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수능개편안 연속기고] 무리한 문이과 통합에 길 잃은 백년대계

2018.07.19 12:27

※ 편집자 주. 정부는 현재 중3 학생이 치를 2022년 수능에서 수학과 과학 과목 비중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수학 시험은 문이과를 통합해 치르고, 과학은 사회와 합쳐 2과목만 골라 응시하는 방식입니다. 과학기술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쉬운 공부에 매달리다 정작 미래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년대계 수학·과학 교육에 대한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소개합니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을 빠르면 2022년부터 시행하겠다는 교육부의 시안이 얼마 전 발표되었다.

 

2014~2015년 교육부가 과학기술계의 엄청난 반발을 무시하고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밀어붙였을 때부터 우려했던 바다. 당시 과학기술계의 우려에 대해 통합형 수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던 교육부 관리들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데, 그들은 지금 그 자리에 없다. 

 

김명환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김명환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교육부가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 주고 세계적 추세인 문·이과 통합 교육을 완성하기 위해 문·이과 통합형 수능을 시행하겠다는데 과학기술계는 왜 반대하는지 일반인들은 궁금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이 학생들을 선발할 때 문·이과를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과를 지원하는 학생들과 이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같은 수학 시험을 본다면 문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크게 불리할 것임은 자명하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수학 문제를 더욱 쉽게 출제하게 될 것도 자명하다. 

 

뉴시스 제공
뉴시스 제공

그러나 변별력이 전혀 없을 정도로 쉽게 출제하기 전에는 문과를 지원하는 학생의 불리함이 해소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문과 지망생들은 대부분 하위 등급으로 밀리고, 이과 지망생들이 변별력 없는 상위 등급을 독차지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인문사회계열의 교수들이 잠잠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선택 과목의 경우 확률과 통계, 미적분 중 택일하도록 한다는 안은 더욱 심각하다. 모든 학생이 쉬운 확률과 통계 쪽으로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미적분은 극소수만 선택하는 교과목으로 전락 또는 소멸하고, 이공계열로 진학하는 학생 대부분이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 입학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이처럼 수학에 관한한 문·이과 통합형 수능은 결과적으로 문과로의 통합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과 지망생들도 문과 수학만 하게 될 것이고, 문과 지망생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가엾은 우리 학생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변별력 없는 문제들을 끌어안고 ‘실수 안하기’ 훈련을 끝없이 반복하게 될 것이고, 결국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학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 고교생 대표단,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승(2017)- 동아사이언스 제공
한국 고교생 대표단,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승(2017)- 동아사이언스 제공

과학의 경우는 거의 재앙에 가깝다. 문·이과 구분 없이 사회, 과학, 직업 교과군에 속한 여러 교과목들 중 두 과목을 택하는 안은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과학을 아예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이런 안이 제시될 수 있는지 의아하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초래할 미래 세대의 학력 저하는 우리나라의 미래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으로 과학기술계는 우려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개정 작업을 주도하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교육부의 아집과 외곽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전문성이 결여된 시민단체의 독선에, 2014년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위한 개정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반대운동을 펴오던 과학기술계는 절망하고 있다.  

 

더욱이 문·이과 소양을 두루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구호는 그럴듯한 포장일 뿐, 내용을 살펴보면 초점은 오로지 사교육 줄이기에 맞춰져 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시민단체가 거들고 나섰다. 2015년 개정 당시에도 교육부는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각각 20%씩 내용을 감축한다는 인기영합적 원칙을 세웠고, 시민단체는 더 줄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수학교과 연구진에게 몇 가지 지시사항이 전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새로운 내용 추가 금지’였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던져질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가르칠 내용을 결정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포함시킬 수 없도록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초·중·고등학교의 교과내용을 축소하고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경감하면 정말 사교육이 줄어들까? 교육부는 1997년 제7차 교육과정 이래 모든 교육과정 개정에서 줄곧 교과내용을 축소해 왔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사교육이 줄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 없다. 교육부가 20년 넘도록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교과내용 축소와 학습 부담 경감을 통한 사교육 줄이기 정책에 집착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의무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가 자라나는 미래의 주역들에게 유용한 지식을 더 많이 더 잘 가르치기보다, 가능하면 덜 가르치려고 애쓰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모든 산업이 ICT 기반으로 재편되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의 회오리가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완전히 뒤바꿀 폭풍으로 변하고 있다. 그 바탕에 수학과 과학이 자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수학은 과학기술의 언어이고 도구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하나 같이 초중고등학교 교육에서 수학·과학 교육을 강화하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부는 20년 넘게 해 온 그대로 교과내용 축소와 학습부담 경감, 사교육 줄이기를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길을 잃고 헤매는 대한민국 교육부를 어이할꼬. 

 

길을 잃었을 때는 길을 찾는 게 먼저다. 길을 찾기 전까지, 교육부는 초·중·고등학교 교육과 수능을 자꾸 건드리지 말고 제발 가만히 계시라. 개정 시안보다는 그나마 현행이 훨씬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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