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우울증이 말하는 법

2018.12.29 10:00
이미지 확대하기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조금 나쁜 걸 최악인 일로 생각하는 등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정도가 심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조금 나쁜 걸 최악인 일로 생각하는 등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정도가 심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언어는 생각을 담기 마련이다. 최근 ‘우울증’ 환자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우울증의 언어는 어떤 것인지 살펴본 연구가 나왔다.

 

영국 리딩대 심리학자 모하메드 알모사이위 교수 연구진은 온라인에서 회원이 최소 6400명 이상인 총 63개의 우울증, 불안 장애 커뮤니티와 일반 사교 커뮤니티, 당뇨나 암 같은 신체 질환 환자들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특정 단어들이 등장하는 빈도를 조사했다. 

 

포럼마다 활발한 회원들이 작성한 글과 댓글에서 약 3만개의 단어를 추출했고 우울·불안 장애 집단과 비우울증 집단을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우선 우울·불안 장애 집단이 타집단에 비해 '슬프다'거나 '괴롭다' '우울하다' 같은 부정적 정서를 나타내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흥미로운 발견은 우울·불안 집단의 경우 '너' '그·그녀' '그들'에 비해 ‘나’ ‘내가’, ‘나의’ 같은 1인칭 대명사를 더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이들은 다른 커뮤니티 사람들에 비해 자신에 관련된 생각이나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 정서와 관련된 단어보다도 잦은 1인칭 대명사 사용이 더 우울·불안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부터 더 잘 구별해내기도 했다.

 

또 다른 특징으로 우울·불안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절대''완전히''확실히''결코''모든''전부' '모두' '항상' '당연히' '무조건' 같은 단정적 표현을 약 50% 정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표현은 다소, 어느 정도, 경향 같이 맥락에 따라 달라지며 해석의 여지를 주는 단어와 달리 정도나 확률에 있어 최상급을 의미한다. 보통 이것 아니면 저거 식의 흑백논리와 관련해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들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은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조금 나쁜 걸 최악인 일로 생각하는 등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정도가 심하고 좋지 않다면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가 흔히 나타난다고도 언급했다. 극단적인 표현을 쓰는 경향 역시 부정적 정서 관련 단어보다도 더 우울·불안 환자들을 다른 집단과 구분해내는 주요 특징인 것으로 나타났다. 극단적인 표현은 완벽하지 않다면 쓸모없다고 보는 시각인 완벽주의와도 관련을 보인다고 한다.

 

자살에 관한 글을 쓴 사람들에게서도 이러한 극단적인 표현이 타집단에 비해 80% 이상 많이 나타난다. 우울증에 걸렸다가 회복한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이들 표현의 빈도가 우울증 집단에 비해 낮았지만, 비우울증 집단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나 타인, 세상을 향한 너그러움의 시작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해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예컨데 갈등 상황에서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거나 애초에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란 뜻이라며 상대방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해석을 내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쉽게 ‘이별’이란 파국을 맞는 경향을 보인다. 상대를 좋거나 아님 나쁜 인간의 이분법 안에서 판단함으로써 작은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었던 일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하기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고통과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인간이 살아내는 삶 또한 헛점 투성이일 수 밖에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고통과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인간이 살아내는 삶 또한 헛점 투성이일 수 밖에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따라서 머리 속에서 상대를 끝없이 악마화하고 극단적인 결정으로 치닫기 전에 ‘혹시 그냥 실수한 건 아닐까?? 요즘 그 사람에게 좀 힘든 일이 많았나? 내가 오해한 것은 아닐까’하고 한번 자문해보는 게 불필요한 비극의 예방에 중요하다.

 

좋지 않으니까 나쁜 거라고, 완벽하지 않으니까 부족한 거라고 생각하기 전에 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고통과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인간이 살아내는 삶 또한 헛점 투성이일 수 밖에 없다고, 나 역시 그저 그런 인간일 뿐이라고, 그런 내가 우리가 살면서 실수하고 넘어지고 추태를 부리는 것 역시 얼마든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언젠가 가수 보아님의 인터뷰를 보다가 아직도 이것 밖에 안 되냐며 한창 자신을 다그쳤는데 어느 날 문득 나 또한 그저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해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내용이 있었다. "내가 인간인걸 까먹었었나봐요"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인간임을 잊지 말고 자신이나 타인을 향한 비인간적인 기대를 줄여보자.

 

참고 및 출처

Al-Mosaiwi, M., & Johnstone, T. (2018). In an absolute state: Elevated use of absolutist words is a marker specific to anxiety, depression, and suicidal ideation.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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