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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당신도 해적입니다...반사회성의 진화

2018년 08월 05일 15:00

오늘도 신문 사회면을 들춰보면 살인, 강도, 강간, 사기, 절도 등 끔찍한 사건이 줄을 잇습니다. 물론 한국은 범죄율이 상당히 낮은 국가입니다만, 그래도 인면수심의 범죄는 항상 일어나고 있습니다(한국의 범죄율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지만,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는 일본에 이어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반사회성이라는 행동 특성은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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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회성의 딜레마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높은 수준의 사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개미나 꿀벌을 들어 '진사회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사회성은 이러한 사회적 곤충보다도 훨씬 높습니다. 고도의 언어 능력, 그리고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는 개체와 호혜적인 이타성을 나누는 행동은 아주 특별합니다. 개미는 개미 집단을 위해서 몸도 내놓을 정도로 사회성이 강하지만, 사실 한 무리의 개미는 모두 가까운 친척입니다. 인간처럼 생면부지의 사람과도 협력하는 일은 없습니다. 


인류는 놀라운 수준의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 큰 이익을 얻었고, 지구의 지배적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인류 문명의 가장 핵심적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사회성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협력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무지 사회성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협력을 모르는 사람이죠. 협력을 하는 경우에도 사실은 거짓이나 사기인 경우가 많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도중에 거래를 끊습니다. 대책 없는 사람입니다. 


진화적으로 참 이상한 일입니다. 사회성이 유리한 형질이라면 분명 반사회적 형질은 이미 사라졌어야 마땅합니다. 남들이 향유하는 협력의 이익을 혼자만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사회나 반사회성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사실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이런 반사회성의 본성이 숨어있습니다. 반사회성의 딜레마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한스 홀베인 작(1525-28년 경).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위한 야수의 그림. 인간은 고도로 높은 사회성을 진화시켰으나, 동시에 우리 마음에는 법이나 전통 따위는 무시하는 야수의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다. - 위키미디어 제공
한스 홀베인 작(1525-28년 경).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위한 야수의 그림. 인간은 고도로 높은 사회성을 진화시켰으나, 동시에 우리 마음에는 법이나 전통 따위는 무시하는 야수의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다. - 위키미디어 제공

 

 

나쁜 사람들?

 

이들은 쉽게 말하면, ‘나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협박합니다. 뜻대로 안되면 신체적인 싸움을 벌이는데, 맨주먹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병을 깨서 거꾸로 들고, 벽돌을 집습니다. 총도 쏘고 칼도 휘두르죠. 잔혹한 행동을 하는데,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습니다. 


남의 물건에도 함부로 손을 댑니다. 대놓고 강도 짓을 벌이고 날치기를 합니다. 필요하면 몰래 남의 집에 들어가서 도둑질을 합니다. 심지어 원하지 않는 남의 물건도 마구 부수고, 불을 지르기도 하죠. 거짓말도 능숙한데, 신분을 속이거나 문서를 위조하는 일도 잦습니다. 머리가 좋은 경우에는 아주 교묘한 협잡과 사기를 꾸밉니다. 


누구나 남의 물건에 탐을 내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와 주먹다짐을 한 적도 있겠죠. 하지만 반사회성을 가진 사람의 행동은 혼란스러운 청소년기에 잠깐 나타나는 행동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대부분 15세 이전의 어린 나이에 시작되어서, 평생 지속됩니다. 어떤 사람은 삶의 상당 기간을 교도소에서 보냅니다. 

 

 

성공적 전략으로서의 반사회성

 

도무지 성공적일 것 같지 않은 전략입니다. 그런데 진화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적응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순응하는 수동적 전략이죠. 인간의 생태적 환경은 주로 사회적 상황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결국 순응이란 사회적 관습과 규율에 대한 순응입니다. 둘째는 환경을 자신의 뜻대로 바꾸려는 능동적 생존 전략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바뀌기 보다는, 주변을 바꾸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전략은 서로 경합합니다. ‘최소한 자연의 눈에서 보면’ 어느 하나가 전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습니다. 


안정적인 사회에서는 물론 반사회성이 발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뭇 사람의 지탄을 받는데다가, 제대로 된 직장을 얻기도 어렵습니다. 전과가 쌓이고, 실형을 사는 일이 많아집니다.  진화적 게임 이론에 의하면 협력에 기반한 사회성이 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집단의 다수는 협력을 택합니다. 반사회적인 행동을 제압하는 법이나 규율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높여주는 문화적 장치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반사회성이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첫째 환경이 너무 예측하기 어려워진 경우입니다. 당장 내일 굶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법이고 전통이고 없습니다. 점잖게 앉아 굶어 죽는 것보다는, 쌀을 훔치든 돈을 뺐든 일단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이익이죠. 둘째 협력의 이익이 감소한 경우입니다. 한번 보고 다시 안 볼 상황이라면, 대충 등쳐먹고 도망치는 것이 유리합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사기가 흔한 이유죠. 셋째 협력자가 너무 많아진 경우입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착한 사람만 사는 세상에, 유일하게 ‘나쁜’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들의 왕이 될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프랜시스 드레이크 경. 드레이크는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은 해적이었지만,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그에게 기사의 작위를 내렸고, 심지어 영국 함대의 지휘권을 주기도 했다. 그는 왕실의 사략증을 가지고 수많은 약탈을 행한 ‘나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스페인 함대를 쳐부수고, 영국 최초로 세계 일주를 완수했으며, 카리브해를 탐험한 출중한 개척자였다. - 위키미디어 제공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 드레이크는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은 해적이었지만,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그에게 기사의 작위를 내렸고, 심지어 영국 함대의 지휘권을 주기도 했다. 그는 왕실의 사략증을 가지고 수많은 약탈을 행한 ‘나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스페인 함대를 쳐부수고, 영국 최초로 세계 일주를 완수했으며, 카리브해를 탐험한 출중한 개척자였다. - 위키미디어 제공

 

 

반사회성과 개척자

 

앞서 반사회적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실 자연의 세계에는 옳고그름이 없습니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지만, 그렇다고 사슴은 착하고 사자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선악의 개념은 인간 사회에서 처음 생겼는데, 반사회적 행동은 다수의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므로 ‘악’한 행동으로 굳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이 꺼리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감옥에서 인생을 허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사회적인 사람은 인간 사회에 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원초적 본성이기 때문이죠. 


발달적인 측면에서 반사회성은 유년기의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은 초기 유년기의 양육 환경을 통해서, 세상이 어떨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측에 맞추어서 프로그램화된 발달 과정을 겪게 됩니다. 따뜻하고 풍족한 환경을 제공해주면 그런 환경에 적합한 행동 패턴을, 춥고 배고픈 환경을 제공해주면 그런 환경에 적합한 행동 패턴이 나타납니다. 진화적으로 프로그램화된 유연한 발달 전략입니다. 


그렇다면 어린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주면 반사회적인 사람이 없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반사회성의 기준은 사회가 만든 것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기준이 높아지고, ‘반사회성’을 보이는 사람의 비율은 여전히 비슷할 것입니다. 범죄가 전혀 없는 세상에서는, 노상방뇨가 극악한 범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소위 ‘반사회성’에 속하는 행동 패턴은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환경에서 빛을 발합니다. 이들은 타고난 단독 플레이어인데, 낯설고 척박한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든 생존해냅니다. 대항해시대를 이끌던 모험가들은, 사실 바다를 누비던 해적의 다른 이름입니다. 유럽의 여러 정부에서는 해적에게, 사략증, 즉 ‘사적으로 약탈하는 것을 허용하는 허가증’을 발부하기도 했었죠. 그리고 이들은 얌전한 신사라면 도저히 엄두도 못할 일을 해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대 문명 사회에는 이들이 발붙일 곳이 별로 없습니다만……


하지만 해적이나 침략자 수준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법이나 규율 따위는 때려치우고 야성에 따라 살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발칙한 말이지만, 혹시 내적인 야수의 본능을 억지로 누르고 있다면 자신의 ‘능력’이 꼭 필요한 곳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어두운 뒷골목의 세계가 아니라, 미개척지를 홀로 탐험하는 개척자로 말이죠.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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