이동성 동물뿐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과 심지어 박테리아도 지구자기장을 느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의식적으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느낄 수 있다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결과가 여럿 나왔다. 그럼에도 다른 곳에서는 재현이 되지 않는 등 내용이 부실하다.

 

 

자기력선이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때만 알파파 감소

 

이미지 확대하기지구자기장은 액체인 외핵의 순환에서 발생한다. 즉 지구 내부에 거대한 자석이 들어있는 셈으로 자기력선의 방향을 보면 북반구 중위도에서 경사각이 수평면 밑으로 70도 내외다. ‘사이언스’ 제공
지구자기장은 액체인 외핵의 순환에서 발생한다. 지구 내부에 거대한 자석이 들어있는 셈으로 자기력선의 방향을 보면 북반구 중위도에서 경사각이 수평면 밑으로 70도 내외다. ‘사이언스’ 제공

학술지 ‘이뉴로(eNeuro)’ 3월 18일자에는 사람도 지구자기장을 느낀다는 실험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미국 칼텍(캘리포니아공대)과 일본 도쿄대의 공동연구자들은 정교한 실험장치를 만들어 지구자기장 세기의 자기장이 뇌파에 영향을 미침을 입증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칼텍의 지구물리학자 조 커슈빙크(Joe Kirschvink) 교수는 지금까지 연구가 부실했던 이유를 지구자기장의 세기가 너무 약한 데서 찾았다.  실험을 하는 공간 주변에서 전자기장이나 라디오파가 나올 경우 쉽게 교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패러데이 상자(Faraday cage)로 불리는, 모든 면이 알루미늄으로 차폐된 공간을 만들어 외부 전자기장을 100%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위에 코일을 배치해 다양한 세기와 방향으로 자기장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했다. 

 

실험참가자는 머리에 뇌파측정 전극을 꽂은 채 패러데이 상자 가운데 있는 의자가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단 불을 끄기 때문에 측정이 이뤄지는 동안 졸지 않아야 한다. 참가자 34명을 대상으로 지구자기장 수준의 자기장을 다양한 방향으로 내보내면서 뇌파를 측정한 결과 3분의 2에서는 유의미한 반응이 없었지만 3분의 1에서는 어떤 패턴이 나타났다.

 
이미지 확대하기지구자기장 세기의 자기력선 방향 변화에 따른 뇌파의 변화를 측정한 실험이 이뤄진 ‘패러데이 상자’의 구조다. 모든 면이 알루미늄으로 싸여 있어 외부의 전자기장 영향을 차단한다. 그리고 코일이 감겨 있어 선별적으로 전류를 보내 특정 방향의 자기장을 생성할 수 있다. ′이뉴로’ 제공
지구자기장 세기의 자기력선 방향 변화에 따른 뇌파의 변화를 측정한 실험이 이뤄진 ‘패러데이 상자’의 구조다. 모든 면이 알루미늄으로 싸여 있어 외부의 전자기장 영향을 차단한다. 그리고 코일이 감겨 있어 선별적으로 전류를 보내 특정 방향의 자기장을 생성할 수 있다. '이뉴로’ 제공

먼저 자북(magnetic north pole) 방향으로 위에서 아래로 자기력선 방향이 바뀔 때 알파파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반면 아래에서 위로 방향이 바뀔 때는 변화가 없었다. 참고로 실험이 진행된 칼텍 캠퍼스의 위치에 해당하는 북반구 중위도에서는 지구자기장의 자기력선의 경사각이 수평에서 아래쪽으로 70도 내외다.

 

알파파는 진동수가 8~13Hz(헤르츠)인 뇌파로 차분하게 깨어있을 때 많고 각성 상태가 되면 줄어든다. 흥미롭게도 시각이나 청각 실험을 할 때도 자극을 주면 알파파가 줄어든다. 

 

한편 아래로 향한 상태에서 자기력선 방향을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릴 때도 알파파가 줄어들었다. 반면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거나 자기력선의 경사각을 위로 한 상태에서 시계반대방향 또는 시계방향으로 돌릴 때는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자기력선의 방향이 지구자기장의 자기력선 방향인 아래쪽으로 수직 회전할 때와 그 상태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수평 회전할 때만 알파파가 감소한 결과에 대해 연구자들은 “단순히 물리적 반응이 아니라 생태적 맥락(북반구에서 지구자기장의 자기력선이 아래쪽을 향하므로)에서 반응한다는 것은 사람이 지구자기장을 감지한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다만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모른다.

 

자철석 모형 vs 크립토크롬 모형

 

이미지 확대하기사람을 포함해 많은 생물의 몸 안에 자철석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과연 나침반 역할을 하는가는 불확실하다. 현재까지 나침반이 확실한 유일한 예가 박테리아 마그네토박터(Magnetobacter bavaricum)에 있는 자철석 결정이다(검은 덩어리들). ‘네이처’ 제공
사람을 포함해 많은 생물의 몸 안에 자철석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과연 나침반 역할을 하는가는 불확실하다. 현재까지 나침반이 확실한 유일한 예가 박테리아 마그네토박터(Magnetobacter bavaricum)에 있는 자철석 결정이다(검은 덩어리들). ‘네이처’ 제공

연구자들은 이번 결과가 지구자기장 감지 메커니즘 두 가지 가운데 ‘자철석 모형(magnetite model)’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자철석 모형은 한마디로 우리 몸(아마도 뇌)의 세포 안에 나침반 역할을 하는 작은 자석이 존재해 지구자기장을 감지한다는 가설이다. 실제 사람의 뇌에도 자철석 결정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진화적으로 오래된 영역인 뇌간과 소뇌에 농도가 높다고 한다.

 

한편 세포 안에 자철석 결정이 잔뜩 들어있는 박테리아가 발견됐고 이를 이용해 지구자기장을 감지해 이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 연어류나 바다거북도 몸 안의 자철석 결정으로 지구자기장을 감지해 길을 찾는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아직 사람의 뇌세포에서 미니 나침반이라고 부를 만한 배열을 지닌 자철석 결정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크립토크롬 모형(cryptochrome model)’으로 사실 이번 실험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가설이다. 동물의 망막에 있는 특정 세포에 크립토크롬이라는 단백질이 존재한다. 크립토크롬은 FAD라는 분자를 감싸고 있는데, 수정체를 통해 망막에 도달한 파란빛을 FAD가 흡수하면 전자 하나가 튀어나간다. 

 

그러면 크립토크롬의 아미노산 트립토판에서 얽힌 전자쌍 가운데 하나가 이동해 빈자리를 메운다. 얽힘(entanglement)은 양자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두 입자(여기서는 전자)의 양자상태가 서로 묶여 있다는 뜻이다. 트립토판에 남아 있는 전자와 FAD로 이동한 전자 사이의 얽힘으로 트립토판이 지구자기장 같은 약한 자기장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상태가 돼 화학반응이 일어나 그 방향에 대한 신호를 만들어낸다고 추정하고 있다.

 

약간 억지스러워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를 지지하는 실험결과가 많다. 크립토크롬 유전자가 고장 난 초파리는 지구자기장을 감지하지 못하지만, 초파리의 유전자는 물론 ‘사람’의 크립토크롬 유전자를 넣어줘도 능력을 회복한다. 한편 철새의 눈을 가리면 지구자기장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도 크립토크롬 모형을 지지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번 알파파 감소 실험은 빛이 없는 공간(패러데이 상자)에서 수행됐다. FAD가 파란빛을 받아 전자를 내보내는 첫 번째 단계가 진행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지구자기장 세기의 자기력선의 특정 방향 회전에 뇌파가 반응했기 때문에 적어도 사람에서는 크립토크롬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참고로 크립토크롬은 24시간 리듬(생체시계)에 관여하는 유전자로 먼저 연구됐다.

 

이미지 확대하기지구자기장 세기의 자기력선이 위쪽을 향한 상태에서는 시계반대방향이나 시계방향, 고정 상태에서 모두 알파파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위 왼쪽부터). 반면 아래쪽을 향한 상태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했을 때만 알파파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아래 왼쪽 파란색). ‘이뉴로’ 제공
지구자기장 세기의 자기력선이 위쪽을 향한 상태에서는 시계반대방향이나 시계방향, 고정 상태에서 모두 알파파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위 왼쪽부터). 반면 아래쪽을 향한 상태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했을 때만 알파파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아래 왼쪽 파란색). ‘이뉴로’ 제공

같은 결론이지만 각론은 달라

 

그런데 지난달 학술지 ‘플로스원’에는 사람도 크립토크롬을 통해 지구자기장을 감지함을 시사하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행동실험 결과가 실렸다. 경북대 생물교육과 채권석 교수팀은 사람이 지구자기장을 느낀다면 뭔가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했다. 

 

영장류 진화과정에서 시각과 청각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 지구자기장을 느끼는 능력이 떨어졌지만 굶주림처럼 위기상황에서는 감각이 예민해질 것으로 보고 실험참가자들을 20시간 금식하게 한 뒤 회전의자에 앉혀 자북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멈추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측정 직전 초콜릿 과자를 먹은 남성 그룹에서만 유의미하게 자북 방향에서 더 많이 멈췄다. 한편 과자를 먹지 않거나 20시간 금식을 하지 않은 그룹에서는 남녀 모두 찾지 못했다.

 

이미지 확대하기최근 국내 연구팀이 행동실험을 통해 사람도 지구자기장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회전의자에 앉아 자북(mN)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에서 멈추는 과제에서 20시간 금식하고 테스트 직전 초콜릿 과자를 먹은 남성(D)만 유의미하게 맞췄다. 한편 파란빛이 없으면 이런 능력도 사라져 ‘크립토크롬 모형’을 지지하고 있다. ‘플로스 원’ 제공
최근 국내 연구팀이 행동실험을 통해 사람도 지구자기장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회전의자에 앉아 자북(mN)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에서 멈추는 과제에서 20시간 금식하고 테스트 직전 초콜릿 과자를 먹은 남성(D)만 유의미하게 맞췄다. 한편 파란빛이 없으면 이런 능력도 사라져 ‘크립토크롬 모형’을 지지하고 있다. ‘플로스 원’ 제공

그런데 안대로 눈을 가리거나 파란빛이 포함되지 않는 긴 파장의 빛만 있을 경우 20시간 금식하고 테스트 직전 초콜릿 과자를 먹은 남성도 자북 방향을 맞추지 못했다. 망막의 크립토크롬을 통해서 지구자기장을 감지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지구자기장을 느낀다는 두 연구를 보다 문득 페로몬이 떠올랐다. 많은 동물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페로몬이 과연 사람에게도 존재하는지에 대한 오랜 논의가 있었다. 1971년 하버드대 대학원생 마샤 맥클린톡이 기숙사에 사는 여학생들의 월경주기가 동기화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나는 분위기였지만 아직도 불확실하다. 그리고 설사 페로몬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게 과연 사람의 행동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또 다른 얘기다.

 

지구자기장 역시 설사 사람이 느낀다고 하더라도 과연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에 앞서 ‘자철석 모형’이 맞는지 ‘크립토크롬 모형’이 맞는지에 대한 엄밀한 검증부터 이뤄져야 하겠지만.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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