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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괴담에 잘 빠진다

2019년 03월 16일 06:00

 

이미지 확대하기인간의 감정중 공포는 가장 오래된 진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감정중 공포는 가장 오래된 진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무서운 이야기 좋아하시나요? 귀신이 등장하는 전설이나 민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사랑하는 가장 오랜 문학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즐겁고 기쁜 이야기만 들어도 부족한데, 왜 우리는 자진해서 무섭고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도망치는 인간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분류해보면 대략 일곱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공포입니다.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는 뇌의 깊숙한 곳에 있는데, 의지로 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오래된 진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황이나 공포 반응은 아주 신속하게 나타납니다. 


괴기 영화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그림자. 모골이 송연해지고 신경이 쭈뼛거립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고양이가 서성이는 모습이었네요. 이렇게 공포는 미처 우리가 정체를 의식하기도 전에 나타납니다. 아주 빠르고 강력합니다. 


진화적으로 공포는 즉각적인 도주 반응을 유발합니다. 서로 먹고 먹히는 야생의 세계에서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목숨이 달아납니다. 도망치는 쪽이 점점 신속한 공포와 도주 반응을 진화시키면, 포식자는 굶게 됩니다. 포식자는 더욱 살금살금 다가와서 갑자기 공격하는 전략을 진화시킵니다. 끝없는 군비경쟁이 일어납니다. 


국경을 지키는 레이더는 종종 새떼와 비행기를 잘 구분하지 못해서 잘못된 경고를 울립니다. 하지만 레이더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설령 실수가 있다고 해도 레이더의 민감도를 높이는 편이 유리하죠. 우리 인간은 그렇게 진화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의 상당수는 도망담입니다. 계모를 피하고, 괴물을 피하고, 외적을 피하고, 귀신을 피합니다. 그러면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동굴로 들어가고, 벌판으로 도망치고, 집안으로 숨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 그리고 이러한 위험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마음은 인간의 가장 깊은 본성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잔뜩 긴장한 토끼처럼 도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아일랜드 동화, <벡폴라의 유혹>의 삽화. 많은 괴담은 공포 속에서 도망치는 이야기를 다룬 도주담이다. 플리커
아일랜드 동화, <벡폴라의 유혹>의 삽화. 많은 괴담은 공포 속에서 도망치는 이야기를 다룬 도주담이다. 플리커

타고난 공포, 학습된 공포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할까요? 예전에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트라우마가 공포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어린 시절에 심각한 충격을 받은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한 자극에 쉽게 놀라고는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개에 물린 이후로 강아지 옆에도 가지 못한다거나, 물에 빠진 경험 때문에 수영장을 피한다는 식이죠.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상에 대해서도 공포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과 사파리를 가볼까요? 사자나 호랑이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린아이들도 깊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사자에 물려본 경험은 고사하고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말이죠. 닛코 틴베르헌이나 콘래드 로렌츠는 이를 두고 생득적 해발 기구라고 하였습니다. 특정한 상황이나 자극에 대한 타고난 행동 양식이 이미 있다는 것입니다. 


침팬지 새끼에게 뱀을 보여주면 깜짝 놀랍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두려워합니다. 타고난 본성입니다. 야생에서 자주 접하는 위협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공포 반응을 가지고 있는 편이 유리합니다. 그러나 보송보송한 토끼 인형을 보여주면 놀라지 않습니다. 전기 자극과 함께 토끼 인형을 보여주면 공포 반응을 학습시킬 수 있지만, 전기 자극이 사라지면 금세 사라집니다. 즉 공포는 분명 학습될 수 있지만, 더 잘 학습되는 대상이 있고 좀처럼 학습되지 않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죠. 


특별히 겪어보지 않았어도 금세 학습되는 공포가 있습니다. 높은 곳, 고양잇과의 동물, 불, 뾰족한 사물, 더러운 것(배설물, 고름), 깊은 물, 상한 음식 등입니다. 일부는 혐오의 감정과 같이 나타나죠. 거의 타고난 본성입니다. 한두 번만 이야기해도 금세 학습되고 평생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더러운 배설물이 있습니다. 파리도 몇 마리 앉아 있네요. 하지만 초콜릿을 사용해서 그럴싸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집어 먹으려면 제법 용기가 필요합니다.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해서 겨우 맛볼 수 있습니다.


공포가 잘 학습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뱀에 물려 죽는 현대인은 거의 없습니다. 극히 드물죠. 일단 도시에는 뱀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매일매일 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로 치어 죽습니다. 그러면 도로와 자동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세상을 지배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집 앞 도로를 질주하는 차를 바라봅니다. 도로나 자동차에 대한 공포 반응이 진화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통사고를 경험하면 상당기간 트라우마가 남습니다. 운전을 꺼리게 되고 같은 경험을 다시 느끼기도 하죠. 원초적인 두려움의 상당수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또한 인간 사회의 두려움 중 상당수는 경험을 통해서 습득됩니다. 높은 수준의 인간 문화가 나타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괴담의 진화

 

이미지 확대하기현대사회의 1인가구 증가에 따른 현실 공포를 담룬 영화  도어락(2018)의 스틸컷. 네이버영화 제공
현대사회의 1인가구 증가에 따른 현실 공포를 담룬 영화 ' 도어락(2018)'의 스틸컷. 네이버영화 제공

인간은 높은 수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언어를 통해서 자기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고, 경험과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의 선조는 민담과 전설을 통해서 귀중한 경험을 후손에게 전달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 글이 없던 태곳적 시기죠. 


무서운 이야기에는 괴물이 등장합니다. 뿔이 나고 피부색이 다르며 얼굴도 아주 이상하게 생겼습니다. 옷차림이나 말투도 다릅니다.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 인류가 겪게 된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바로 외적의 침입입니다. 신석기 초기에는 대략 40% 이상의 인구가 부족 간 전투로 사망했다고 하죠. 다른 말과 다른 옷차림, 다른 풍습을 가진 외집단에 대한 두려움은 귀신과 괴물이라는 형태로 변형되었습니다.


같은 부족원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남을 기만하고 사기를 치는 녀석은 어느 사회에나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이야기의 주된 소재 중 하나는 재치있는 기지로 사기꾼을 골탕 먹이는 이야기입니다. 상대의 의도를 얼른 간파해서 오히려 사기꾼을 곤경에 빠트리는 이야기죠. 저승사자도 속이고, 강도도 속이고, 호랑이도 속이고, 적군도 속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도시괴담(도시전설)은 도시지역이 무대가 되어 현실감을
아돌프 에벌리. < 베드타임 스토리>, 1869년. 무서운 이야기는 위험을 경고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키피디아​​​​​​

 괴담을 좋아하는 인간


인간은 괴담을 좋아합니다. 아마 어른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기억하고, 이를 삶의 고비마다 지혜로운 지침으로 삼고, 나중에 후손에게 잘 물려준 조상이 훨씬 잘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생태학적으로 세 가지 종류의 위협이 있습니다. 첫째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위협이 된 대상입니다. 아예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굳어져서 타고나는 편이 유리합니다. 둘째 몇 세대에서 몇십 세대 정도 지속되는 위험입니다. 전쟁, 가뭄, 홍수, 민란, 화재 등과 같은 것이죠. 전설과 괴담, 민담으로 만들어집니다. 분명 어린 시절 들었던 옛날이야기에 현명한 해답이 있습니다. 셋째 당대에 갑자기 나타난 위험입니다. 앞서 말한 자동차 사고나 미세먼지 같은 것이죠. 이런 것에 대한 타고난 두려움은 없습니다. 민담이나 전설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서 유연하게 대처해나가야 합니다. 


무서운 괴담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특징입니다. 인간은 쾌락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대로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무섭고 두려운 이야기도 좋아합니다. 무섭고 두려운 이야기를 통해서 후손에게 지혜를 전달해 줄 수 있었고, 그러한 이야기를 경청한 후손은 더 많은 후손을 남겼습니다. 무서운 괴담은 아이러니하게 ‘무서우면서도 즐거운 쾌락’을 주는 경험이 된 것입니다. 


에필로그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괴담도 예전과 달리 빠르고 신속하게 전파됩니다. 몇 대를 거쳐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유언비어가 이야기의 구조로 만들어집니다. 현대 사회의 민담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허위의 사실을 담은 소위 ‘찌라시’와 ‘주작’ 글은 종종 사회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 인물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도시 괴담의 주제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나 상황은 조금씩 다릅니다만,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자극한 도시 전설은 무엇인가요? 현대 사회에서 유행하는 괴담은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의 삶을 가장 위협하는 대상에 대한 경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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