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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결백한 자의 죄책감

2018년 12월 02일 10:00

1999년 미군 해병이었던 스무 살의 조셉 딕은 버지니아주 노퍽에서 저지른 강간과 살인 혐의로 기소됩니다. 조셉 딕은 자신의 강간과 살인에 대해서 피해자의 가족 그리고 국민에게 사죄했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수치스럽고 부끄럽다고 하였죠. 지당한 일입니다.

 

자신의 죄를 자백한 딕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딕 외에도 데렉 타이스, 다니엘 윌리엄스, 에릭 윌슨이 공범으로 중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들을 이른바 ‘노퍽의 네 남자(Norfolk Four)’라고 합니다.

 

노퍽의 네 남자

 

1997년 8월 어느 날, 미셸 보스코라는 죽은 채 발견됩니다. 자신의 집에서 강간을 당하고 칼에 찔린 후 목이 졸려 살해된 것이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이미 참혹하게 죽어있는 아내를 발견합니다. 수사를 담당한 로버트 글렌 포드 형사는 탐문 조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니엘 윌리엄스가 평소 미셸에게 집착했다는 주변 이웃의 증언을 듣습니다. 형사는 곧 윌리엄스를 체포합니다.

 

그런데 딕은 윌리엄스의 룸메이트였습니다. 형사는 딕도 체포합니다. 윌리엄스는 자신의 죄를 자백합니다. 그러면서도 딕은 잘못이 없다고 하였죠. 하지만 놀랍게도 딕은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경찰은 데렉 타이스와 에릭 윌슨도 공범으로 추가 기소합니다.

 

결국 1999년 윌리엄스는 종신형을 피하기 위해서 모든 죄를 자백합니다. 8년 6개월 형을 선고받습니다. 윌슨은 종신형을 두 번(!) 선고받습니다. 이로서 네 명의 죄인이 자신이 저지른 죄에 응당한 벌을 받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경찰은 신속하게 범인을 잡았고, 범인은 자신의 죄를 가슴깊이 사죄하였습니다. 법원은 인면수심의 죄인에게 엄벌을 내렸습니다. 있어서는 안될 범죄였지만, 일단 사건은 깔끔하고 정의롭게 해결된 것 같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무죄였다는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미 해병이었던 스무 살의 조셉 딕 주니어는 강간과 살인의 용의자로 체포된다. 그는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사실 그는 무죄였다. 사진출처 : https://www.law.umich.edu/special/exoneration/Pages/casedetail.aspx?caseid=5055
미 해병이었던 스무 살의 조셉 딕 주니어는 강간과 살인의 용의자로 체포된다. 그는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사실 그는 무죄였다. 사진출처 : https://www.law.umich.edu/special/exoneration/Pages/casedetail.aspx?caseid=5055

 

새로운 증거와 재평결

 

사건 현장의 증거와 정황은 여러 가지로 석연치 않았습니다. 딕은 저녁 9시부터 11시 사이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했는데, 그는 같은 시간에 군함에 승선하고 있었습니다. 분신술을 쓴 것일까요? 경찰은 딕이 몰래 근무하던 배에서 빠져나와 다른 세 명의 공범과 함께 미셸의 집에 들어가 강간과 살인을 저지르고, 다시 살금살금 배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도무지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외에도 이상한 법의학적 증거가 많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DNA 였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나온 DNA는 ‘노퍽의 네 남자’ 중 어느 누구의 DNA와도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이 강간을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한편 1998년 1월 오마르 발라드라는 남자가 14세 소녀를 강간한 혐의로 붙잡힙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수감되어 있던 중에, 어떤 여인에게 사실 자신이 미셸을 죽였다는 편지를 보냈죠. 편지의 내용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는 발라드의 DAN와 일치했습니다.

 

처음부터 발라드는 혼자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노퍽의 네 남자를 공범으로 엮고 싶어했습니다. 발라드에게 강압적으로 공범을 자백하라고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발라드가 끝까지 아니라고 했죠. 그러자 경찰은, 발라드가 ‘배신자’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단독범이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서를 썼고 배심원은 경찰의 보고를 믿었습니다.

 

결백한 사람이 왜 죄를 고백하는가?

 

미국 버지니아 경찰의 부실한 수사 능력과 배심원 재판의 편향성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접어 두죠.

 

아마 여러분은 왜 20살의 전도양양한 조셉 딕이 순순히 자신의 죄를 고백했는지 의아할 것입니다. 실제로 짓지도 않은 죄를 말이죠. 하지도 않은 강간과 살인을 자백하고, 진심으로 사죄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왜 결백한 사람이 왜 죄를 고백하는 것일까요?

 

이미지 확대하기2008년 FBI 요원 제이 코크란이 노퍽의 네 남자 사건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이미 은퇴한 상태였지만, 이 사건의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2008년 버지니아 주지사에게 사면을 요청했다. 이후 10년이 지난 2017년이 되어서야 주지사는 노퍽의 네 남자에게 무조건 사면을 명령했다. 사진출처 : https://www.navytimes.com/news/your-navy/2018/04/03/virginia-governor-oks-paying-norfolk-four-35m/
2008년 FBI 요원 제이 코크란이 노퍽의 네 남자 사건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이미 은퇴한 상태였지만, 이 사건의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2008년 버지니아 주지사에게 사면을 요청했다. 이후 10년이 지난 2017년이 되어서야 주지사는 노퍽의 네 남자에게 무조건 사면을 명령했다. 사진출처 : https://www.navytimes.com/news/your-navy/2018/04/03/virginia-governor-oks-paying-norfolk-four-35m/

귀인 이론(attributional theory)에 의하면, 수치심은 이상적인 자신의 표상과 불일치하는 일을 겪을 때 그리고 그러한 일이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할 때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자기 정도면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죠. 그런데 평소 예상과 달리 맞선에서 딱지를 맞았다고 합시다. 그리고 남자는 딱지맞은 이유가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맞선을 본 여자가 딱지를 놓은 이유는 완전히 다른 데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귀인 이론은 인간이 느끼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잘 설명해줍니다. 수치심은 안정적이고 전반적인 자아상의 손상, 죄책감은 불안정하고 세부적인 자아상의 손상과 관련된다는 보다 구체적인 주장도 있지만, 아무튼 큰 맥락에서는 이 두 가지 감정은 서로 엇비슷합니다. 뭔가 자신의 결함이 있으니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인 이론은 조셉 딕의 죄책감을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딕은 전혀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죠. 귀인 이론이 가진 한계입니다.

 

정보 위협 이론

 

귀인 이론의 한계에 답답해 하던 학자들은 다른 이론을 들고 나옵니다. 이른바 정보 위협 이론(information threat theory)에 의하면, 수치심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일어납니다. 즉 어떤 일이 실제로 있었던 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세상 사람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믿으면 수치심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딕 주변에 있는 경찰, 배심원, 판사 그리고 대중들은 모두 딕이 천하의 악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위협적 정보에 노출될 경우, 죄가 없는 사람도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는 하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부족한 것이 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낄까요(귀인 이론)?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면 부끄러움을 느낄까요(정보 위협 이론)?

 

2017년 스토니 브룩 대학의 테레사 로버트슨 등은 이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시행했습니다.

 

죄가 없지만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

 

예를 들어 우리가 음식점 웨이터라고 가정해보죠. 웨이터는 모두 다섯 명이 있습니다. 팁을 받으면 모두 상자에 넣고, 일이 끝날 때 똑같이 나누어 가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잔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상자에 오만 원을 넣고 만 원짜리 다섯 장을 꺼냈죠. 그런데 돈을 꺼내는 순간 동료 웨이터가 옆을 지나갔습니다. 동료는 장면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고 옆을 지나갔습니다.

 

사실 당신은 전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돈을 거스른 것뿐입니다. 하지만 목격한 동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지도 모르죠. 당신의 기분은 어떻게 변할까요?

 

연구에 따르면 다른 동료가 자신의 행동을 보았다고 느낄수록 죄책감이 보다 더 심해졌습니다. 비록 죄는 없지만, 그래도 죄책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료가 보지 못한 경우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당연하죠). 그런데 동료가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고 하면 죄책감이 상당히 심해졌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라고 묻지도 않는 동료에게, ‘내가 지금 돈을 거스르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 혹시 내가 돈을 훔친다는 오해를 하지는 말아주게’라고 이야기하기도 어렵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 같거든요. 자신의 말을 증명할 방법도 없습니다. 변명이 아니라 진실이지만, 점점 변명처럼 되어 갑니다.

 

연구자는 이어서 다른 연구를 했습니다. 연구 참여자를 모아서 일종의 게임을 했는데, 무작위로 피험자를 배제하거나 혹은 끼워준 것입니다. 예를 들면 5만원을 거스르던 장면이 ‘아마도 발각’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날 우연히 다른 동료 웨이터 네 명이 당신만 빼놓고 맥주를 마시러 갔다고 해보죠. 어쩌다 넷이 같이 퇴근하다가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했는데, 당신이 그 자리에 우연히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동료로부터 배제를 당한 피험자의 수치심은 배가되었습니다. 자신이 돈을 거스르던 상황이 동료에게 발각되었다고 느끼는 지도 모릅니다. 아무 잘못도 없지만 죄책감과 수치심은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타인의 부정적 평가, 그리고 사회적 배제가 결합하면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고 하지도 않은 일로 부끄러워합니다. 심지어 종신형도 달게 받습니다.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와 집단에서의 고립은, 깊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유발합니다. 죄가 없더라도 말이죠. 조셉 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없는 죄’를 고백했습니다. 결백을 끝까지 주장한다면 ‘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조차 모르는 불한당’이 됩니다. 하지만 없는 죄라도 진심으로 고백하면 ‘죄는 저질렀지만, 그래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갓 스무 살이 된 철없는 조셉 딕이 빠진 함정이었죠.

 

에필로그

 

여론재판이 한번 일어나면 진실은 두번째 문제가 됩니다. 여론 재판의 ‘용의자가’가 결백을 주장하면 대중은 더욱 괘씸하게 여깁니다. 모두들 ‘뻔뻔하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를 외칩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그냥 자신이 잘못했다고 받아들이는 편을 택하게 됩니다. 그래야 어떻게든 견딜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대중이 당신을 오해하고 집단에서 배제한다고 해서, 짓지도 않은 죄를 스스로 인정하고 수치스러워 해서는 곤란합니다.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해야 합니다.

 

※참고문헌: 

Leo and Tom Wells. 2018. “the Wrong Guys: Murder, False Confessions, and the Norfolk Four”
Robertson, Theresa E., Daniel Sznycer, Andrew W. Delton, John Tooby, and Leda Cosmides. 2018. “The True Trigger of Shame: Social Devaluation Is Sufficient, Wrongdoing Is Unnecessary.”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39 (5): 566–573.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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