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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팔 잘린 사람은 손목 잘린 아픔을 모른다

2018년 09월 08일 13:00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같은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거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만화 '습지생태보고서'에 팔이 잘린 사람은 손목이 잘린 사람의 아픔을 모른다는 말처럼, 어떤 경우는 고생을 해 본 사람들이 더 다른 사람들에게 모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것 때문에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지만 너는 왜 힘들어하니” 처럼 앞뒤가 안 맞는 말도 많다. 

 

자신이 조금 더 또는 다른 방식으로 힘들었다고해서 다른 사람의 힘듦이 힘듦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닌데도, 때로는 겪어본 사람들이 더 네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타인의 고통을 평가절하하곤 한다. 물론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특별히 더 알아주고 더 보상해달라고 하는 말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타인의 고통을 묵살할 필요는 없을텐데 왜 그러는 걸까? 

 

학술지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겪어 본 사람들이 때로는 최악의 공감능력을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Ruttan et al., 2015). 

 

연구자들은 겨울에 찬 물에 들어가는 경기대회에 참가했거나 참가 예정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원래 매우 참가하고 싶어 했지만 막상 찬 공기가 피부에 닿으니 갑자기 싫어져서 경기를 포기한 사람이 얼마나 한심하고 경멸스러운지를 물었다. 그러자 아직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이미 참가해서 찬 물로 한껏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포기한 사람이 한심하고 경멸스럽다고 더 많이 응답하는 경향을 보였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사람들에게 아홉자리의 숫자들을 20분 동안 외우게 하는 고통스러운 과제를 주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참가자들에게는 과제의 목적이 직무 능력을 파악하는 테스트라고 알렸다. 이러한 고통스런 시험을 보지 않은 사람과 방금 시험을 본 사람, 일주일 전에 시험을 본 사람의 총 세 가지 그룹이 있었다. 

 

세 그룹의 사람 모두에게 채용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시험을 보던 도중 급격히 피곤해져서 시험을 중도 포기한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이 얼마나 성격이 좋은지, 얼마나 능력있는 사람일지, 당신이 고용주라면 저 사람을 고용할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해당 시험을 일주일 전에 본 사람이, 시험을 보지 않았거나 방금 시험을 본 사람에 비해 시험을 포기한 사람이 성격이나 능력이 떨어지며 자신이 고용주라면 저 사람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하는 등 가장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사건에 대한 기억은 잘 하지만 ‘감정’에 대한 기억은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Loewenstein & Small, 2007). 대략 그 때 기분이 나빴다거나 좋았다는 정도이지 당시의 수많은 감정과 고통을 생생하게 다시 체험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아무리 힘들었던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 감정이 옅어지면 실제로 힘들었던 것보다 ‘덜’ 힘들었다고 기억하게 된다. 화장실 들어갈 때(Hot state)와 나올 때(Cold state)가 완전히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관련해서 사람들은 지금 당장 배고프거나 피곤하고 두려렵지 ‘않을’ 때에는 배고픔, 피로, 두려움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아직 미완성인 과제보다 이미 완성한 과제의 어려움을 다소 평가절하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현재진행형 어려움이 아닌 이미 지나버린 어려움은 금방 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의 비슷한 고통을 바라볼 때 역시 자신은 시간이 지나서 해당 고통에 대해 무덤덤해진 상태이지만 타인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억 속에 남는 것은 ‘힘들었지만(실제보다 과소평가된 과거의 어려움)  나는 해냈어’라는 감정을 쏙 뺀 결과 정도여서 지금 눈 앞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할 만 하던데 너는 왜 못해?”라고 하고 만다. 

 

이러한 현상은 계속해서 취직에 실패하고 있는 취준생, 또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볼 때에도 나타났다. 한 번도 백수인 적이 없었던 사람과 백수였다가 최근에 구직에 성공한 사람, 예전에 백수였다가 구직에 성공한 사람 중 예전에 구직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가장 취직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하며 실패 중인 취준생을 경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 따돌림을 당했던 사람들이 따돌림 피해자의 아픔을 가장 과소평가하기도 했다. 

 

내가 심하게 고생했을수록 같은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엄격한 시선을 적용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덜 힘들거나 더 힘든건 가능할 수 있어도 ‘힘들지 않은 고생’ 같은 건 없다는 걸 상기해야 하는 이유다. 

 


Loewenstein, G., & Small, D. A. (2007). The Scarecrow and the Tin Man: The vicissitudes of human sympathy and caring.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11, 112-126.
Ruttan, R. L., McDonnell, M. H., & Nordgren, L. F. (2015). Having “been there” doesn’t mean I care: When prior experience reduces compassion for emotional distres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8, 6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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