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고고학 산책]발 밑에 숨겨진 고대유적, 실체를 파헤치다

2019.03.16 06:00
프랑스 그레작에서 항공 사진으로 발견된 작물표지. 고대 갈리아 사람들의 대규모 공동묘지인 것으로 드러났다. J. Dassie(W)
프랑스 그레작에서 항공 사진으로 발견된 작물표지. 고대 갈리아 사람들의 대규모 공동묘지인 것으로 드러났다. J. Dassie(W)

우연히 발견한 주먹도끼가 세계를 뒤집다

 

놀랍게도 많은 고고학 유적이 우연히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구석기 유적인 경기도 연천군의 전곡리 유적입니다. 전곡리 유적은 1978년, 미군 병사 그렉 보웬이 발견했습니다. 한탄강에 놀러 간 그는 강변에서 이상하게 생긴 돌을 주웠습니다. 군인이 되기 전 고고학을 공부했던 터라 이것이 돌을 깎아 만든 석기라 생각하고 고고학자에게 석기를 보냈지습니다. 놀란 고고학자들이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시작했더니 수많은 석기가 발견됐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석기들이 몇십만 년 전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의 흔적이라 추측했습니다.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놀라운 유물은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였습니다.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돌의 양쪽 면에 날이 있는 형태로, 그 전 단계인 찍개보다 정교한 석기입니다. 당시까지 주먹도끼는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다보니 고고학자들은 아시아는 석기를 만드는 기술이 뒤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학설을 제시한 학자의 이름을 따서 ‘모비우스 학설’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유럽 인류가 더 우월하다는 인종차별적인 시각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곡리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모비우스 학설을 와르르 무너뜨렸습니다. 보웬의 발견이 고고학의 지형도를 바꾼 겁니다.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습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벽화도, 중국의 진시황릉도 우연히 발견됐습니다. 라스코 벽화는 네 명의 소년이 숨겨진 전설의 보물을 찾다가, 진시황릉은 농부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매의 눈으로 유적을 찾아라

 
지표투과 레이더를 사용하는 모습. 땅속을 투과하는 전파를 쏜 후 부딪혀 돌아오는 반사파를 분석한다. 위키피디아 제공
지표투과 레이더를 사용하는 모습. 땅속을 투과하는 전파를 쏜 후 부딪혀 돌아오는 반사파를 분석한다. 위키피디아 제공

물론 우연히 유적을 발견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유적은 많은 경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거쳐 발견됩니다. 이런 발굴조사는 ‘구제발굴’과 ‘학술발굴’로 구분합니다. 구제발굴이란 건물이나 도로를 건설하기 전 땅속에 유적이 있는지 확인하고 발굴하는 것을 뜻합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특정 지역을 조사하는 경우를 학술발굴이라고 합니다. 가령 고구려와 백제가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발견되면, 실제로 그 기록이 맞나 확인해 보기 위해 한강 유역의 여러 요충지에서 삼국시대 유적을 조사해 보는 겁니다. 


두 경우 모두 조사 지역이 정해지면 고고학자는 지표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장소를 선정하고 시험 삼아 몇 군데를 조사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말로 유적이 있다는 확신이 생긴 다음에야 정밀한 조사를 시작합니다. 우선 조사 장소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눈으로 흔적을 찾아봅니다. 유적 주위 밭의 고랑을 살펴보면 땅을 갈아엎으면서 올라온 토기 조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만으로는 유적을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유적이 땅속 깊이 묻혀있다면 특히 그렇습니다.  혹은 사막이나 밀림처럼 넓은 지역에서 유적을 찾아야 할 수도 있흡니다. 이럴 때 고고학자들은 땅에 더 가까이 다가가거나, 혹은 땅에서 더 멀리 떨어집니다. 땅속의 유적을 찾기 위해서는 전파로 땅속을 조사하는 ‘지표투과 레이더’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레이더는 땅속을 3차원으로 검색할 수 있어 지하 유적의 형태까지 알 수 있습니다. 넓은 지역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아예 높은 곳에서 드론이나 비행기,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을 통해 유적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공중 탐사’라고 해요. 페루의 유명한 나스카 유적이 이런 식으로 발견됐습니다.


가뭄이 고고학자를 도와준다

 

영국 랭커서주 고우스로프홀의 정원에서 드러난 작물표지. 1940년대에 있다 철거된 정원의 형태가 가뭄으로 드러났다. Lancashire County Councill
영국 랭커서주 고우스로프홀의 정원에서 드러난 작물표지. 1940년대에 있다 철거된 정원의 형태가 가뭄으로 드러났다. Lancashire County Councill

이렇게 고고학자들은 유적이 있을 만한 모든 증거를 탐색합니다. 심지어 가뭄에서 도움을 얻기도 합니다. 지난해 영국에는 40여 년 만의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남서부 웨일스 지방의 농장은 누렇게 말랐습니다. 그런데 농작물이 시들면서 벌판에서 네모, 원 등 이상한 무늬가 나타났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무늬가 농장 밑에 묻혀있는 유적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전에 돌담이었던 자리에서 자라는 농작물은 수분이 부족해 누렇게 변한 것입니다. 이렇게 유적의 흔적에 따라 나타나는 농작물의 특정한 형태를 ‘작물표지’라 부릅니다. 가뭄으로 나타난 작물표지를 하늘에서 촬영한 결과, 고고학자들은 웨일스 전역에서 240여 개의 유적을 찾아냈습니다. 


이렇게 유적은 다양한 방법으로 발견됩니다. 그러니 역사 속 현장에 갔다가 이상한 흔적을 찾으면 땅을 유심히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그렉 보웬처럼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작물표지가 만드러지는 과정
작물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

 

※필자소개

고은별.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 시흥 오이도 유적, 구리 아차산 4보루 유적, 연천 무등리 유적 등 중부 지역의 고고학 유적 발굴에 참여하였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6호(3.15발행) [GO!GO!고고학자] 곳곳에 숨겨진 유적을 찾아라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C201906N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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