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서 발견된 세계 최대급 ‘공룡 발자국 화석지’ 사라지나

2019.01.28 03:00
경남 진주시 정촌면 뿌리산단 내에서 발견된 수각류 공룡발자국들. 진주=윤신영 기자
경남 진주시 정촌면 뿌리산단 내에서 발견된 수각류 공룡발자국들. 진주=윤신영 기자

“제 평생 이렇게 많은 공룡 발자국 화석을 한군데에서 또 볼 수 있을까 싶어요.”

 

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정촌면 뿌리산업단지 조성공사 현장을 찾아가는 길에 김경수 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가 말했다. 10여 년째 진주 일대에서 숱한 화석들을 발굴해 온 국내 대표적인 ‘화석 사냥꾼’ 중 한 명이다. 발굴지에 도착하니 그의 말이 이해가 갔다. 남북 방향 20m, 동서 방향 15m 정도의 지층에 수천 개는 족히 돼 보이는 공룡 발자국이 빼곡히 찍혀 있었다. 큰 공룡 발자국과 작은 공룡 발자국이 겹쳐 찍힌 곳도 부지기수였다.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몰라 한동안 허둥댔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룡 발자국 화석이 한곳에 밀집한 화석산지는 중국에 있는데, 발자국 수가 2200개입니다. 이곳은 그 수를 넘길 게 확실합니다.” 김 교수의 말에, 귀퉁이에서 발굴지 항공사진을 놓고 발자국 위치를 기록하던 배슬미 연구원이 “오늘까지 센 공룡발자국 수가 1100개”라고 말했다. 바닥에는 아직 표시조차 하지 않은 공룡 발자국이 부지기수였다. ‘세계기록’은 확실히 넘을 것 같았다.

 

곁에서는 학부 재학생인 정진영 씨와 안소희 씨가 장갑을 낀 손으로 바짝 엎드려 흰색과 분홍색, 하늘색 액체 백묵으로 공룡 발자국의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어지럽게 겹쳐 있는 발자국에서 김 교수가 ‘매의 눈’으로 한 개체의 왼발, 오른발 발자국을 찾으면, 학생들이 같은 색으로 표시한 뒤 일련번호를 붙인다.

 

경남 진주시 정촌면 뿌리산업단지 조성부지 내 공룡 발자국 화석 발굴지. 진주=윤신영 기자
경남 진주시 정촌면 뿌리산업단지 조성부지 내 공룡 발자국 화석 발굴지. 진주=윤신영 기자

뿌리산단 조성공사 중 현재의 지층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공사 때 거쳐야 하는 사후환경영향평가의 일환으로 지질조사를 하던 중이었다. 김 교수팀은 용각류가 육중한 몸으로 내리누른 둥근 발자국이 찍힌 사암층을 조사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층을 한두 겹 들어냈다. 두 겹 들어낸 곳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수각류 공룡 발자국이 쏟아진 것이다. 용각류는 만화 ‘아기공룡 둘리’에서 엄마 공룡으로 나오는, 덩치가 크고 목이 긴 초식 공룡이고, 수각류는 육식공룡이다. 

 

이 지층은 1억1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진주층’이다. 김 교수가 발견해 지난해 말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개구리 발자국 화석, 역시 지난해 발표한 참새 크기의 세계 최소형 육식 공룡 ‘랩터’ 발자국 화석,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과정이 생생히 새겨진 익룡 발자국 화석 등이 이 층에서 나왔다. 임종덕 문화재청 학예연구관은 “발자국 화석 산지로는 처음으로 세계적 대형 화석 발견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층”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곳은 몇 달 내에 사라져 버릴 운명에 놓였다. 지난해 11월 열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조사가 끝난 뒤 현장을 보존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층이 밀리는 현상이나 균열(갈라짐)이 일어나 보존이 힘들어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보존할 경우 산업단지 공사가 지연되는 등 경제적 피해가 생길 것이라는 입장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현장 보존이 어려울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으로 화석을 지층에서 분리해 연구소 등에 옮겨 보존하는 방법도 있지만, 2~3년의 작업시간이 필요해 역시 설득이 쉽지 않다. 김 교수는 마지막 대안으로 전체 화석 표면을 복제해 일단 기록이나마 남길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원본’을 잃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색깔별로 표시된 발자국은 각각의 개체가 걸은 흔적을 연결한 ‘보행렬’이다. 중간에 움푹 파인 부분은 현 지층이 아닌, 두 지층 위의 용각류 발자국에 의해 눌린 자국이다. 진주=윤신영 기자
색깔별로 표시된 발자국은 각각의 개체가 걸은 흔적을 연결한 ‘보행렬’이다. 중간에 움푹 파인 부분은 현 지층이 아닌, 두 지층 위의 용각류 발자국에 의해 눌린 자국이다. 진주=윤신영 기자

오후 3시. 화석 사냥꾼에게 ‘마법의 시간’이 왔다. 한껏 낮아진 겨울 햇빛이 발자국 화석에 그늘을 드리웠다. 입체감이 살아나며 발자국 하나하나가 선명해졌다. 현장을 안내하던 김 교수가 갑자기 “미니사우리푸스다!”라고 외치며 바싹 엎드렸다. 그가 가리킨 곳에 길이가 2~3cm가 채 되지 않는 초미니 공룡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이 발굴지에서는 처음 발견한 종이었다. “이렇게 작은 공룡은 얌전히 걷지 않아요. 보폭이 발 길이의 10배는 되죠.” 그가 다시 ‘매의 눈’을 뜨고 20~30cm 앞뒤를 살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안 보이던 보행렬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이날 미니사우리푸스 발자국 42개를 찾았다.


“1억1000만 년 전 생태계의 다양성을 증명하는 종이 하나 더 늘었네요. 몇 개월을 와도 안 보였는데…. 이렇게 안 보이던 화석이 어느 날 갑자기 보이기도 합니다. 현장에 여러 번 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화석이 사라지면 기회도 같이 사라져 버리겠지만요.”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팀의 배슬미 연구원이 경남 진주시 정촌면 뿌리산업단지 조성부지 내 공룡 발자국 화석 발굴지에서 발자국 화석의 위치를 지도에 기록하고 있다. 진주=윤신영 기자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팀의 배슬미 연구원이 경남 진주시 정촌면 뿌리산업단지 조성부지 내 공룡 발자국 화석 발굴지에서 발자국 화석의 위치를 지도에 기록하고 있다. 진주=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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