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스태터 나비를 아시나요?

2013.09.30 18:00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직접 그린 호프스태터 나비. 자기장 아래 결정에 있는 전자 에너지의 띠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수평축은 전자 에너지, 수직축은 자기장의 세기다. 허용 가능한 전자 에너지의 띠가 프랙탈 패턴을 보임을 알 수 있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제공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직접 그린 호프스태터 나비. 자기장 아래 결정에 있는 전자 에너지의 띠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수평축은 전자 에너지, 수직축은 자기장의 세기다. 허용 가능한 전자 에너지의 띠가 프랙탈 패턴을 보임을 알 수 있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제공

 “나비는 날지 않는다. 그저 팔락댈 뿐이다. 너무 아름답고 또 너무 큰 양 날개는 나비로 하여금 날지 못하게 방해나 될 뿐이다.” - 가스통 바슐라르, ‘공기와 꿈’


올 여름은 비도 많이 오고 날도 유난히 더워 곤충 번식이 왕성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예전에는 어쩌다 한 번 볼 수 있었던 제비나비가 서너 마리씩 몰려다니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다.

 

커다란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날아가는 녀석들을 보면 ‘나비는 참 아름다운 곤충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떻게 저런 형태로 진화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벌이나 잠자리에게 투명 필름인 날개가 몸통을 공중으로 띄워 이동하게 하는 수단이라면, 나비 날개는 비행의 수단이자 목적인 것 같다.

 

몸통은 두 날개가 접히는 축에 놓인 경첩 정도라고 할까. 문짝이 여닫히듯 날개가 펄럭이며 다음 경로가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나비. 그래서 우리는 나비가 나는 모습을 보며 ‘춤춘다’는 표현을 쓴다.


이런 나비 비행의 불안정함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2008년 타계한 카오스 이론의 개척자 에드워드 로렌츠 교수는 1972년 한 학회에서 ‘예측 가능성: 브라질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몰고 올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발표를 했다. 이 말은 ‘북경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뉴욕에 폭풍우를 일으킨다’로 바뀌어 ‘나비효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양자물리학 분야에서도 유명한 나비 한 마리가 있다. 바로 ‘호프스태터 나비(Hofstadter's butterfly)’다.


●안드레 가임과 김필립, 또 만나다

 

최근 물리학자들은 그래핀(회색)과 육각형질화붕소(빨강, 파랑)를 이용해 초격자(녹색 육각형)를 만들어 전자 에너지의 프랙탈 패턴을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이론이 예측한 나비 모양은 아니고 비유하지면 고치 수준이라고 한다. - 사이언스 제공
최근 물리학자들은 그래핀(회색)과 육각형질화붕소(빨강, 파랑)를 이용해 초격자(녹색 육각형)를 만들어 전자 에너지의 프랙탈 패턴을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이론이 예측한 나비 모양은 아니고 비유하지면 고치 수준이라고 한다. - 사이언스 제공

1976년 미국 오리건대 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이었던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학술지 ‘물리리뷰B’에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즉 원자가 주기적으로 배치된 결정의 전자는 강력한 자기장이 걸렸을 때 특정한 에너지 값만 가질 수 있고, 이를 도식화하면 나비가 연상되는 프랙탈 패턴이 나온다는 것.

 

1975년 프랑스 수학자 베누아 만델브로가 세부 구조가 전체 구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구조에 ‘프랙탈(fractal)’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아 호프스태터는 ‘재귀구조(recursive structure)’라는 용어를 썼다. 호프스태터는 만델브로와 독립적으로 프랙탈을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논문은 여러 물리학자들의 흥미를 끌었고(지금까지 1800회 넘게 인용됐다) 전자의 에너지 패턴은 ‘호프스태터 나비’라고 불리게 됐지만, 수십 년 동안 호프스태터의 이론적 예측을 실험으로 증명하지는 못했다.

 

보통 결정을 이루는 원자 사이의 거리는 1나노미터가 안 되는데, 이런 조건에서 호프스태터 나비를 보려면 1만 테슬라가 넘는 엄청난 자기장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실험으로 호프스태터 나비를 입증한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팀은 판화가 에셔의 작품 ‘변태(Metamorphosis)’를 패러디해 그래핀과 호프스태터 나비를 형상화했다. - 영국 맨체스터대 제공
최근 실험으로 호프스태터 나비를 입증한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팀은 판화가 에셔의 작품 ‘변태(Metamorphosis)’를 패러디해 그래핀과 호프스태터 나비를 형상화했다. - 영국 맨체스터대 제공

그런데 최근 물리학자들이 육각형 모양의 2차원 격자를 이루는 그래핀을 이용해 호프스태터 나비를 ‘봤다’는 연구결과를 잇달아 내놓아 화제다.

 

올해 5월 30일자 학술지 ‘네이처’에는 논문 두 편이 나란히 실렸는데, 하나는 2010년 그래핀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가 참여한 공동연구팀의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아깝게 노벨상을 놓친 미국 컬럼비아대 김필립 교수가 참여한 공동연구팀의 논문이다.

 

흥미롭게도 지난 2005년 김 교수팀이 ‘네이처’에 그래핀의 양자역학적 현상을 규명한 논문이 실렸을 때도 가임 교수팀의 비슷한 결과를 얻은 논문이 나란히 실렸다. 한편 학술지 ‘사이언스’ 6월 21일자도 또 다른 연구그룹의 호프스태터 나비 논문이 실렸다.


연구자들은 그래핀과 육각형질화붕소(hBN)를 나란히 놓아 초격자(superlattice)를 만드는 트릭을 써서 호프스태터 나비를 잡았다.

 

그래핀은 육각형 꼭지점마다 탄소가 놓여 있는 구조인 반면 hBN은 탄소 대신 붕소와 질소가 교대로 배치된 구조다. 언뜻 보면 그래핀처럼 보이지만 원자 사이의 거리도 약간 짧고 각 원자의 전하도 중성이 아니다.

 

그래핀 바로 아래 hBN을 가져가 두 육각형 구조가 딱 겹치게 배치하려고 해도 안 되는데 육각형 크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이들 육각형이 여러 개 겹쳐진 상태의 주기적인 구조가 드러나는데 이를 초격자라고 부른다. 7과 8의 최소공배수가 56인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래핀과 hBN 초격자의 길이는 10나노미터가 넘기 때문에 수십 테슬라 정도의 자기장으로도 호프스태터 나비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 실제 실험결과 나비는 볼 수 없었지만 전자의 에너지가 프랙탈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이에 대해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의 저자인 미국 MIT의 파블로 자릴로-헤레로 교수는 “우리는 고치를 발견했다. 이 안에 나비가 들어있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한편 현재 인디애나대에서 인지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호프스태터 교수는 이에 대해 다소 시니컬하게 반응했다. 자신이 박사학위 주제로 이 연구를 했을 때 지도교수가 ‘숫자 놀음’이라며 “그런 종류의 연구로는 박사학위를 받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호프스태터는 1975년 간신히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이듬해 단독 저자로 논문을 기고했다.


●과학계의 움베르토 에코

 

 과학계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할 수 있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2002년 57세 때다. - 위키피디아 제공
과학계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할 수 있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2002년 57세 때다. - 위키피디아 제공

사실 호프스태터 교수는 호프스태터 나비보다 1979년 출간한 불가사의한 책 ‘괴델, 에셔, 바흐’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불완전성의 정리로 유명한 논리학자 괴델과 펜로즈 계단을 묘사한 석판화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로 유명한 판화가 에셔, 그리고 음악의 아버지 바흐를 기묘하게 엮어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이 책은 출간 이듬해 퓰리처상(논픽션 부문)과 미국도서대상을 수상하면서 당대 지성인들을 열광시켰다. 20년이 지난 1999년 한글판이 나왔지만 필자에게는 너무 어려워 얼마 읽지 못하고 포기한 기억이 난다.


호프스태터의 삶의 경로는 나비의 비행만큼이나 어지럽다.

 

그는 1945년 뉴욕에서 태어났는데, 196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호프스태터가 아버지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제곱근과 복소수(i)의 개념을 배웠다는 호프스태터는 훗날 아버지가 교수로 있던 스탠퍼드대에서 수학을 공부한 뒤 오리건대에서 천재로서는 늦은 나이인 서른 살에, 자기장이 있을 때 결정의 전자 에너지에 대한 연구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겉으로는 평범한 경력이지만 사실 호프스태터는 이 사이에 온갖 분야를 섭렵하면서 현란한 지식을 쌓았다. 그는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8개 국어에 능통하다.

 

‘괴델, 에셔, 바흐’ 한국어판 독자들에게 쓴 글을 보면, 한국어판 출간을 매우 기뻐한다며 “나도 얼마 전에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번역을 마쳤습니다. 러시아어로 쓰인 378개의 소네트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은 환희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그의 음악 실력은 연주자급이고 수학, 컴퓨터과학, 인지과학 등 닥치는 대로 마스터했다.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그가 컴퓨터학과 교수로 임용된 배경이다.

 

그는 15살에 괴델을 알게 된 이후 그의 불완전성 원리에 대한 짧은 책을 쓰려다가 에셔와 바흐의 작업에서도 공통점(재귀순환으로 대표되는 무한성)을 발견하고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박사학위 내내 저술작업을 병행했고 1977년 인디애나대 컴퓨터학과 교수로 자리잡은 뒤 마무리해 1979년 펴낸 것이다.


책의 5장 ‘재귀적인 구조와 재귀순환적인 과정’에 호프스태터 나비를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역자가 독문학자라 crystal을 결정이 아니라 수정으로 오역하기는 했지만(사실 이 책을 번역한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다), 읽어보면 저자가 자신의 결과가 실험으로 입증될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솔직히 말해서 G플롯(호프스태터 나비의 원래 이름이다)이 어떤 실험 속에서 나타날 경우 나만큼 놀랄 사람이 또 있을까? (중략) G플롯은 순전히 이론물리학을 위한 공헌이지, 그것을 관찰하고자 하는 실험물리학자들을 위한 암시는 아니다”라고 쓰고 있다. 한 세대 뒤 후배 과학자들이 그래핀과 hBN을 써서 초격자를 만들어 실험을 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괴델, 에셔, 바흐’ 한국어판 독자들에게 쓴 글에서 호프스태터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게을러지고 산만해지는 필자로서는 가슴이 뜨끔한 이야기다. ‘괴델, 에셔, 바흐’에 한 번 더 도전해봐야 할까.


“인생에 남아도는 시간이란 없습니다. 인생은 별도의 공간과 사치를 허용할 정도로 길지 않습니다. 자! 이제, 구하십시오, 그러면 찾을지니(Quaerendo, invenie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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