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왜 이럴까?]진실을 대하는 인간의 속성 '라쇼몽 효과'

2019.02.24 10:00
영화 라쇼몽(羅生門,1950)의 한 장면. 숲 속에서 일어난 똑같은 살인사건을 두고 사람마다 증언하는 바가 다르다.  imdb
영화 라쇼몽(羅生門,1950)의 한 장면. 숲 속에서 일어난 똑같은 살인사건을 두고 사람마다 증언하는 바가 다르다. imdb

일본의 사무라이 한 명이 죽은 채 발견됩니다. 사무라이의 아내와 산적, 무당에 빙의된 사무라이가 관청에 소환됩니다. 살인과 겁탈, 결투, 분노, 배신이 어지럽게 섞인 사건입니다. 사건의 당사자는 서로 진술이 엇갈립니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살인 행위는 정정당당한 결투도 되고, 비겁한 습격도 됩니다. 낯선 남자와 눈이 맞은 화간(和姦)은 어쩔 수 없이 당한 겁탈이 되기도 합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목격한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1950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영화 '라쇼몽(羅生門)'을 발표합니다. 처음에는 ‘이것도 영화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제멋대로 진실을 판단하는 인간의 추악한 측면을 잘 그려낸 작품으로 지금도 회자됩니다.

 

진실이라는 이름의 거짓말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세 가지 열로 구분된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각각 좌측 열, 중간 열, 우측 열이라고 하죠. 좌측 열은 객관적 자료입니다. 결과나 데이터, 기록 등입니다. 중간 열은 해석적 개념과 관련된 것입니다. 자아와 본능, 불안, 마음, 목적 등에 관한 것이죠. 우측 열은 기본 원리입니다. 수학적 원리나 물리적 법칙에 관한 것입니다.

 

박한선 제공(자료: 그레고리 베이트슨, 《마음과 질서의 과학》
박한선 제공 (자료: 그레고리 베이트슨,《마음과 질서의 과학》)

우리는 흔히 좌측 열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쳇말로 팩트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객관적 자료는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자료 자체의 진위나 취사선택의 가능성, 자료에 대한 기록과 자료 자체가 동일한 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자료의 가치는 다른 자료와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데, 세상의 모든 기록과 자료를 다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무제한적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정보를 충분히 평가할 시간도 부족합니다. 대략적인 경험칙으로 판단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의 감정과 정서, 본능, 자아, 공감이야말로 진정한 진실이라고 합니다. 기억도 왜곡되고 기록도 조작될 수 있지만, 마음의 진정성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중심적 공감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태학적 목적에 따라서 세상을 판단합니다. 강력한 감정이 동반되지만 그래서 더 왜곡되기 쉽습니다.

영화 '라쇼몽'은 진실에 대한 인간성의 결함을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살인 사건에 관한 기록과 증언, 증거는 모두 상반됩니다. 좌측 열의 결함입니다. 이에 대한 사건 당사자의 반응도 제각각입니다. 여인으로서의 정절, 사무라이의 명예, 천하무적의 도적이라는 공명심, 살고 싶다는 욕망, 상대에 대한 연정, 처벌에 대한 두려움, 배우자에 대한 질투와 의심 등 이른바 중간 열의 진실입니다. 각자에게는 진실이지만 모두에게 진실은 아닙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 imdb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imdb

18세 소년이 자신의 친아버지를 날카로운 잭나이프를 사용해서 살해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어 있습니다. 열두 명의 배심원이 유무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소집됩니다. 은행원, 사업가, 주식 브로커, 페인트공, 영원사원, 노인, 건축가, 시계공, 회사 임원, 풋볼 감독 등 직업도 다양합니다. 처음에 이들은 모두 유죄로 평결합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실화는 아닙니다. 1957년 헨리 폰다 주연의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영화입니다. 러닝타임 거의 대부분은 좁은 방에서 12명의 배심원이 나누는 평결에 관한 토론으로 진행되는 흑백영화지만 제법 재미있습니다.


12명의 배심원은 인간 본성의 각기 다른 부분을 상징합니다.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 감독은 우리 안에 있는 12개의 자아를 이야기하고 싶었던지 모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다양한 자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치열한 토론을 벌입니다. 우리 내면의 성난 자아입니다. 이들의 난상토론을 통해서 자기와 세상, 미래에 대한 평결을 내립니다. 누구의 의견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는지는 각자 다릅니다.

 

헨리 폰다가 분한 사려 깊은 배심원. 그는 조용하고 사려깊은 인물로 모든 의문에 대해 전체적인 측면을 고려한 진실을 추구한다.
헨리 폰다가 분한 사려 깊은 배심원. 그는 조용하고 사려깊은 인물로 모든 의문에 개해 전체적인 측면을 고려한 진실을 추구한다.

 

무엇이 진실을 가리는가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물리적 정보가 충분해야 합니다. 물론 앞서 말한대로 그러한 ‘객관적’ 진실도 사실 진실이라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일단 심리적 이유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진리 여신의 눈을 가리는 심리적 원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는 귀인성입니다. 이는 행동이나 결과를 판단할 때 동기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입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에서 한 배심원은 말합니다. 용의자가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라고 말했으니 살해 동기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죽여버리겠다’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나 배심원 간의 논쟁이 심해지자 흥분한 그는 다른 배심원에게 ‘죽여버리겠다’라고 소리칩니다. 스스로 귀인성의 오류를 증명한 셈입니다.

둘째는 공격성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덥고 좁은 배심원 실에서 진행됩니다. 의견이 갈린 배심원은 서로 공격하고 미워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덥고 짜증 나고, 주변 분위기도 적대적이면 더욱 과격한 판단을 내립니다. 베이트슨이 말한 중간 열의 진실이 가진 결함입니다.

셋째는 매력입니다. 배심원은 서로의 의견을 들으면서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이 생깁니다. 짧은 시간 내에 우정과 비슷한 감정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감은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사건과 무관한 개인적 호감이 네 편 내 편을 가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넷째는 집단 역동입니다. 손을 들어 평결을 했을 때는 용감한 단 한 명만 무죄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기명 투표를 하자 둘로 늘어납니다. 인간은 집단의 분위기에 굴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니까 헨리 폰다가 용감하게 반대했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런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다섯째는 믿음의 보속성입니다. 그저 편견과 선입관에서 비롯한 믿음이라고 해도, 일단 어떤 방향을 정해지면 잘 바뀌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장과 자기를 동일시해 주장을 관철하지 못하면 마치 스스로 상처를 입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니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별 고민 없이 어쩌다가 시작된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여섯째는 편견입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그들 중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흑인 중 하나’, ‘빈민 중 하나’, ‘남자 중 하나’, ‘외국인 노동자 중 하나’, ‘금수저 중 하나’와 같은 식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의 속성을 개인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편견을 저지릅니다. ‘흑인은 사실상 모두 살인자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소’라고 하는 식입니다.

진실은 있나

흔히 진실이 존재하지만 가려지기 쉽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진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기억과 감정, 이성은 모두 기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지와 감정 체계는 ‘진리 추구’를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개체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판단하고 느낍니다. 사기꾼처럼 얕은꾀를 부린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층위에서 영혼을 울리는 강력한 자기기만이 일어납니다. 강한 확신이 들수록 자신의 판단을 의심해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베이트슨은 우측 열의 진실에 주목했습니다. 세상이 움직이는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5+7=12’라는 진리는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키가 큰 용의자가 키가 작은 아버지를 찔렀는데, 상처가 아래에서 위로 날 수 없다는 사실이나 기차가 지나갈 때는 ‘죽여버리겠다’는 소리가 들릴 수 없다는 사실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가진 기억의 불완전성이나 감정에 휩쓸리는 판단적 착오에 대한 심리학적 사실도 바로 기본적인 원리에 해당합니다. 그 외는 모두 ‘임의적’ 진실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여러 일이 모두 명백하게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세상의 여러 기본적 원리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인류의 지혜는 아주 불완전한 데다가 우리 모두가 인류 지혜의 정수를 꿰뚫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도 세상의 여러 법정에서 수많은 판결이 내려질 것입니다. 분명 상당수는 오판일 것입니다. 법정 밖에서 일어나는 판단은 더욱 잘못된 것이 많을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장담할 수 있는 판단은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에필로그 


아무리 그래도 최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속 시원한 해결책은 아닙니다만,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첫째 충분한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도 가라앉습니다. 여러 의견을 들어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일단 어떤 식으로는 판단을 내리면 잘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배심원이 첫 판단을 그르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8시에 시작되는 풋볼 경기였죠. 얼른 경기를 보고 싶으니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둘째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과 자신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입니다. 만약 판단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동일한 집단에 있거나, 같은 처지에 있거나,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자신의 결정을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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