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는 장난감이 어떻게 역사를?

2013.09.22 22:53

 

정밀기계인
정밀기계인 '시계'는 유럽이 인류문명의 왕좌를 차지하게 만들어준 촉매제였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 교보문고 제공

 “이탈리아는 전쟁과 살육이 끊이지 않았지만 르네상스를 꽃피웠네. 하지만 500년간 평화롭던 스위스는 뭘 만들었나? 고작 뻐꾸기 시계 아닌가.”


  캐롤 리드 감독의 1949년 영화 ‘제3의 사나이’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작가로 잘 알려진 장용민씨의 최신작 ‘궁극의 아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는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점과 르네상스가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대사라지만, '듣는' 스위스 입장에서는 ‘대략 난감하고’ 억울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스위스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관광객들에게 뻐꾸기 시계나 팔면서 먹고 산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실제 스위스는 1인당 부가가치 생산량이 세계 1위로, 우리가 그리도 좋아하고 본받고자 하는 미국의 2.2배 수준이다. 특히 스위스는 제조업 강국으로 정밀기계의 대표적 생산국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소 치고, 젖이나 짜는데도 잘 사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대사 하나로 폄하된 것은 스위스 뿐만 아니다. 제일 억울해 할 것은 바로 ‘시계’다.  시계기술이  ‘고작’이라는 단어로 폄하될 수 있는 것일까.


  이탈리아의 저명한 역사학자 카를로 치폴라는 시계는 유럽 근대 문명을 만들어 낸 첨단 기술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쓴 ‘시계와 문명’에는 ‘1300~1700년, 유럽의 시계는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라는 긴 부제를 달려있다. 후주와 찾아보기를 빼고 160여쪽에 불과한 이 책은 인문역사 서적치고는 매우 날씬한 편이고 읽기에 부담스러운 내용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 포함된 내용과 우리에게 던져주는 생각꺼리는 어려운 단어들이 난무하고 500쪽이 넘는 책 이상으로 많다.


● 시각, 시간 그리고 시계


  시계란 무엇인가. 시계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질문을 던진 사람이 바보이거나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면 과연 정확히 그 개념들을 알고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시계’는 ‘시간을 재거나 시각을 나타내는 기계나 장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렇다면 시간과 시각은 뭐가 다를까.


  시간과 시각은 명확히 구분되는 낱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낱말들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영어에서는 시각, 시간 모두 time으로 표시하는 듯 하다). 대표적인 예가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니?” “내일 해 뜨는 시간은 여섯 시 오 분이래.” “약속 시간에 꼭 맞춰와라.” 등이다. 이 예에서 쓰이는 시간은 모두 시각으로 바꿔야 제대로 된 문장이다.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인식은 매우 주관적이다. 초현실주의 미술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인식은 매우 주관적이다. 초현실주의 미술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기억의 지속'의 그림처럼 말이다. 같은 시간을 어떤 이는 매우 짧게, 다른 이는 매우 길게 느끼는 것처럼 시간은 자아인식의 연장선일 수 있다. - 구글 제공

  시각(時刻)은 시간상 특정한 순간, 지점, 위치를 가르키는 시간의 어느 한 시점을 말하는 것이며, 시간(時間)은 어떤 시각과 시각 사이를 이야기하는 ‘양’의 개념이다. 시간의 흐름을 1차원의 직선으로 생각한다면 직선상 한 점이 시각이고, 시각과 시각 사이의 선분이 시간이란 말이다.


  사실 시간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으로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오랜 관심사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간에 대해 다양한 시각(view)이 존재하기 때문에 명확히 ‘시간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시간이 사건의 측정을 위한 인위적 단위인지, 사건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학적 단위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을 자극한 시간의 개념은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은 상상하지 못했다. 인위적일 수는 있겠지만, 기계적이고 객관적이면서 측정 가능한 단위라는 개념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시간을 대략적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후 객관적인 시간의 측정과 정확성 확보는 ‘국력’혹은 ‘돈’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하는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시각을 알려주고, 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시계’가 있었다. 시계는 산업혁명을 촉발시킨 ‘알파’요, 산업혁명을 통한 기계문명의 발달을 추동한 ‘오메가’이기도 하다.


●시계, 도시간 경쟁을 부추기다

 

중세 직후 발명된 대형 시계는 당시 막 발달하기 시작한 도시 중심부 핵심 건물 한가운데 자리 잡아 도시들간 경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진은 최근
중세 직후 발명된 대형 시계는 당시 막 발달하기 시작한 도시 중심부 핵심 건물 한가운데 자리 잡아 도시들간 경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진은 최근 '엘리자베스 타워'로 이름을 바꾼 영국의 명물 '빅벤'. - 동아일보DB 제공

  세계 최초의 기계식 시계는 13세기 유럽에서 등장했다. 해시계나 물시계 등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자연력이 아닌 기계력으로 시간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사실 초기 기계식 시계는 부정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해시계나 물시계를 기준으로 시간을 보정할 정도였단다. 그러나 이렇게 기계식 시계가 탄생한 것은 기계적 세계관이 싹트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중세 암흑시대가 서서히 끝나가면서 유럽은 많은 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생긴 독립적이면서도 실용주의적 문화가 시계 탄생을 북돋우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흑사병이 닥쳐 노동력의 급감을 가져왔고, 결국 인간을 대체할 것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기계’로, 흑사병은 어찌보면 유럽 문명을 기계 지향적으로 변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무슨 제품이든 처음 나오면 경이적으로 '비싸다'. 이 때문에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이 바로 공공 분야에서의 사용이다. 기계식 시계 역시 마찬가지 였다. 초창기 기계식 시계의 대표적인 것들은 성당이나 교회, 시 청사 등 도시의 중심에 설치돼 자동으로 종을 울리는 대형 시계였다.


  1309년 이탈리아 밀라노 산테우스토르조 교회를 시작으로 1324년 보베의 대성당, 1335년 밀라노 산고타르도 교회, 1340년 클뤼니 수도원, 1344년 파도바 광장, 1353년 제노바, 1356년 볼로냐, 1359년 샤르트르 대성당, 1362년 페라라, 1370년 파리 궁정에 공공 시계가 설치될 정도로,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는 곳에 대형시계가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실제 15세기 프랑스에서는 도시를 빛낼 크고 훌륭한 시계를 가지고 다른 도시와 경쟁을 벌였다는 문헌도 찾을 수 있다.


●기계식 사고, 유럽을 세상의 중심으로 올리다


  저자는 기계로 인력을 대체하려는 사고방식은 유럽만의 특징이라고 단정한다.

 

  기계 시계가 발명되기 전에 있었던 유럽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방앗간이 대표적이다. 물레방아는 기원전 1세기 소아시아에서 발명됐고, 풍차는 7세기 페르시아에서 시작됐지만, 무명의 수공업자들이 다양한 기계장치를 고안해 물과 바람의 힘을 망치와 압축기, 드릴, 멧돌 등을 움직이도록 해 방앗간 ‘붐’을 이룬 것은 중세 유럽이었다는 것.


  전작인 ‘대포, 범선, 제국’에서도 대포라는 일종의 인력을 대체하는 '힘'을 실은 범선이 유럽이 군사적 우위를 갖게 했다고 주장한 저자는 사실 전혀 달라보이는 시계와 대포가 밀접한 관계 갖고 있음을 역사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유럽에서 최초로 기계 시계를 만든 사람들은 다름 아닌 대포를 만든 사람들이라는 것. 최초의 기계 시계는 대형 공공 시계였음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후 대형 공공시계는 15세기 태엽이 발명되면서 크기가 작아져,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뻐꾸기 시계’ 즉 회중시계로 발전했고, 16세기에는 유럽 신흥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자리 잡는다. 시계공이 대포를 만들던 사람들에서 보석 세공인에 가깝게 변화됐고, 시계 제조업 중심지가 생겨나게 됐다. 사실 처음에 시계 제조업의 중심지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와 뉘른베르크였는데, 30년 전쟁으로 인해 시계산업의 중심지는 영국 런던과 스위스 제네바로 옮겨가게 됐다.


  이후 17세기가 되면서 시계 제작 역시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전문직공에 의한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게 된다. 이런 대량생산 시스템은 산업혁명의 단초가 됐다.

 

섬세하고 매혹적인 장난감으로만 여겨지던 시계가 정밀한 기계로 여겨지는 순간
섬세하고 매혹적인 장난감으로만 여겨지던 시계가 정밀한 기계로 여겨지는 순간 '기술'은 인류문명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동시에 인류문명 그 자체가 됐다.  - 구글 제공

  대량생산 된 시계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케플러는 “우주는 신성한 존재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시계와 비슷하다”고 했고, 로버트 보일은 “우주는 거대한 시계태엽 장치”라고 강조하는 등 시계는 기계적 세계관을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인 수단이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신마저도 뛰어난 시계공이었다!


  시계는 이처럼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을 측정하는 정밀 기구로서 과학혁명을 이끌기도 했다. 17세기 중반 시계의 일일 오차가 10분에서 10초로 획기적으로 줄게 된 것은 과학자와 수공업자의 협력 덕분이었다. 당시에는 과학자와 숙련된 수공업자가 갑을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에서 교류한 것은 일반적이었다. 실제 1792년 파리에서 설립된 기술 학회에는 과학자와 기계공들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있었단다. 과학사가인 조지프 니덤은 유럽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신사’와 ‘기능공’이 교류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시계가 장난감? 큰 코 다친 동양


  유럽이 동인도 제도를 발견하고 서인도 제도를 발견하는 등 신대륙 개척에 박차를 가하며 대양을 지배하는 동안에도 놀랍지만 자랑할 만한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이 신대륙에서 금과 은을 풍부하게 구할 수 있어서 은을 주고 아시아에서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소송이 1090년에 만든 물시계. 새 황제가 즉위하면서 폐기된 이후 완전히 잊혀져 500여년이 지난 후 예수회 선교사들이 기계식 시계인 자명종을 가져왔을 때 명 황제와 관리들은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서양의 자명종은 소송이 만든 물시계보다 오차도 훨씬 컸고 정교성도 떨어졌다. 1956년 존 크리스티안센의 그림 - 시계와 문명 제공
중국 송나라의 소송이 1090년에 만든 물시계. 새 황제가 즉위하면서 폐기된 이후 완전히 잊혀져 500여년이 지난 후 예수회 선교사들이 기계식 시계인 자명종을 가져왔을 때 명 황제와 관리들은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서양의 자명종은 소송이 만든 물시계보다 오차도 훨씬 컸고 정교성도 떨어졌다. 1956년 존 크리스티안센의 그림 - 시계와 문명 제공

  그렇지만 유럽의 ‘스스로 울리는 종(자명종)’은 당시 문화 선진국인 중국에 유일하게 수출하던 제품이었다. 황제부터 서민까지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자명종을 얻기 위해 열을 올렸단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에게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기기가 아니라 때가 되면 알아서 울리는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분과 시로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아닌 날과 달로 시간을 측정하는 전형적인 농촌 사회인 중국에서 시계의 그런 대접은 당연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저자는 중국의 수공업자들 기술력은 유럽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사농공상’의 관료주의적 문화와 시스템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수공업자들의 잠재력이 꽃필 수 없었고, 결국 응용과학과 기술 진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은 매우 큰 나라였기 때문에 중화사상으로 인한 고립주의적 정치 외교 시스템도 기술 발달에 걸림돌이 됐다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다.


  “중국인은 유럽인들이 인쇄술을 발명하기 수 세기 전에 인쇄술을 발명했지만 그것을 십분 활용한 쪽은 유럽인이었다. 이것은 기술 혁신과 사회문화적 환경의 관계에 대한 좋은 사례이다. 사실 중요한 기술 혁신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만 그러한 혁신의 최종적인 효과는 결국 사회문화적 환경의 성격과 특성에 달려 있다.”


  시계를 통해 본 유럽의 경쟁력의 본질은 바로 ‘사람’이다. 시계 제작같은 첨단 산업에서도 핵심은 다수의 우수한 인적 자본이었다. 당시 시계공은 상대적으로 높은 학력을 갖춘 우수한 인력이었다. 독일 30년 전쟁과 프랑스 낭트 칙령 폐지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영국과 스위스로 대거 이주한 이들 때문에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시계산업은 몰락했고, 영국, 스위스, 스웨덴은 새로운 산업 중심지가 됐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라는 영국이 기술 혁신을 이끌고 선도적 산업 중심지가 된 것은 해외 기술자의 이주를 대폭 허용하고, 기존의 선진국 모델을 철저히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실용적 기술 전통과 결합시킴으로써 시계산업의 중심지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물론 많은 이탈리아 시계공들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도 이주해갔지만 오스만투르크가 이들 덕분에 변화됐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들은 바 없다.

 

  해외 우수 인력을 유입해 이들을 통해 국가경쟁력 제고나 경제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우수 인력만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말고 새로운 사상과 기술에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만이 최고’ ‘내가 제일 잘났다, 내 생각이 곧 조직의 생각’이라는 자기 중심주의는 결국 시대에 뒤쳐진다는 사실은 16세기 이후 경제적 쇠락의 길을 걸은 이탈리아나 19세기 중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창조경제와 조직의 혁신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이 책을 통해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물론 귀에 말뚝을 박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이나 찾아내려는 사람들은 읽어봐야 소용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세만 해도 세계 최고의 문명국인 중국과 후진국인 유럽의 미래를 뒤바꾼 시계의 발명을 보면서, 과연 지금은 무엇이 어떤 문명에 손을 들어줄 준비를 하고 있을지 자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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