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렵 탓에 상아 없이 태어나는 코끼리들, 진화의 법칙을 뒤집다

2019.01.13 19:05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코끼리들. 대규모 밀렵 이후 태어나는 암컷 코끼리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상아가 없거나 매우 작은 상태로 태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 제공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코끼리들. 대규모 밀렵 이후 태어나는 암컷 코끼리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상아가 없거나 매우 작은 상태로 태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 제공

크고 튼실한 상아를 가진 코끼리가 수십 년 간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면서 최근 코끼리들이 상아가 없는 종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현지 시간)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은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에서 최근 상아 없이 태어나는 암컷 코끼리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에는 상아 없는 코끼리가 전체의 4% 미만이었지만 현재는 암컷 코끼리의 3분의 1 정도가 상아 없이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켄트대 연구진을 비롯한 현지 과학자들은 이 같은 자연 도태가 1970년대 말부터 16년에 걸쳐 일어난 내전 당시 코끼리의 90%가 밀렵으로 사라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1992년 종전 후 태어난 암컷 코끼리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암컷 코끼리 3마리 중 1마리는 상아 없이 태어났고, 상아를 갖고 있어도 매우 작았다.
 
도미니크 곤칼브스 영국 켄트대 박사과정 연구원은 "밀렵꾼들이 큰 상아를 노리다 보니 내전 당시 상아가 없거나 작았던 소수의 코끼리들만 밀렵에서 살아남아 짝짓기를 할 수 있었고, 그 새끼들이 유전자를 물려받아 상아가 없는 코끼리가 점점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암컷을 통해 유전되는 상아 형성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가 개체군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끼리는 물을 구하기 위해 땅을 파거나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무껍질을 벗길 때 상아를 이용한다. 따라서 무리가 이동할 때 상아가 있는 개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수컷끼리 암컷을 놓고 싸움을 벌일 때도 큰 상아를 가진 수컷이 유리하다. 그러나 인간의 밀렵으로 인해 상아가 없는 개체가 생존에 유리해지면서 기존의 자연 선택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셈이다.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암컷 코끼리들은 공격성도 이전 세대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이나 차량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밀렵 피해를 통해 학습된 보호본능이거나 상아가 있는 코끼리들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상아가 없는 개체의 습성일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도미니크 연구원은 "이전에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에 살았던 코끼리들은 인간과 매우 친밀한 존재였기 때문에, 코끼리의 공격성이 높아진 것은 매우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며 "밀렵꾼에 대한 코끼리들의 트라우마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현재 각각 다른 무리에 있는 암컷 코끼리 10마리에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기를 달고 상아가 없는 코끼리들의 행동을 추적 관찰 중이다.
 
이 같은 코끼리의 도태는 모잠비크에서만 목격된 현상은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도 코끼리 국립공원의 경우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암컷 코끼리 174마리 가운데 98% 이상이 상아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역시 밀렵꾼들이 대규모 사냥을 벌였던 지역이다. 이에 따라 밀렵이 활발한 다른 지역에서도 코끼리 보호를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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