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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공격 받는 의사들

2019년 01월 02일 17:09
이미지 확대하기의사 중 96.5%가 폭력이나 폭언, 협박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제공
의사 중 96.5%가 폭력이나 폭언, 협박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제공

의료인, 특히 의사에 대한 폭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0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 중 96.5%가 폭력이나 폭언, 협박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의 약 15%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폭력을 경험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쯤 되면 상시적인 위협이라고 할 만합니다.
     
공격받는 의사들
   
한국 사회에서 의료인이 입는 폭력에 대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조사는 아직 이루어진 바 없습니다. 주로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대한 조사나 설문조사에 기반한 것입니다. 일단 병원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쉬쉬하고 넘어가는 일이 잦았고, 이에 대한 언론이나 시민 사회의 관심도 별로 없었습니다. 의료 접근성이나 의료 분쟁에 대한 사회적 담론에 비하면 정말 무관심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미국에서 이뤄진 한 연구에 따르면 건강 관리 및 사회 서비스 영역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다른 어떤 영역보다도 심각합니다. 미국 시카고대 모리슨 교수의 연구는 가장 흔한 희생자로 간호사를 들었지만, 의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어떤 보건의료 직종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조사에 포함된 1980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에선 22명의 의사가 살해됐습니다.  전체 의료인 살해 건수의 4분의 1에 해당합니다. 신체적 폭력이나 위협, 폭언을 포함하면 항상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여건은 더 심각합니다. 실반 허만 재단의 마이클 네이블 박사는 최근 국제조현병연구학회에서 1981년부터 2014년 사이의 정신 보건 의료인의 살해 사건을 조사해 공개했습니다. 환자나 환자 가족, 환자 동료로부터 공격을 당해 숨진 의료인 수를 조사했는데 총 33명의 의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의사 살해 사건 중 37%가 정신과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고 약 3분의 1은 진료실에서 일어났습니다. 가해자의 진단병명 중 조현병은 17%이며, 그 외에도 다양한 진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가장 흔한 진단명은 ‘진단명 불상’이었습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임호테프는 기원전 27세기 경 이집트 의사였다. 역사상 최초의 의사로 꼽히는데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등장하기도 이전이다. 전통적으로 의사는 높은 학문적 권위와 신성한 의술을 가진 대표적인 직업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전문직의 사회적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위키피디아
임호테프는 기원전 27세기 경 이집트 의사였다. 역사상 최초의 의사로 꼽히는데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등장하기도 이전이다. 전통적으로 의사는 높은 학문적 권위와 신성한 의술을 가진 대표적인 직업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전문직의 사회적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회의 변화와 진료실 폭력
     
의사는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입니다. 흔히 히포크라테스를 최초의 의사로 생각하지만, 사실 4500년 전 이집트 재상이었던 임호테프가 역사상 최초의 의사로 꼽힙니다. 그는 의사이자 특히 정신과 의사였는데, 우울증 환자를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이후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원형이 됩니다.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의사는 높은 학문적 권위와 신성한 의술을 가진 대표적인 전문가로 존경받았습니다. 전문직의 꽃으로 불렸습니다. 

 

근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의료는 모든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로 인정받게 됩니다. 서구 사회의 의료는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첫째는 최신 과학의 도입을 통한 증거 기반의 의학이고 둘째는 주치의 제도 등을 통한 보편적 접근성입니다. 높은 수준의 의학적 성취가 이어지고 동시에 의료 접근성도 확대됩니다. 의료 불평등이나 의료 기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전반적인 의학 기술 발전과 의료 제도의 혁신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에 관해서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앞서 말한대로 의사와 의료인에 대한 불신과 폭력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상한 점은 의사에 대한 폭력을 다룬 최근 연구가 인도와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보편적 의료 접근성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국가입니다. 혹시 의료 체계나 기술의 발전에 비해 사회적 인식이 발맞추어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진료실 폭력에 대한 대중적 반응 중 일부는 ‘환자가 더 절박하니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의사가 그런 것도 이해해주지 못하느냐’ 등입니다. 심지어 ‘의사는 돈을 많이 버니까 좀 맞아도 된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치 의료인에 대한 폭력을 계급 갈등에 의한 것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가 바로 ‘의사 멱살잡이’입니다. 응급실이나 수술실 앞에서 다짜고짜 의사의 멱살을 잡고 늘어집니다. 물론 주인공의 내적 정서를 잘 드러내기 위한 연출 기법일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배웠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하도 자주 그런 일을 당하니까 의료인도 그냥 그러려니 할 정도입니다.


인도 의학회의 선딥 미쉬라 박사는 진료실 폭력의 원인 중 하나로 의사의 사회적 고립과 지식인 계층의 부상을 꼽습니다. 그에 따르면 지식인 계층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일단 의사가 자신의 몸이나 가족에 통제력을 가진 상황을 탐탁치 않아 합니다. 의료 전문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책자를 통한 광범위한 지식 접근성을 통해서 의사의 전문적 결정을 쉽게 불신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지식이 정확할 리 없습니다. 그러나 의학적 이슈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의사의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다고 합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환자가 자신의 자율권을 위임해야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수술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마취를 받아야 하고, 부작용이 있는 약도 처방대로 먹어야 합니다. 정신과 상담의 경우에는 심지어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서도 밝히고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치료를 받으려면 당연한 일이지만 아주 유쾌한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미쉬라 박사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의사가 점점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지식인 계층에서 의료인이 배제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고립이 의료인 폭력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합니다. 그의 의견에 전부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수준(거의 기적과 같은 수준)의 의학적 예방과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보편적 의학적 혜택이 전 국민에게 제공되고 있는 상황(서구 및 동아시아 사회에 국한된 일이지만)에서 오히려 의료 전문가, 특히 의사에 대한 불신과 고립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현상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의사와 환자 사이의 폭력은 집단 전체에 과도한 방어 반응을 유발하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의사와 환자 사이의 폭력은 집단 전체에 과도한 방어 반응을 유발하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진료실 폭력의 사회적 비용
     
의사는 사회적 양성 비용이 아주 많이 드는 직업입니다. 전문의를 양성하려면 최소 10년에서 13년이 소요됩니다. 거의 모든 사회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를 의료인으로 선발하고 집중적인 교육과 훈련 과정을 거치게 합니다. 직업적 기술의 배타성이 높아서 수평적 이동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른 영역에서 대치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같은 의사라도 전문과목이 다르면 서로의 역할을 대신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중견 의료인에 대한 폭력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상당합니다. 90년대 중반에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진료실 폭력 한 건당 직접적인 사회적 비용이 약 1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직접적인 치료 비용과 카운셀링 비용, 진료의 공백 등을 감안한 것입니다. 다른 환자의 피해 등 이차적인 비용까지 생각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금전적 손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의료인의 심리적 위축입니다. 한번 폭력을 당하게 되면 적극적인 진료를 꺼리게 됩니다. 또 다른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어렵고 골치 아픈 환자를 꺼리게 됩니다. 매 맞고 칼에 찔릴 위험성을 무릅쓰고 환자 본인도 꺼리는 치료를 감행할 의료인은 없습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폭력은 집단 전체에 과도한 방어 반응을 유발하게 됩니다. 물론 의료인 살해는 아주 드문 일이니 과민 반응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체적 폭력이나 폭언, 협박은 위험 수위를 한참 넘은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진료실 폭력에 대한 대책은 주로 ‘의료인의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 ‘따뜻하고 공감적인 관계 형성’과 같은 식입니다. 마치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듯한 대책입니다. 고압적이고 쌀쌀맞은 의사와 박대받는 아픈 환자의 대립 구도로 상황을 왜곡하고, 개인적으로 불쾌한 일화적 경험을 근거로 도리어 의사를 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정신보건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의 가장 흔한 피해자는 동반자가 없는 상황에서의 여성 의료인입니다. 반대로 주된 가해자는 주로 조직폭력배나 마약 중독자, 주취자, 수감 중인 죄수,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 등입니다.


폭력적 행위는 늘 어딘가에서 일어납니다.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어두운 본성입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사회적 제도와 집단의 편견, 무관심으로 인해서 상시적인 폭력적 행동을 좌시한다면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 약속을 깨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거의 모두 의사의 손에 태어납니다. 몸과 마음이 아플 때마다 의사의 도움을 받습니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몸에 차가운 메스를 대도록 허락합니다.


건강할 때는 의사가 필요없습니다. 병들고 아플 때 병원을 찾습니다. 의사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할 때, 우리가 만나는 의사들이 모두 폭력적 경험으로 잔뜩 위축된 의사뿐이라면 슬픈 일입니다. 진료실은 사회 전체를 위한 공공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우리 개개인을 위한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입니다. 그 특별한 공간을 안전하게 지켜야하는 이유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지난 31일 한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 폭력에 희생되었다. 자신의 임상 지식 및 개인적 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던 존경받는 의사였다. 교보문고 제공
지난 31일 한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손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자신의 임상 지식 및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교보문고 제공


에필로그


구랍 31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수많은 의료인이 낙담하고 있습니다. 환자 단체 및 시민 사회에서도 애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평생 정동 장애의 전문가로서 활약하며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특정 정신장애를 앓는 환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일각의 분위기도 우려스럽습니다. 고인 스스로 자신의 우울 증상을 고백하면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책을 펴냈었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에 누구보다도 먼저 앞장섰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진료 환경 그리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 없는 세상이라는 유족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미지 확대하기SNS서 확산되고 있는 故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
SNS서 확산되고 있는 故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

     
참고문헌
-Morrison, Jeanette L., John D. Lantos, and Wendy Levinson. "Aggression and violence directed toward physicians." Journal of general internal medicine 13.8 (1998): 556-561.
-Michael Knable, “HOMICIDES OF PHYSICIANS AND MENTAL HEALTH WORKERS”, the Sixth Biennial SIRS Conference
-Mishra, Sundeep. "Violence against doctors: the class wars." (2015): 289-292.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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