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소수자·생태 연구를 후원합니다" 소수연구 숨은 후원자 크라우드 펀딩

2019.01.16 18:34
크라우드펀딩이 다양성이 부족한 과학 연구 분야에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제주 한림 해안에서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고 있는 ′해양생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 MARC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크라우드펀딩으로 연구비를 마련했다. 제주=윤신영 기자
크라우드펀딩이 다양성이 부족한 과학 연구 분야에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제주 한림 해안에서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고 있는 '해양생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 MARC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크라우드펀딩으로 연구비를 마련했다. 제주=윤신영 기자

과학자에게는 늘 ‘연구비’의 부담이 따른다. 정부와 연구관리기관의 연구비를 지원 받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도 많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몇 년 전부터 온라인에서 관심 있는 개인으로부터 소액의 연구비를 지원 받는 ‘크라우드 펀딩’이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연구 현황을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젊은 비전임 연구자와 여성연구자 등 과학기술계에서 그 동안 소수로 분류되던 연구자가 전임 또는 남성 연구자에 비해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돼, 다양성이 떨어지는 과학 연구 분야에서 다양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  연구비 규모가 작아 실질적인 도움은 될 수 없다는 회의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여성, 학생 연구자에 유리한 크라우드펀딩


헨리 사우어만 독일 베를린경영기술대학원(ESMT Berlin) 교수팀은 2012년 개설된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엑스페리먼트닷컴(Experiment.com)’에서 이뤄진 700건의 과학 연구 크라우드펀딩 사례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미국공공도서관회보(PLoS)’ 4일자에 발표했다. 엑스페리먼트는 2018년 1월까지 모두 1820건의 연구 주제가 개설된 세계 최대의 과학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다.


연구 결과 크라우드펀딩을 가장 열심히 이용한 과학자는 아직 박사 학위를 받지 않은 학생(55.7%)으로 나타났다. 박사후연구원은 7.1%였고, 조교수 이상 교수는 28.6%를 차지했다. 대학 외 기관에 소속되거나 소속이 없는 경우는 8.5%였다.


크라우드펀딩의 성공률은 꽤 높았다. 전체 평균은 48%로, 이반적인 크라우드펀딩인 킥스타터의 36%보다 높았다. 미국과학재단의 2014년 연구비 지원 선정률(23%)는 물론, 2015년 미국국립보건원(NIH)의 16%보다2~3배 이상 높았다.

 

남녀별 크라우드펀딩 특징 비교. 위가 남성 아래가 여성 연구자다. 여성 연구자가 목표금액으 4분의 1가량 적은 대신, 성공률은 높고 모금액도 많았다. - 사진 제공 PLoS
남녀별 크라우드펀딩 특징 비교. 위가 남성 아래가 여성 연구자다. 여성 연구자가 목표금액(파란 막대)은 4분의 1가량 적은 대신, 성공률은 높고 모금액(빨간 막대)도 많았다. 녹색 막대는 모금 성공시 금액 평균이다. - 사진 제공 PLoS

흥미롭게도 성별에 따라 성공률과 목표액, 모금액에 다 차이가 났다. 남성은 목표액을 상대적으로 크게 잡은 반면(3948달러) 목표액 도달 성공률은 43%로 여성의 57%보다 낮았다. 여성은 목표액은 남성의 4분의 3 정도로 낮게 잡은 반면 성공률은 57%로 14%p 높았다. 실제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금액의 합도 여성이 두 배 높았다. 다만 목표액을 넘겨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한 경우만 따로 보면 모금액은 남녀가 거의 비슷했다.


연구자의 신분에 따라서도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학생과 비전임은 목표액이 적은 대신 모금액이 많았고, 교수는 목표액이 훨씬 컸지만 실제로 모은 금액이 적었다. 예를 들어 학생은 약 280만~328만 원 정도를 목표로 삼았고 41~57%의 금액을 모금했다. 박사후연구원은 485만 원을 목표로 하고 46%를 모금했다. 하지만 교수는504만~ 579만 원을 평균적으로 목표로 삼았지만 14~16%를 모금하는 데 그쳤다. 


연구팀은 몇 가지 가설을 이유로 제기했다. 하나는 대중이 과학적 성과와 별개로 현실적인 필요성이나 교육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신진 연구자를 선호해서라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연구자들이 더 창의적인 과제를 제안해서라는 설명, 교수 등 전임 연구자들은 정부 연구비 지원에서 떨어진 완성도가 낮은 연구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젊은 연구자들이 소셜미디어와 더 가까워서 유리했다는 설명도 있다.


사우어만 교수는 “크라우드펀딩 시스템은 기존의 연구비 지원 시스템에서 배제됐던 연구그룹에게 자원을 제공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며 “하지만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연구비는 물론 전체적인 연구비 규모 면에서도 전통적인 연구비에 비해 크게 작아 대안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마리화나 연구나 총기 문화 등 기존의 연구비 지원 시스템에서는 발붙이기 힘들던 주제가 크라우드펀딩으로 연구비를 받을 가능성이나, 연구윤리를 준수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크라우드펀딩이 ‘체격’을 키우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친지 등 지인의 도움을 넘어서서 더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연구자의 신분별 크라우드펀딩 차이. 학생이 목표액에 비해 모금액이 많고 박사후연구원도 비교적 많았다. 하지만 교수는 모금액 평균이 적었다.
연구자의 신분별 크라우드펀딩 차이. 학생이 목표액(파란 막대)에 비해 모금액(빨간 막대)이 많고 박사후연구원도 비교적 많았다. 하지만 교수는 모금액 평균이 적었다. 녹색 막대는 모금 성공시 금액 평균이다. -사진 제공 PLoS

●한국도 기초, 소외 연구에 크라우드 펀딩 시도 


한국에서는 크라우드펀딩이 학문의 다양성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돌고래 행동생태연구자인 장수진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연구원(박사과정)은 지난해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연구비를 마련했다 그는 2012년부터 남방큰돌고래를 조사해 온 이 분야의 국내 개척자. 이후 후배(김미연 교토대 연구원)과 함께 2017년 비영리 연구단체인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를 결성했고, 2018년부터는 하정주 연구원이 합류하면서 서울과 일본, 제주에서 각기 남방큰돌고래 연구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연구가 기초 중의 기초연구라는 사실. 장 연구원은 “정부에 연구비를 신청하려 해도 너무 기초적이이라거나(기본적인 조사 데이터도 없는 분야다 보니 발견 장소와 행동 등 기본 데이터부터 모으는 실정이다), 너무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했다”고 말했다. 현장 연구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기존 연구비 지원제도도 걸림돌이었다. 돌고래 현장연구는 현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카메라와 드론으로 돌고래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의 연속이다. 선박 유류비와 차량 유지비, 현지 체재비가 가장 큰 ‘연구비’다. 


하지만 정부 연구비는 지원 대가로 체재비나 유류비 등의 증빙이 필요한 등 조건이 까다로웠다. 장 연구원은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까지 정부로 받은 연구비는 0원”이라며 “근근이 버티는 저(장 연구원)와 후배들마저 졸업하거나 연구를 그만두면 과연 한국에서 남방큰돌고래를 연구할 사람이 있을까 걱정하며 후배들과 MARC도 만들고 소액이나마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연구비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 조심스럽게 올린 첫 크라우드 펀딩은 이틀만에 목표액인 300만 원을 달성했고, 3개월치 연구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10월에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크라우드펀딩 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두 번째 모금을 했다.

김승섭 교수팀의 트랜스젠더 연구 스토리펀딩 페이지. 목표 1000만 원을 164% 달성해 펀딩에 성공했다. -홈페이지 캡쳐
김승섭 교수팀의 트랜스젠더 연구 스토리펀딩 페이지. 목표 1000만 원을 164% 달성해 펀딩에 성공했다. -홈페이지 캡쳐

2017년 1월에는 이혜민·박주영·이호림 고려대 보건과학과 연구원과 교수팀은 ‘트랜스젠더 건강’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했다. 김 교수는 저서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 “연구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정부 기관에서는 관심이 별로 없어 지원을 받는 데 몇 차례 실패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ESC의 크라우드펀딩 1호 연구이기도 한 이 프로젝트로 이 연구원팀은 2017년 한국 트랜스젠더 278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경험과 건강에 대해 연구해, 이들이 정신과 진단이나 성전환 수술 등 필요한 의학적 조처를 받는 데 수백만~수천만 원이 드는 비용이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연구와 논의, 그리고 정책적 개입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해 2월 학술지 ‘한국역학회지’에 게재됐고, ‘오롯한 당신’이라는 책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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