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 600명 “의혹 제기만으로 직무정지는 부당”

2018.12.11 17:58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 X선 연구센터와 신성철 KAIST 총장.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 X선 연구센터와 신성철 KAIST 총장.

정부가 국가 연구비 횡령·업무상 배임 등 의혹이 제기된 신성철 KAIST 총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KAIST 이사회에 직무정지를 요청한 가운데, KAIST 교수를 비롯한 국내 과학기술인 600여 명이 신 총장의 직무정지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부당 송금 의혹을 받은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KAIST 이사회 이사장에게 신 총장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연구소의 공식 입장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성명에 참여한 과학기술인들은 11일 발표한 공동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제공동연구에 대한 무지, 그로 인한 오판과 경솔한 업무처리에 개탄한다”며 “불분명한 의혹 제기만으로 직무정지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히면서 KAIST 이사회에 과기정통부의 직무정지 요청을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이달 7일부터 현재까지 KAIST 교수 205명을 포함한 대학, 연구기관, 산업체 등의 과학기술인 665명(11일 오후 3시 기준)이 공동 성명서에 서명했다.

 

신 총장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시절 LBNL이 무상 제공키로 한 연구장비(XM-1)에 대한 사용료를 제자 임 모 박사의 인건비 등을 위해 부당 송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KAIST 이사회는 이달 14일 신 총장 직무정지 요청 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서명에 참여한 과학기술인들은 “신 총장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은 거대연구시설을 활용한 국제공동연구의 통상적 절차에 근거해 이해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LBNL은 노벨상 수상자를 13명이나 배출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로, 이런 연구소의 시설은 비용을 낸다고 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DGIST는 고가의 장비를 보유한 LBNL와 공동연구 협약을 맺고 시설운영비의 13%에 해당하는 금액만으로 연구자들이 시설 총 가동시간의 50%를 사용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어 “소속 연구원의 인건비 역시 자체 규정에 따라 지급되는 것이지 연구시설을 사용하는 공동연구자가 관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서명에 참여한 과학기술인들은 과기정통부가 일각에서 제기한 표적감사를 통한 사퇴압박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도 했다. 이들은 “과기정통부는 (신 총장의 의혹을 제기한) 언론보도 사흘 뒤 곧바로 검찰에 신 총장과 디지스트 연구자들을 고발하고 추가 감사인력을 KAIST에 파견했으며, 이틀 후 이사회에 직무정지를 요청했다”며 “과기정통부가 결론을 정해놓고 제대로 된 조사와 본인의 소명 없이 서둘러 밀어붙이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과학기술인의 비판은 현 정부에서 자행되는 찍어내기 식의 부당하고 무리한 표적 감사에 대한 불만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과기정통부는 신 총장에 대한 최종 감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횡령, 편법 채용 같은 말을 쓰면서 그 혐의를 언론에 흘렸다”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정부는 더 정당하고 적법한 감사를 해야 할 것”이라며 “과학기술계에 대한 정치 권력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인사제도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BNL 측은 앞서 지난 8일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XM-1 장비는 계약 당시부터 DGIST가 운영 부담금을 지급하고 사용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국의 다른 연구기관이 장비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DGIST와 LBNL 간 이뤄진 계약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박노재 과기정통부 감사담당관은 같은 날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DGIST는 LBNL로부터 ‘현물 투자’를 받기로 했다고 명시했다”며 “현물투자라는 건 무상으로 장비를 제공한다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LBNL은 운영 부담금을 받고 현물(연구장비)을 투자한다고 했지만 과기정통부가 이를 전적으로 ‘무상 사용’하기로 한 것으로 해석한 셈이다.  박 감사담당관은 10일 “LBNL 측으로부터 계약서를 구했다면 우리에게도 보내 달라”고 본보에 요청하기도 했다. 

 

한편 LBNL은 이와 관련해 11일 과기정통부 장관과 KAIST 이사회 측에게 신 총장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연구소의 공식 입장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DGIST와 LBNL 간 계약은 연방법에 따라 적절히 이뤄졌으며 한국에서 의혹을 제기한 것처럼 DGIST가 송금한 자금이 임 박사에게 부당하게 흘러가지 않았고, 내부 회계와 임금 기준에 맞춰 지급됐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임 박사가 국내에 머물 때 다른 목적에 사용될 연구비에서 부당하게 임금을 받았고 그 배경에 신 총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일부 DGIST 교수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는 과기정통부와 신 총장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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