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시를 만나다]① 과학자들은 왜 독일 외딴도시 예나로 갔나

2018.10.26 16:00

《국제 사회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혁신의 주체로 도시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우수한 연구 성과가 많이 나오는 도시부터 세계 과학계에 영향력 있는 국제 협력이 잘 이뤄지는 도시, 스타 과학자들을 배출하는 도시들이 과학과 산업은 물론 사회 전반에 새로운 기회와 다양한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국을 넘어서 인류 공동체의 미래를 모색하는 독일과 프랑스, 중국을 대표하는 과학 도시의 성공 비결을 살펴봤다.》

 

독일 뮌헨에서 350㎞ 정도 떨어진 교육·연구 중심도시 예나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인류학연구소의 입구. - 예나=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독일 뮌헨에서 350㎞ 정도 떨어진 교육·연구 중심도시 예나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인류학연구소의 입구. - 예나=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독일 뮌헨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약 350㎞를 달리면 예나라는 아담한 도시에 도착한다. 면적은 서울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인구는 10만 명에 불과한 외딴 시골 소도시로 동서 통일 후 여러 연구기관이 들어서면서 독일의 대표적인 교육·연구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프리드리히실러대, 예나응용과학대와 막스플랑크연구소, 프리드리히뢰플러연구소, 라이프니츠연구소, 프라운호퍼연구소 등 대형 연구기관의 산하 연구소들이 모여 있다.

 

● “접근성·인프라·자본이 과학도시 결정하지 않아”

 

한국에선 정부 산하의 주요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밀집한 대전을 과학도시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예나를 과학도시라고 부르는 독일 국민은 없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MPG)의 베르톨트 나이처츠 연구정책 및 대외협력본부장은 “독일에선 ‘과학도시’라는 개념이 없다”고 말했다. 특정 도시에만 연구기관을 집중적으로 설립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독일에서 가장 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막스플랑크연구회도 마찬가지다.

 

나이처츠 본부장은 “일부 도시의 정치인들이 연구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유리한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 기준으로 연구소를 설립했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며 “새로운 연구소를 설립할 때 최우선 기준은 연구 주체인 과학자와 연구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도시의 접근성이나 인프라, 자본 등은 부수적인 요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시카고대에서 예나의 막스플랑크 인류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정충원 고유전체학연구단 그룹리더는 “처음엔 주변 사람들이 독일의 작은 도시로 가는 것에 대해 의아했지만 이 분야의 최고 연구자들과 협업하고 양질의 데이터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나이처츠 본부장은 “바꿔 말하면 우수한 과학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느 도시든 과학도시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며 “독일은 전국 곳곳에 연구기관이 분포해 있어 대부분의 도시가 스스로 혁신 주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예나시에 따르면 예나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는 5000명에 이른다. 서울이 시민 10만명당 연구자가 2000명(2%)인데 비해 예나는 두 배가 넘는 5%에 달하는 셈이다.
 

베르톨트 나이처츠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MPG) 연구정책 및 대외협력본부장. - 뮌헨=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베르톨트 나이처츠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MPG) 연구정책 및 대외협력본부장. - 뮌헨=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 통일 직후 동독에 연구기관 설립해 ‘연구 생태계’ 조성

 

통일 전인 1980년대만 해도 서독과 달리 동독에는 ‘연구 생태계’랄 게 없었다. 대학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독일 정부는 1990년 통일 직후부터 동독에 여러 연구기관을 설립하면서 독일의 연구 지형을 새롭게 재편하기 시작했다.

 

예나의 라이프니츠 광학기술연구소와 프라운호퍼 응용광학 및 정밀공학연구소도 1992년 설립됐고, 그뒤를 이어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와 생물지구화학연구소가 각각 1996년, 1997년 설립되면서 이후 더 많은 연구소가 들어섰다.

 

연구기관이 자리를 잡으며 연구 성과를 올리기 시작하면서는 관련 산업이 따라 성장했다. 정밀 기계와 제약, 광학, 생명공학, 소프트웨어공학이 예나를 지탱하고 있는 대표적인 산업 분야다.

 

나이처츠 본부장은 “대학과 산업체는 있는데 연구기관이 없는 도시의 경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독일 정부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기관을 먼저 설립해 자연스레 도시의 연구 성과가 산업과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 “지자체 혁신 의지와 꾸준한 지원 중요”

 

독일 바이에른의 대도시 뮌헨도 독일의 도시 중 가장 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인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LMU)와 뮌헨공대(TUM)를 비롯해 11개 종합대와 17개 응용과학대학이 거대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독일의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연구를 선도하는 막스플랑크연구회(MPG)와 프라운호퍼연구회의 행정본부가 자리해 있다. 독일환경보건연구센터, 국립항공우주연구센터 역시 뮌헨에 있다.

 

뮌헨 중심에서 반경 15㎞에는 제약사, 생명공학회사 200여 곳을 비롯해 연구기관, 의료시설 등이 모여 있다.  ‘뮌헨 바이오테크 클러스터’로 불리는 이 지역은 독일의 신약 개발 중심지이자 세계적인 산학연 공동 연구단지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독일 ‘뮌헨 바이오테크 클러스터’는 200여 개의 생명공학기업을 비롯해 대학, 연구기관, 병원 등이 모여 신약, 정밀 질병 진단기술, 환자 맞춤 의료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7월 열린 ‘바이오테크-리포트’ 워크숍에서 산학연 연구자들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 바이오엠(BioM) 제공
독일 ‘뮌헨 바이오테크 클러스터’는 200여 개의 생명공학기업을 비롯해 대학, 연구기관, 병원 등이 모여 신약, 정밀 질병 진단기술, 환자 맞춤 의료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7월 열린 ‘바이오테크-리포트’ 워크숍에서 산학연 연구자들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 바이오엠(BioM) 제공

헨 바이오테크 클러스터는 1990년대 후반 바이에른 주 정부 주도로 주 내 다른 4개 바이오테크 클러스터와 함께 구축됐다. 뮌헨에만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동으로 매년 6500억 원이 투입되고 있다. 뮌헨 바이오기술 혁신 및 창업센터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뮌헨에서 신약 개발과 질병 진단, 환자 맞춤의료 관련 분야에서만 40여 개의 새로운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단순히 연구기관이 모여 있다고 해서 과학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뮌헨은 정부의 안정적인 투자와 더불어 인재 양성, 시민들의 관심과 이해를 위한 지자체 차원의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카를로스 모에다스 유럽위원회 연구혁신과 위원은 “과학을 통한 사회 혁신은 정부와 과학자, 시민 중 어느 한 집단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중앙정부가 모든 걸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지자체의 혁신 의지와 꾸준한 지원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예나·뮌헨=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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