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왜 이럴까]마다가스카르 여우원숭이가 인간에게 준 숙제

2019.01.27 15:43

여우원숭이(Lemur)는 마다가스카르에만 사는 영장류입니다. 영장목의 한 하목을 차지하고 있는데, 총 여덟 개의 과와 15개의 속, 100개가 넘는 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둥이가 튀어나와 있고, 눈은 크고, 꼬리는 긴 특징이 있습니다. 주로 나무 위에 사는데 야행성입니다.      

 

흔히 여우원숭이는 이름처럼 ‘원숭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원숭이(monkey)나 유인원(ape)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우리말의 원숭이가 가진 기의와 영어의 몽키(monkey)가 가진 기의가 다르기 때문에 영장류 관련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면 여우원숭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몇 가지 비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우원숭이는 여우일까? 원숭이일까?            

 

여우원숭이는 물론 여우가 아닙니다. 주둥이가 튀어나온데다가 꼬리도 길고 아름답기 때문에 여우원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우원숭이는 원숭이일까요? 앞서 말한대로 일상 대화에서는 흔히 인간을 제외한 모든 영장류를 원숭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긴팔원숭이는 유인원인지만 이름은 긴팔’원숭이’입니다. 심지어 일상 대화에서는 침팬지도 그냥 ‘원숭이’로 뭉뚱그려 말하곤 합니다. 학문적으로는 잘못된 호칭입니다만.      

 

정확하게 말하면 여우원숭이는 원원류(prosimians)에 속합니다. 원원류란 원숭이와 유인원을 제외한 영장류를 말합니다. 원시적인 원숭이라는 뜻인데요, 여우원숭이가 바로 원원류입니다. 따라서 엄격하게 말하면 여우원숭이는 ‘원숭이’가 아닙니다. 원원류(原猿類)의 원은  원숭이 원(猿)인데, 여우원숭이는 사실 원숭이가 아니라니 좀 헛갈립니다. 일상적인 용어와 영어 명칭, 분류학적인 명칭, 라틴어 학명 등이 서로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입니다.      

 

원원류는 아주 오래 전에 소위 ‘일반적인’ 원숭이와 분리되었습니다. 계통학적으로 여우원숭이하목과 로리스하목, 안경원숭이 하목으로 나뉩니다. 과거에는 굽은 코를 가지고 있어 코가 축축한 영장류를 통틀어 곡비원류(Strepsirrhini)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안경원숭이는 직비원류입니다. 즉 마른 코를 가지고 있지만 그외의 특징은 원원류에 가깝기 때문이죠. 아무튼 여우원숭이는 영장목 곡비원아목에 속하는 원원류, 영장류의 진화 과정 초기에 분화한 영장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 박한선 제공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 박한선 제공

여우원숭이는 아프리카에 산다?            

 

여우원숭이는 물론 아프리카에 삽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에는 없습니다. 오직 마다가스카르에서만 발견됩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동남쪽 모잠비크에 가까운 섬나라입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원래 곤드와나 대륙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중생대에 아프리카, 남극, 인도와 차례대로 떨어지면서 독립된 섬이 됩니다.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섬이죠. 즉 아프리카에 속한 섬이라고 해야 하지만, 생태적으로는 아주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죠.      

 

여우원숭이는 존재 자체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습니다. 영장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하고 있지만, 여우원숭이는 오직 마다가스카르에만 살고 있습니다. 도대체 여우원숭이가 어떻게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할 수 있었을까요? 아프리카에 살던 영장류의 조상이 뗏목을 타고 건너간 것일까요? 아니면 아시아에서 머나먼 인도양을 건너간 것일까요? 아니면 곤드와나 대륙이 나뉘기 전에 이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장류의 조상이 있었던 것일까요?      

 

한때 인도양에 전설의 대륙 레무리아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레무리아(Lemuria)의 어원이 바로 여우원숭이입니다. 거대한 인도양 주변에 있는 아시아, 호주,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비슷한 동물의 화석이 발견되니, 과거에 이를 서로 이어주는 대륙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죠. 물론 증거는 빈약합니다. 말 그대로 전설상의 대륙입니다. 아무튼 여우원숭이는 그냥 아프리카에 산다고 하는 것보다는 꼭 집어서 마다가스카르에 산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 박한선 제공
알락꼬리여우원숭이. 박한선 제공

여우원숭이는 어떻게 마다가스카르에 건너갔을까?            

 

여우원숭이는 아마 신생대 3기 팔레오세나 에오세에 아프리카에 살던 초기 영장류에서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망망대해를 건너 마다가스카르로 갈 수 있었을까요? 직선거리로 따져도 거리가 무려 500km가 넘습니다.      

 

지금까지는 뗏목 가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홍수가 나면 통나무와 각종 나무 줄기, 잎 등이 뭉쳐서 일종의 자연적인 뗏목을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우연히 그 위에 여우원숭이의 조상이 올라탄 것이죠. 여우원숭이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아마 과거에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이들을 태운 뗏목은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갑니다. 해류를 타고 머나먼 섬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뜻밖의 대항해입니다. 계산에 따르면 약 한 달 내에 아프리카에서 마다가스카르에 다다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지금은 해류가 반대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모잠비크에서 뗏목을 타고 마다가스카르에 갈 수 없습니다. 아마 약 2천만 년 전에 아프리카 대륙과 마다가스카르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해류가 바뀐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제 마다가스카르에 새로운 종이 유입되기 어려워집니다. 외부와 독립된 상태에서 진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동식물의 상당수가 유일하게 ‘마다가스카르’에서만 발견되는 이유죠.      

 

종종 이를 ‘싹쓸이(sweepstakes) 가설’이라고 합니다. 마다가스카르에 고립된 여우원숭이는 비슷한 생태학적 지위를 가진 다른 원숭이와의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포식자도 드뭅니다. 지상천국입니다. 여러 생태적 환경에서 백여종이 넘는 다양한 종으로 분화합니다. 아마 다른 동식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생물다양성의 보고, 마다가스카르는 우연과 필연이 겹친 긴 지질학적 시간을 지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빚어졌습니다.            

 

 마다가스카르 마조제지 국립공원의 원시림.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동식물 상당수는 오직 마다가스카르에서만 발견된다. 박한선 제공
마다가스카르 마조제지 국립공원의 원시림.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동식물 상당수는 오직 마다가스카르에서만 발견된다. 박한선 제공

여우원숭이는 인간의 조상인가?            

 

여우원숭이는 영장류 초기에 분화했기 때문에 종종 다른 원숭이나 유인원, 인간의 조상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비교생물학적으로 여우원숭이의 해부학적 구조나 행동 양상이 초기 영장류 연구에 중요한 힌트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우원숭이는 인간의 조상으로 간주해서는 곤란합니다.      

 

사실 원시적인 영장류라는 용어도 조금은 ‘인간 중심적’인 표현입니다. 마치 로리스나 여우원숭이, 안경원숭이를 거쳐 구세계 원숭이로 진화하고, 꼬리가 없는 유인원이 나타난 후 긴팔원숭이,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를 거쳐 궁극의 창조물,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는 식의 오해입니다. 이런 오해는 ‘왜 침팬지는 진화를 멈추었는가?’ 혹은 ‘왜 여우원숭이는 아직도 수천만 년 전 원시적 상태에 머물고 있는가?’라는 잘못된 질문을 하게 합니다.      

 

인간과 여우원숭이의 공통 조상은 수천만 년 전에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계통수를 그려보면 마치 신생대 3기에 분화하여 진화를 멈춘 ‘원시 영장류’같은 인상을 주지만, 수천만 년간 서로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인간이 더 많이 진화하고, 여우원숭이는 덜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상황에 맞춰 각자의 방향과 각자의 속도로 진화한 것입니다. 여우원숭이는 인간의 조상이 아니라 인간의 먼 친척입니다.      

 

멸종 위기의 여우원숭이, 멸종 위기의 인간          

 

여우원숭이를 비롯한 마다가스카르 고유종의 상당수가 멸종위기입니다. 여우원숭이에 속하는 대부분의 종이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IUCN Red List)에 올라있습니다. 심지어 일부는 CR 등급인데, 심각한 멸종 위기 상태를 말합니다. CR 단계를 넘어서면 야생 멸종 등급입니다. 동물원이나 보호구역에만 있다는 것이죠.      

 

여우원숭이의 수가 급감하는 것은 인간의 탓이 큽니다. 인구가 늘고 빈곤이 지속되면서 벌목이 성행합니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내고 있는데, 점점 숲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화전을 하기 위해서 불을 지르기도 합니다. 여우원숭이가 살 곳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죠. 심지어 여우원숭이를 사냥하기도 합니다. 생김새가 귀엽고 털이 아름답기 때문에 애완동물로 키우려는 수요가 있습니다.    

 

심지어 잡아서 요리를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과거 전통사회라면 사냥을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구가 적고 숲이 울창하며 여우원숭이의 개체수가 충분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인구가 크게 늘었습니다. 상업적인 포획으로 개체수가 급감합니다. 게다가 원주민이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사냥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국적인 요리를 맛보려는 여행객의 빗나간 취향을 맞추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단속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에게 생물다양성은 한가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주민의 생활 수준을 높이면서 동시에 마다가스카르의 독특한 생태 환경을 지켜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우원숭이가 멸종되면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인간의 멸종입니다. 여우원숭이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마다가스카르에서 이들이 사라진다면, 인간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져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여우원숭이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들의 먼 친척인 우리 인간의 미래도 결코 밝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국립공원 인근에서 새참을 나르는 말라가시인. 마다가스카르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지역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박한선 제공
국립공원 인근에서 새참을 나르는 말라가시인. 마다가스카르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지역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박한선 제공

 

에필로그

 

다행히 마다가스카르의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마다가스카르 대사관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는 마다가스카르 국립 공원 및 유네스코 등의 요청에 따라 생명다양성재단 최재천 교수님과 기후 변화 전문가 김수석, 코이카 동아프리카실 김명년,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박한선 등으로 구성된 실사단을 파견하여 현지 실태 조사를 시행했습니다. 생물다양성 보존과 현지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이러한 작은 노력이 의미있는 결실을 맺어 한국과 마다가스카르 정부의 우호적 협력 하에 여우원숭이와 인간이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 개발의 모델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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