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천재가 아닌 사람들의 과학

2019.04.25 06:00

한 직업에 대한 이미지는 언론과 대중매체를 통해 형성되고, 한 번 형성된 이미지는 잘 변하지 않는다. 사업가는 욕심 많은, 변호사는 이기적이거나 정의로운, 의사는 피로에 찌든 전문직으로, 형사는 박봉이지만 악착같이 범인을 잡는, 정치인은 권모술수에 능한 이미지로 기억된다. 예로 든 직업들은 그나마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직업들이라, 이젠 그 이미지들에 다양한 변종이 생겨 진화하지만, 과학자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과학자는 고독하게 혼자 실험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일하는 괴짜 천재이며, 거의 대부분 반사회적이고 미친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과학자를 이 범주 바깥에서 인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중학생이 생각하는 과학자 이미지. 한국과학교육학회지 제공
중학생이 생각하는 과학자 이미지. 한국과학교육학회지 제공

 

미친 천재 과학자라는 이미지

 

천재란 여러분야에서 거론되는 단어지만, 과학만큼 그 단어가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경우는 드물다. 스포츠나 예술 분야의 천재가 세상을 멸망시킬 만한 발견을 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천재들이 실제로 세상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과학의 천재는 해롭게 그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과학자의 대부분은 천재이면서 미친 과학자다. 천재이지만 미친 과학자는 자신이 발견한 물질이나 법칙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다 주인공에게 죽거나, 복수를 꿈꾸며 잠시 도망가는 것이 패턴이다. 헐리웃 영화에서 법칙이 된 이런 과학자의 이미지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재현되며 대중에게 과학자의 이미지를 각인한다⁠.

 

대중매체에 직접 등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최재천 등의 과학자는 대중매체를 통해 자신이 연구하는 과학분야를 홍보하고, 과학을 좀 더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한다. 과학대중화라 부르는 과학문화운동은 미국을 거쳐 한국에서도 크게 자리잡았고, 이제 꽤 많은 과학자들을 대중매체에서 쉽게 볼 수 있고, 그런 과학자들 중 연예인처럼 유명해진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대중에게 직접 다가선 과학자들의 노고로 인해, 괴짜 천재이자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는 조금 희석되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과학자는 낯선 이방인이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신기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과학대중화는 적어도 과학을 대중이 쉽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교두보의 역할을 했다. 

 

소수의 과학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관행 속에서

 

대중이 흔히 과학을 접하는 매체는 책이다. 한국에서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의 인기에 힘입어, 이제 교양과학도서 시장이 전체 출판시장에서도 상당히 영향력을 미치는 분야로 자리잡았다. 이런 교양과학서를 통해, 대중은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진 서사시를 접하게 되며, 그 서사시에 등장하는 다양한 영웅적 과학자를 만나게 된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과학 서사시 중 하나는 상대성 이론에서 양자역학으로 이어지는 19~20세기의 현대물리학사다. 바로 그 시기에,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천재 물리학자들이 등장했고, 기이한 행적과 토론을 통해 현대물리학이 빠르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마블의 영웅물이 영화관을 장악한 건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은 정말 영웅을 좋아하며, 없다면 만들어서까지 숭배하곤 한다.

 

이런 매체들을 통해서만 과학을 접한 사람은, 과학은 어린 시절엔 영재였고, 커서는 천재인 사람들 몇 명이 진보시키는 학문이라 생각하게 된다. 한국어로 과학을 검색하면 영재나 천재라는 단어가 반드시 따라오고⁠, 그건 영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천재에게 주어지는 가장 유명한 상은 노벨상이고, 매년 10월이면 전세계는 아주 잠깐 누가 노벨상을 받는지 관심을 갖는다. 물론 요즘엔 노벨상에 얽힌 뒷이야기들도 며칠 가지 않는다. 심지어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도 올해 노벨과학상을 누가 받았는지 해가 바뀌면 잊어버리기 일쑤다. 1901년부터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의 숫자는 908명으로 채 1000명이 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지구상에서 과학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대략 700만 명⁠, 생존해 있는 노벨상 수상자의 숫자를 70명이라고 계산해도 노벨상 수상자는 전체 과학자 10만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천재 한 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발언으로 유명해졌다. 그런 발언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왜곡된 신화가 대중에게 퍼지는 건 순식간이다. 과학자들도 그런 영웅신화에 가장 쉽게 넘어가는 직업군이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학문의 체계가, 오직 승리하는 단 하나의 이론에 의해 모든 분야가 지배되는 구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 교과서는 영웅신화 그 자체다. 왜냐하면 거기엔 이미 옳은 것으로 증명된 이론과 결과만이 실리고, 잠시 과학자들이 옳다고 여겼거나, 완전히 틀린 것으로 결론이 난 이야기들은 실리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은 실제로 그런 효율적인 시스템에 의해 진보한다. 과학적 발견은 5년만 시간이 지나도 오래된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10년이 넘은 논문을 들여다 보지 않는다. 과학이라는 시스템에서 진짜로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역사에 눈을 감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일한다. 과학은 인문학이 아니다. 그런 과학의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그게 과학이라는 것 또한 변하지 않는다. 과학은 그 학문이 발전하는 체계 내부에, 영웅주의로 포장하기 좋은 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과학사의 초기 저술들은, 고독한 천재 과학자 한 명에 대한 일대기인 경우가 많았다. 갈릴레이, 뉴턴, 다윈, 라부아지에 등의 전기가 곧 과학사로 대접받기도 했고, 실제로 그 과정은 과학사가들과 과학자들이 서로 공모한 결과이기도 했다. 영웅주의 과학사는 아주 쉽게 대중을 사로잡았고, 과학사는 그렇게 대학 안에서 독립된 학문분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런 과학사의 서술방식 속에서, 우리는 단 한명의 주인공 과학자를 보조하는 수 많은 조연과 엑스트라 과학자를 만난다.

 

필자가 저서 ′플라이룸′을 집필하던 중 초파리 과학자 로널드 코노프카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코노프카의 사진. 그는 초파리 연구로 생체시계를 발견해 2017년 노벨상을 받은 세 명의 과학자들보다 앞서 관련 분야를 연 선구자였지만, 생전에는 과학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사진 김우재 제공
필자가 저서 '플라이룸'을 집필하던 중 초파리 과학자 로널드 코노프카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코노프카의 사진. 그는 초파리 연구로 생체시계를 발견해 2017년 노벨상을 받은 세 명의 과학자들보다 앞서 관련 분야를 연 선구자였지만, 생전에는 과학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김우재 제공

과학은 협동조합 방식으로만 작동한다

 

키스 사이먼튼 (K. Simmonton)이라는 심리학자는 2013년 네이처지에 “천재적 과학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라는 대담한 주장을 싣고⁠, 이에 대한 근거로 대부분의 과학 연구가 거대한 팀을 통한 협업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그는 과학이 혼자 일하는 천재에 의해 발전한다는 고전적인 이미지를 여전히 버리지 않고,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과학자가 혼자 고독하게 일하는 장면이 아름다운 과학이라고 생각하거 있었다. 과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사이먼튼의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과학 연구가 점점 더 협업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해간다는 걸 알아채는 건 중요하다.

 

지금처럼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17세기 근대과학이 형성되는 유럽에서도, 이후 화학과 생물학이 근대과학의 지위를 얻게 되는 18세기와 19세기에도, 과학자들은 언제나 협업을 중시했고, 네트워크 속에서만 일했다⁠. 17세기 로버트 보일은 '보이지 않는 대학 (Invisible College)'을 만들어 과학자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했고, 이 모임이 훗날 영국왕립학회의 근간이 된다. 과학은 인문학이나 철학보다 후발주자였으므로, 17세기 과학자들은 학회를 통해 서로 교류하고 단결을 도모했으며, 다양한 학회가 유럽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보편성을 핵심으로 하는 과학의 특성상, 시대와 국경 및 인종을 초월한 보편적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과학자간의 교류는 과학활동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과학은 태생부터 지금까지, 협업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학문이다⁠. 과학이 천재들에 의해 발전한다는 건 픽션에 불과하다다. 과학은 처음부터 협동조합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게 만들어진 학문이다. 고독한 천재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혼자서는 과학에 기여할 수도, 발견을 인정받을 수도 없다. 과학적 발견은 협동조합의 지원 없이, 절대로 과학에 기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노프카의 의미

 

최근 출판한 《플라이룸》 원고를 탈고하고, 책에 넣을 사진을 찾던 중, ‘코노프카의 시계’의 주인공 로날드 코노프카 (Ronald Konopka)의 가족으로부터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을 받았다. 코노프카는 2017년 생체시계를 조절하는 유전자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세 과학자의 선배 격인 인물로, 초파리에서 최초로 생체시계를 조절하는 ‘피리어드(period)’를 발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와 대중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는 과학자로 실패하고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노벨상 수상 2년 전 조용히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과학자는 천재가 아니다. 그들은 연구실에서 조용히 좁은 자신의 분야를 연구하며, 나머지 시간은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을 만나면서, 또한 과학자로 살아오면서, 과학가 공동체가 천재 과학자라는 이미지에 대해 지닌 컴플랙스를 알게 되었다. 과학은 1등과 1등이 아닌 주자가 지나치게 분명하게 구분되는 분야 중 하나다. 따라서 대부분의 과학자가 코노프카 같은, 혹은 코노프카보다도 못한 삶을 살면서도, 과학자들의 회합에선 영웅을 이야기하고, 전설을 흠모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결국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는 십만 명 중의 한 명 뿐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과학자는, 평범하게 과학을 직업으로 갖게된, 보통 과학자들이다. 99%의 과학자는 보통 과학자로 살다 죽는다.

 

‘보통 과학자’라는 개념은, 코노프카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던 중 머리에 떠올랐다. 과학자로 살아온 내 삶은, 다윈이나 아인슈타인에 비하면 보잘 것 없고, 내가 연구로 노벨상을 받을 확률은 번개에 맞을 확률과 비슷한 상황에서, 게다가 내 연구가 인류의 기억에 남을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과학자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 졌다. 분명 우리는 기록된 영웅 과학자의 이야기만을 듣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영웅의 주변과 뒤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과학자가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모든 영광을 단 한 명의 과학자가 가져가야만 하는, 1등만 기억하는 이 더러운 과학계에서, 누군가는 그런 과학자들을 추모하고 수면 위로 끌어올려도 될 것이다.

 

과학이 천재들에 의해 발전한다는 생각은, 역사가 위인들에 의해서만 발전한다는 사관을 받아들이는 일과 비슷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과학은 다양한 과학자들의 오케스트라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만 기억하는 사람은, 그 음악을 즐길 자격이 없다. 과학자 공동체의 숨겨진 공로자를 찾아내는 일, 그런 이들의 노력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과학의 민중사이며, 보통과학자가 대부분인 이 시대에 과학자가 삶의 의미를 찾는 길인지 모른다. 이 연재는 그런 보통 과학자들의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초파리 과학자 로널드 코노프카의 삶에서 ′보통 과학자′라는 개념을 생각한다. 김우재 제공
초파리 과학자 로널드 코노프카의 삶에서 '보통 과학자'라는 개념을 생각한다. 김우재 제공

 

참고자료
(1) “김현영, 박수경, & 김영민. (2012).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에 대한 중학생들의 이미지와 인식비교. 한국과학교육학회지, 32(1), 64-81.”에서 인용
(2) 김명진. (2005). 영화 속에 나타난 과학기술 이미지. 한국과학기술학회 강연/강좌자료, 65-81.
(3) 최근엔 송유근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다.
(4) https://www.quora.com/How-many-scientists-exist-worldwide
(5) 필자의 다른 글도 참고할 것. “김우재, 과학사는 영웅신화와 거리가 멀다. Sciencetimes (2011).” 곽노필의 글도 참고할 만 하다. http://plug.hani.co.kr/futures/1496889
(6) Simonton, D. K. (2013). After Einstein: Scientific genius is extinct. Nature, 493(7434), 602.
(7) https://www.nocutnews.co.kr/news/4658972
(8) 오히려 인문학이야말로 고독한 지식인이 독방에서 연구할 수 있는 분야인지 모른다.
(9) http://www.bbc.com/future/story/20120316-the-myth-of-the-lone-genius
(10) 그리고 그들은 천재가 아니라 대부분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 townlab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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