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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과학카페] 한때 언어 유전자로 불렸던 FOXP2 이야기

2018년 09월 11일 11:19

FOXP2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을 때 파라네 바르카 카뎀은 그 유전자를 언어 유전자나 문법 유전자로 부르는 것이 부정확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FOXP2 유전자의 결정적인 결함은 말과 명료한 발음과 많은 관련을 가질 뿐, 언어의 더 복잡한 측면까지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 크리스틴 케닐리, ‘언어의 진화’(2007)에서

 

우리는 언어의 생성과 관련된 신경학적 과정에서 FOXP2의 중요한 역할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증거를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FOXP2가 최근(20만 년 이내) 조상 호모 사피엔스에서 자연선택된 게 아니고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의 음성 언어 발달도 이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 엘리자베스 앳킨슨 외, ‘셀’ 9월 6일자 논문에서

 

연예인들이 도박이나 마약 같은 일탈을 하거나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이들의 불안한 삶에 대한 얘기가 나오곤 한다. 수년 동안 무명으로 지내다 우연히 출연한 드라마에서 화제가 돼 유명인이 되고 한동안 잘 나가다가 드라마의 시청률이 안 나오고 영화도 실패하면서 대중의 뇌리에서 잊힌다. 이 기간 동안 본인의 연기력은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의 관심과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니 딱한 노릇이다.

 

사실 사람들은 연예인뿐 아니라 많은 것들을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보는 데 익숙하다. 모든 대상을 두고 그것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반영해 평가한다는 건 특히 오늘날처럼 다채로운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미지 확대하기그동안 인간의 복잡한 의사소통체계가 ′언어 유전자′로 불린 FOXP2 유전자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오늘날은 외면되는 분이기다. - 사진 GIB 제공
그동안 인간의 복잡한 의사소통체계가 '언어 유전자'로 불린 FOXP2 유전자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오늘날은 외면되는 분이기다. - 사진 GIB 제공

과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가끔 벌어지는데, FOXP2 유전자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에 대한 대중매체의 반응이 바로 그랬다. 지난달 학술지 ‘셀’ 사이트에 미리 공개된 논문에서(정식으로는 ‘셀’ 9월 6일자에 실림), 많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전 주장과는 달리 현생인류에서 선택된 FOXP2 유전자 변이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은 음성에 기반한 복잡한 의사소통체계, 즉 언어를 구사하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이게 ‘언어 유전자’로 불린 FOXP2 때문은 아니라는 내용에 학술지 ‘네이처’조차 “언어 진화에 대한 이해를 뒤집었다”며 FOXP2를 외면하는 분위기다. 

 

이미지 확대하기아미노산 715개로 이뤄진 FOXP2 단백질은 7000만 년 전 갈라진 설치류와 영장류 사이에 단 한 곳만 다를(설치류에서 변이 일어남) 정도로 보존도가 높다. 그만큼 동물의 생존에 중요하다는 뜻으로 실제 이 유전자가 둘 다 고장 난 개체는 태아발생과정이나 태어난 직후 죽는다. 그런데 600만여 년 전 침팬지/보노보와 갈라진 뒤 진화한 인류에게서 추가로 두 곳에 변이가 일어났다. 인간형 FOXP2가 언어 유전자로 불린 이유다. -사진 제공 워릭대
아미노산 715개로 이뤄진 FOXP2 단백질은 7000만 년 전 갈라진 설치류와 영장류 사이에 단 한 곳만 다를(설치류에서 변이 일어남) 정도로 보존도가 높다. 그만큼 동물의 생존에 중요하다는 뜻으로 실제 이 유전자가 둘 다 고장 난 개체는 태아발생과정이나 태어난 직후 죽는다. 그런데 600만여 년 전 침팬지/보노보와 갈라진 뒤 진화한 인류에게서 추가로 두 곳에 변이가 일어났다. 인간형 FOXP2가 언어 유전자로 불린 이유다. -사진 제공 워릭대

2001년 언어 유전자로 화려하게 데뷔하던 때부터 이제 그 지위에서 내려와 한물간 유전자가 된 FOXP2의 여정을 지켜본 필자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FOXP2가 언어 유전자는 아니더라도 인간이 언어를 구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글 앞의 인용문처럼 2001년 연구를 이끈 연구자는 인터뷰에서 당시 몇몇 과학자와 대중매체가 FOXP2가 언어 유전자라며 과대평가하는 걸 못마땅해 했고 최근 연구결과를 발표한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자신들의 결론이 자칫 FOXP2를 과소평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를 계기로 FOXP2와 인간의 언어 진화에 대해 생각해본다.

 

 

2002년이 전성기

 

영국 런던대 신경과학자 파라네 바르가 카뎀 교수팀은 심각한 언어장애를 보이는 구성원이 많은 가계(家系)에 주목했다. 이들은 청각과 지능은 정상이었음에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계 분석 결과 이 장애는 멘델의 법칙을 따르는 우성유전이고 남녀 차이가 없어 상염색체에 위치한 특정 유전자의 변이일 가능성이 높았다. 

 

언어에는 수많은 유전자가 관여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 흥미로운 결과였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사냥에 뛰어들었고 이 유전자가 7번 염색체의 짧은 다리 쪽에 있다는 결과를 1998년 학술지 ‘네이처 유전학’에 발표했다. 그리고 3년 뒤 마침내 유전자의 실체를 밝혀 학술지 ‘네이처’에 실었다.

 

FOXP2라는 이름의 이 유전자는 아미노산 715개로 이뤄진 꽤 큰 단백질을 지정하고 있었는데, 다른 유전자들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인자로 밝혀졌다. 즉 수십~수백 가지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라는 말이다. FOXP2는 특히 태아의 뇌조직에서 많이 발현되는데, 그 결과 언어처리를 담당하는 회로와 혀와 입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운동신경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언어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유전자 쌍(부모에게서 각각 받으므로) 가운데 하나에 변이가 일어나 고장 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정상 FOXP2 단백질의 양이 절반이 될 경우 유독 언어 관련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말을 하는 게 그만큼 정교한 과정이라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유전자 쌍 모두 고장 난 사람은 없었다. 훗날 생쥐에서 관찰한 결과 이런 경우 태아발생과정에서 죽거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는 것으로 밝혀졌다. FOXP2가 단순히 언어뿐 아니라 뇌 발달 전반에 관여함을 시사한다. 아울러 폐와 장에서도 꽤 발현되는 것으로 보아 호흡계와 소화계에서도 모종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확대하기자기 길들이기의 관점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관계는 오늘날 침팬지와 보노보의 관계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즉 유전적으로는 비슷하더라도 자기 길들이기로 의사소통 능력을 발전시킨 호모 사피엔스만이 고도의 언어능력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보노보 칸지(사진 오른쪽)는 상징과 수화를 통해 사람과 꽤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반면 이런 수준에 도달한 침팬지는 없다. -사진 제공 위키피디아
자기 길들이기의 관점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관계는 오늘날 침팬지와 보노보의 관계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즉 유전적으로는 비슷하더라도 자기 길들이기로 의사소통 능력을 발전시킨 호모 사피엔스만이 고도의 언어능력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보노보 칸지(사진 오른쪽)는 상징과 수화를 통해 사람과 꽤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반면 이런 수준에 도달한 침팬지는 없다. -사진 제공 위키피디아

2002년 역시 ‘네이처’에 FOXP2와 관련된 놀라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포유동물의 FOXP2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한 결과 약 7000만 년 전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생쥐와는 세 곳이 달랐고 약 2500만 년 전 갈라진 붉은털원숭이나 그 뒤 갈라진 유인원들과는 두 곳이 달랐다. 즉 설치류와 영장류는 80번째 아미노산 한 곳이 다르고, 영장류 가운데 유독 사람만이 303번째와 325번째 아미노산 두 곳에 추가로 변이가 생긴 것이다(엄밀히 말하면 오랑우탄도 다른 곳(6번 째)에 아미노산 하나가 바뀌었다).

 

즉  303번째와 325번째 아미노산 변이는 약 600만 년 전 침팬지/보노보와 갈라진 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인간형 FOXP2의 진화가 영장류 가운데 사람만이 정교한 음성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언어 유전자라는 말이다. 

 

당시 연구를 이끈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박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호모속 인류를 멸종시키고 살아남은 것도 호모 사피엔스만이 인간형 FOXP2를 지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즉 인간형 FOXP2가 나타난 시기가 20만 년 이내라는 말이다. 그리고 2006년 이를 입증하는 실험에 들어갔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듬해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그 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이쪽 생리(‘네이처’나 ‘사이언스’가 아니다!)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결과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망스럽게도 네안데르탈인 두 명의 FOXP2 염기서열은 호모 사피엔스와 동일했다. 즉 인간형 FOXP2는 둘이 갈라진 50만여 년 전보다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제 인간형 FOXP2에 언어 유전자 지위를 계속 부여하려면 네안데르탈인도 호모 사피엔스처럼 음성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의사소통능력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가설과 맞는 않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페보 박사팀은 2013년 학술지 ‘분자생물학 및 진화’에 약간의 반전을 꾀한 논문을 발표했다. 즉 FOXP2 유전자의 8번째 인트론(아미노산으로 번역되지 않는 부분)의 특정 영역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차이를 발견했고 호모 사피언스 사이(현대인 50명)에는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즉 이 변이가 호모 사피엔스의 언어능력 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둘 사이에 비록 동일한 단백질이 만들어지지만 발현량이나 패턴이 달라 뇌의 회로나 발성기관의 구조에 차이가 났고 그 결과 호모 사피엔스만이 고도의 음성 언어를 지닐 수 있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다소 억지처럼 보이지만 아무튼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번 ‘셀’ 논문에서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인트론 영역이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게 밝혀져(즉 선택된 게 아니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잃은 것이다. 

 

이처럼 2007년 이래 FOXP2는 더 이상 언어 유전자로 불리기 어렵게 됐지만 여러 동물에서 발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졌다. 생쥐의 경우도 FOXP2 유전자 쌍 가운데 하나가 고장 나면 (찍찍거리는) 발성에 문제가 생기고 특히 명금류의 경우 다양한 노래 레퍼토리로 배우고 지저귀는 데 FOXP2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2001년 FOXP2 유전자를 밝혀낸 바르카 카뎀의 냉정한 평가, 즉 “FOXP2 유전자의 결정적인 결함은 말과 명료한 발음과 많은 관련을 가질 뿐, 언어의 더 복잡한 측면까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는 게 옳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언어구사에서 독보적인 종이 됐을까.

 

이미지 확대하기보노보 칸지는 때로 뭔가를 말하려고 시도하지만 발성기관의 구조적인 한계로 자음과 모음을 명쾌히 구분해 발음하지 못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 보노보의 FOXP2 유전자를 인간형으로 바꿔치기 한다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제공 위키피디아
보노보 칸지는 때로 뭔가를 말하려고 시도하지만 발성기관의 구조적인 한계로 자음과 모음을 명쾌히 구분해 발음하지 못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 보노보의 FOXP2 유전자를 인간형으로 바꿔치기 한다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제공 위키피디아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

 

학술지 ‘사이언스’ 8월 3일자에는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폴란드 토룬에서 열린 언어 진화 컨퍼런스 소식을 전한 기사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인간 언어 진화의 원동력을 유전자가 아니라 행동에서 찾는 게 최근 트렌드 같다. 특히 ‘자기 길들이기 가설’이 인기다. 길들이기 또는 가축화(domestication)란 사람이 야생동물을 길들여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온순하고 사회성 있는 동물로 만드는 과정이다. 

 

자기 길들이기(self-domestication)란 스스로가 이런 동물로 바뀐 과정으로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이다. 즉 호모 사피엔스를 동시대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해보면 마치 가축과 그 야생종을 비교한 것과 비슷한 패턴이 보인다.

 

먼저 남성의 외모가 여성스럽게 바뀌는데 이는 남성호르몬 분비의 감소로 설명할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툭 튀어나온 눈 주위 뼈와 건장한 골격을 떠올려보라. 이는 가축 수컷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는 공격성뿐 아니라 외모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편 신경호르몬 세로토닌의 분비는 늘어난다. 그 결과 무리를 지어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상대의 마음(심리)를 읽는 능력도 발달한다.

 

최근 연구자들은 몇몇 동물에서도 관찰된 길들이기 현상을 토대로 인류의 언어 진화가 자기 길들이기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호모 사피엔스의 자기 길들이기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 또는 창발적(emergent) 특성이 언어능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룬 컨퍼런스에서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조류학자 오카노야 카주오 박사는 십자매와 그 야생 조상인 납부리새(munia)를 비교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50여 년 전 사람들이 길들인 십자매는 성격이 온순하고 사교적이다. 반면 원종인 납부리새는 공격적이고 털 색도 짙다. 딱 봐도 어느 게 야생이고 어느 게 길들인 종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둘은 지저귐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납부리새는 단조롭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반면 십자매는 복잡하고 섬세한 멜로디로 ‘노래한다.’

 

즉 길들인 동물은 협력과 의사소통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끌어내는 쪽으로 진화가 일어나는데, 십자매의 경우 지저귀는 능력이고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 언어구사력이라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설사 네안데르탈인이 인간형 FOXP2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더라도 자기 길들이기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처럼 정교한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생 동물 가운데 사람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와 보노보를 보면 정말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은 불과 100만 년 전에 갈라진 가까운 종으로 유인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외모로 구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둘의 성격이나 행동은 꽤 달라 침팬지는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 보노보는 온순하고 상대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마디로 보노보는 자기 길들이기가 꽤 진행된 종이라는 말이다. 

 

둘은 의사소통 능력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 가리키는 행동에 대한 이해력에서 두드러진다. 즉 침팬지는 우리가 손가락으로 어떤 대상을 가리켜도 이해하지 못하는 반면 보노보는 그 의미를 알아차린다. 수화와 상징을 통해 사람과 대화하는 유인원 칸지(Kanzi)가 침팬지가 아니라 보노보인 이유다. 

 

반면 침팬지를 대상으로 대화를 나누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태어나자마자 사람과 살며 100여 가지 수화 단어를 익혀 침팬지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 님 침스키조차 덩치가 커지며 통제 불능이 돼 4년 만에 우리로 보내졌다.

 

오늘날 침팬지와 보노보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맥락의 일이 과거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에서 일어났다는 말이다. 

 

 

여전히 궁금한 인간형 FOXP2의 영향력

 

자기 길들이기 또는 사람에 의한 길들이기로 사회성이 큰 쪽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결국 언어구사능력을 획득한 건 사람뿐이다. 즉 늑대가 개가 돼 인류와 3만 년을 사는 동안 눈빛만 보고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이가 됐다지만 여전히 언어능력은 습득하지 못한 건 늑대에겐 그럴 수 있는 하드웨어(몸의 구조)가 없었고 개가 된 이후에도 그걸 갖추게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노보가 자기 길들이기를 했다지만 결국 언어구사능력이 초보적인 수화에서 그친 건(개와 달리 손은 꽤 능숙하게 쓸 수 있으므로) 발성기관이 자음과 모음을 명쾌하게 발음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칸지는 종종 사람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시도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가 힘들다고 한다.

 

결국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구사능력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 것은 자기 길들이기에 앞서 발성기관의 구조가 명쾌한 발음을 구사할 수 있게 갖춰졌기 때문 아닐까. 태아발생과정에서 발성기관이 형성될 때 여러 유전자가 관여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FOXP2 유전자가 인간형이었기에 인간의 발성기관 형태가 나온 것 아닐까. 어쩌면 네안데르탈인도 발성기관 자체는 명쾌한 발음을 낼 수 있는 구조였지만 머리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언어’를 발명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지 확대하기천재 앵무새 알렉스는 색, 모양, 숫자에 대한 개념을 터득해 사람과 말로 진정한 대화를 나눴다. 예를 들어 사진의 상황에서 “녹색 큐브가 몇 개?”라고 묻자 “네 개”라고 답했다. -사진 제공 위키피디아
천재 앵무새 알렉스는 색, 모양, 숫자에 대한 개념을 터득해 사람과 말로 진정한 대화를 나눴다. 예를 들어 사진의 상황에서 “녹색 큐브가 몇 개?”라고 묻자 “네 개”라고 답했다. -사진 제공 위키피디아

앵무새나 구관조가 이런 경우다. 이 새들은 사람처럼 자음과 모음을 명쾌히 구분해 발음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은 한다. 그러나 특정 단어나 문장을 맥락 없이 반복하기 때문에 진정한 대화상대가 되지는 못한다. 머리(소프트웨어)가 발성기관(하드웨어)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개나 보노보는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따라가지 못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하지만 말을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 다른 종의 동물과 음성 언어로 진짜 대화를 나눈 예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일부 앵무새가 제한적이나마 사람과 의미 있는 말을 주고받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예가 아프리카회색앵무새 알렉스(ALEX)로 어휘력과 대화능력이 놀라운 수준이었다. 즉 단순히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색과 모양, 숫자 개념까지 터득해 사람과 의미 있는 말을 주고받았다.

 

인간형 FOXP2가 600만여 년 전(침팬지와 갈라진)에서 50만여 년 전(네안데르탈인/데니소바인과 갈라진) 사이 어느 시점에서 선택됐다는 건 인류의 진화에 뭔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임을 시사한다. 어쩌면 직립보행과 관련해 목이나 폐의 구조가 바뀌는데 관여했을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정교한 발음을 할 수 있는 발성기관이 형성된 게 아닐까.

 

문득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따라가지 못해 자신의 생각을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보노보의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보노보의 FOXP2 유전자를 인간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크리스퍼 기술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실제 이런 실험이 2009년 생쥐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사람형 FOXP2를 지닌 생쥐는 초음파 영역에서 내는 ‘찍찍’거리는 소리가 바뀌었고 뇌 기저핵 부분의 신경회로가 변화됐다. 

 

사람형 FOXP2를 지닌 보노보의 발성기관 구조가 바뀌어 앵무새 수준으로 발음할 수 있게 된다면 칸지 정도의 의사소통능력을 지닐 경우 어떤 말을 할까. 아마도 알렉스보다는 수준이 더 높을 것이다. 만일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저 하드웨어 구축에만 기여했을 뿐인 FOXP2에게 대중매체는 다시 언어 유전자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을까.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6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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