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조연 마치고 퇴장하는 와이브로

2018.07.31 14:00

2005년 가을, APEC 정상회담이 열리던 부산에는 특별한 버스가 다녔다. 이 버스 안에서는 노트북으로 무선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었다. 최대 20Mbps의 속도로 인터넷을 쓸 수 있었고, 광안대교를 달리면서도 인터넷이 끊어지지 않아 세상을 놀랍게 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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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는 10Mbps대 인터넷이 한창이었고, 와이파이의 보급으로 인터넷 연결을 위해 선을 잘라내는 것에 막 익숙해졌던 참이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상상 속의 일만 같았던 시절이다. 바로 와이브로의 시범 서비스다. 이후 와이브로는 2006년 상용화가 됐고 금세 전국에 망이 깔렸다.

 

그 와이브로가 올 9월 말로 종료된다. KT는 9월30일부터 와이브로 서비스를 접고 이용자들을 LTE 기반 동글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도 종료를 검토중이다. 여느 기술들이 그렇듯 와이브로 역시 화려한 등장과 달리 12년만의 퇴장은 쓸쓸하다.


와이브로는 3G 스마트폰 시장이 싹트면서 오히려 더 그 역할이 커졌다. 3G 네트워크는 순식간에 퍼진 스마트폰과 그에 따라 급격히 늘어난 인터넷 이용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지하철만 타면 3G가 터지지 않던 것도 바로 트래픽 처리량이 한계를 맞았기 때문이다. 와이브로는 이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느리고 비싼 3G보다 조금 번거롭지만 와이브로가 더 안정적이고 빨랐다.

 

최호섭 기자 제공
최호섭 기자 제공

이후로 와이브로는 LTE가 보급되던 초기까지 활발하게 제 역할을 해 왔다. LTE처럼 주파수 대역폭과 전송 기술에 손을 대면서 속도를 두 배로 끌어올린 2세대로 한 차례 진화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과 인터넷 서비스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와이브로도 LTE가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그 존재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심 망으로서 대대적인 투자가 들어가고 빠르게 진화하는 LTE에 금세 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운영되고 있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아직 와이브로를 쓰는 이용자는 5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용자가 줄어들고,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통신사들에게 와이브로는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와이브로는 한때 LTE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4세대 이동통신의 기술이었다. 와이브로는 애초 고정형 무선 인터넷으로 설계된 와이맥스를 국내 기업들이 손봐서 이동형으로 만든 서비스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세대를 거치면서 속도와 대역폭을 개선해 나갔고, 일부 국가에서도 이를 모바일 인터넷의 한 서비스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LTE와 4세대 이동통신 표준 규격을 두고 경쟁하기도 했지만 결국 LTE에게 자리를 넘겨주면서 더 이상 진화도, 투자도 이어지지 않았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서 속도와 커버리지가 예전같지 않다는 이용자들의 불만을 낳기도 했다.

 

와이브로의 수익성과 활용도가 떨어지면서 정부도, 통신사들도 이 와이브로에 대해 적잖은 고민을 이어왔다. 이동통신사들은 오래 전부터 와이브로의 2.3GHz대 주파수를 TD-LTE로 바꾸어서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우리가 현재 쓰는 LTE는 FD-LTE로 통신에 쓰는 주파수를 특정 구역으로 나누어서 데이터 수신과 전송을 동시에 처리하는 기술이다. 반면 TD-LTE는 주파수 전체를 수신, 혹은 송신으로 전부 쓰되, 시간을 나누어서 송수신에 할당하는 방식이다. 열 번 통신하는 사이에 여덟 번은 데이터를 받고, 두 번은 데이터를 보내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통신 서비스에는 FD-LTE가 맞지만 TD-LTE 역시 중국을 비롯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와이브로처럼 전화 기능 외에 데이터만 주고받는 보조 통신망 역할이라면 TD-LTE 기술이 대역폭 처리에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와이브로 주파수를 다른 용도로 쓰는 안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2.3GHz대 주파수는 와이브로를 위해서 통신사에 빌려준 것이지, 통신사들이 마음대로 서비스를 정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고 선을 그었다. 쓰지 않으려면 주파수를 반납하라는 것이 원칙이었다. 또한 와이브로는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이동통신망이기 때문에 유지에 큰 돈이 들어간다고 해도 이를 접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순히 망 종료가 아니라 기술의 맥이 끊어지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년 3월로 통신사와 정부간에 약속한 와이브로 주파수의 이용 기간이 끝난다. 더 이어가 봐야 서비스로서도, 사업으로서도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했다. 기존 가입자들은 LTE 망을 이용하는 동글로 전환하게 된다. KT는 기존 요금제와 똑 같은 조건에 단말기도 무료로 바꿔주겠다고 밝혔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이용자로서는 같은 요금에 더 빠르고 쾌적한 LTE로 넘어가는 게 유리하긴 하다.

 

와이브로는 이제 끝을 맺지만 관련 기술은 남아서 LTE와 5세대 이동통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표준과 독자 기술에 대한 우리나라 통신 시장의 고집을 낳은 부작용도 없지는 않지만 새로운 이동통신에 대한 적응력을 키웠고, 통신사들의 경쟁력도 높아졌다. 내년 초 반납되는 2.3GHz대 주파수 역시 와이브로를 통해 활용성이 검증됐고 다시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다. 주목받던 통신망의 퇴장은 또 한 시대가 지나가는 이정표가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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