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차기 과총 회장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젊은 세대 참여 폭 넓힐 것”

2019.03.05 16:42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언론 첫 인터뷰서 차기 과총 활동 방향 밝혀
집행부 30% 여성과 젊은 과기인에게 기회
재건축 돌입 ‘사이언스플라자’ 공유 개념 도입
기초예산 증가보다 거버넌스 체계 갖춰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국기원 사거리에서 국기원 방향 언덕으로 올라가다 보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있는 한국과학기술회관이 나온다. 4일 이곳의 한쪽 건물 한쪽 벽은 공사를 위한 펜스가 설치돼 있었다. 4월부터 재건축이 시작되는 본관 건물이다. 원래 리모델링할 계획이었으나 재건축으로 급선회한 이 건물은 현재 ‘사이언스 플라자’라는 가칭이 붙어 있다. 과학기술회관이라는 이름과는 사뭇 다른 사이언스 플라자라는 명칭에서 새로움, 변화에 대한 열망이 읽힌다. 

 

지난달 27일 차기(20대) 과총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이우일(65)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를 과학기술회관 신관에서 만났다. 회장 당선 뒤 언론과의 첫 인터뷰다. 내년 3월 취임하는 그에게 사이언스 플라자 공간 활용 전략은 커다란 숙제다. 과학기술계의 역할 재조명, 세대 교체 열망, 국민의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도 회복 등 과총을 둘러싼 숱한 현안이 펜스가 둘러쳐진 본관 공사 현장처럼 보였을 그에게 선거 후 며칠 동안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물었다. 

 

“올해 8월이면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합니다. 에너지를 오롯이 과총에 쏟을 수 있게 되는 셈이지요. 무엇보다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 일이 많기 때문이죠.”

 

이우일 차기 과총 회장은 다양한 사회 이슈가 과학기술과 관련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학기술은 정치적 논리에 휘말렸고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인식됐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내년 출범하는 20대 과총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과학기술은 정치, 정부의 정책과는 다른 가치중립적인 영역이라는 점을 전체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단체 자격으로 천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604개 회원단체의 연합체 형태인 과총 회원 중 학회만 394개에 달한다. 국내 학회 활동을 하는 과학기술인 대다수는 과총 회원이다. 학회가 많은 만큼 이해관계도 다양하다. 경력이나 나이가 많은 이들이 학회장이나 집행부를 돌아가면서 맡아 젊은 세대가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이 차기 회장은 이런 내부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몇 가지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아직 계획 단계이긴 하지만 공약에서 밝힌 대로 여성과 젊은 과기인들로 20대 과총 집행부의 30%를 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과총 사업의 일부를 젊은 과기인들에게 전적으로 맡긴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젊은 연구자들을 참여시킨다면서 각종 토론회나 이슈 현장에서 청중으로 참석하라고만 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탑다운과 같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젊은 연구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다”며 “젊은 과기인들이 직접 사업이나 이벤트를 설계하고 중심이 돼서 활동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기인들 전체를 융화하고 한목소리를 내는 구조의 주춧돌을 만들겠다는 이 차기 회장의 철학은 다음달 재건축에 돌입하는 과기회관 본관 건물 활용법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지금처럼 학회별로 사무실을 나눠주고 세미나실 여러개 만드는 것으로는 변화를 모색하기 어렵다”며 “학회별 행정을 서서히 통합해 나가고 공유 오피스 개념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방안을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학회별로 칸막이를 만드는 방식과는 선을 긋겠다는 의지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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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구 예산 20조원 시대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차기 회장은 연구자 중심 창의 연구라는 방향은 맞다고 본다. 다만 진흥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과학기술과 규제에 포커스를 맞추는 산업 성격의 정보통신이 합쳐진 현재의 거버넌스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 차기 회장은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인식하는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며 “청와대에 과학기술보좌관과 함께 과학기술비서관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 차기 회장은 “결국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 될 것”이라며 “신뢰가 쌓이면 의과대학 편중과 이공계 기피 현상 등 인재 양성 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차기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차기 과총 회장으로 현 정부 과학기술 정책과 과학기술혁신본부 출범 등 변화에 대한 평가는.

 

“정부 초기 제시됐던 변화의 방향은 맞다고 본다. 미국을 비롯한 과학기술 선진국은 창의성과 연구자(사람)을 중시한다.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거버넌스가 뒷받침하고 있느냐는 부분은 회의적이다.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급의 직급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과학기술계는 혁신성장, 창의연구, 안전한 사회 건설이라는 3가지 과제를 동시에 요구받고 있다. 과총 회장으로 어디에 방점을 찍고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신뢰 회복이다. 최근 본 감염병 관련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바이러스 퍼지면 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대사였다. 그 얘길 듣던 또다른 배우가 ‘걱정하지마, 우리에겐 미국립보건원(NIH)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NIH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정도기에 영화에서까지 이런 대사가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창의연구를 강조해야 하는데 아직고 정부 R&D 예산의 상당 부분을 중소기업, 산업 쪽에 주고 있다는 게 아쉽다.”

 

기초연구 예산 20조원 시대다. 신뢰도를 거론했는데 어마어마한 예산을 어디에 배분하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중요해 보인다. 그런데 연구자들의 연구윤리 문제가 최근 불거졌다. 해결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연구비를 횡령하고 가짜 학술단체를 여러번 다닌 연구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상습적인 범법자를 양산하는 연구관리시스템 문제도 들여다봐야 한다. 인건비나 연구장비, 간접비 관련한 세세한 규정을 연구현장에서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도 어떤 문제가 터지면 더 규정을 세밀하게 만든다. 이런 부분이 연구자를 옥죈다. 악의적인 연구비 유용은 일벌백계해야 하지만 너무 세밀한 규정도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연구 현장에 집중하고 젊은 세대 참여를 늘리는 것은 과총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어떤 복안이 있는가.

 

“고민이 많다. 젊은 과기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하고 평가하는 사업을 만들 것이다. 또 학회장과 집행부 감투가 경력이 되지 않도록 틀을 깨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실제로 초임 박사들에게 일을 맡겨보면 굉장히 잘한다. 시작할 때 삐걱거린다면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19대 과총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 등 굵직한 행사를 과학기술과 정보방송통신인으로 분리해서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분리하지 못했다. 차기 과총은 어떻게 진행할 생각인가.

 

“분리하는 게 맞다고 본다. ICT 분야는 사업이지만 과학기술은 사업이 아니다. 여러 측면에서 잣대가 다르다. 다만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잘 논의해서 무리하지 않는 방향으로 분리 원칙을 내세울 것이다.”

 

남북 화해 정세 속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백두산 연구, 산림 및 광물자원 연구, 감염병 대처 등 시급한 현안들이 많다. 어떤 입장을 취할 계획인가.

 

“남북관계는 결국 좋은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보건, 농업, 자원, 인프라 등으로 나뉜다. 과총은 남북 과학기술 교류 협력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일례로 북한 감염병 관련 연구자들은 북한의 감염병 대처 상황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이야기한다. 빠르게 대응 방안을 마련해서 연구 및 지원을 해나가야 한다.”

 

과학기술 인재 육성도 중요한 축이다. 과총의 적극적인 액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교육 문제가 사실 가장 심각하다. 뭔가 확실한 방향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과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교육계의 일이니 분리해서 생각했지만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교육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관계다. 더 이상 교육계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큰 틀에서 고민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데 과총이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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