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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는 모두 난민이다

2018년 07월 01일 15:00

“전쟁이나 재난 따위를 당하여 곤경에 빠진 백성.” 난민에 대한 사전적 정의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재난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상시적인 상황이죠. 인류사가 난민의 역사로 가득한 이유입니다. 슬픈 일입니다만,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인류학적 숙명입니다.

 

 

 

디아스포라

 

기원전 588년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유대와 이스라엘을 정복합니다. 바빌론의 왕으로 즉위한지 8년만의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모두 끌려가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무려 70년 동안 말이죠. 이를 바빌론 유수라고 합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생긴 역사적 사건이었죠. 디아스포라는 자의든 타의든, 원래 살던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인류학적 현상을 말합니다. 


유대인은 수천 년 간 세계 각지에 흩어져서 어려운 시기를 겪은 고난의 민족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비단 유대 민족만의 일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은 그 민족만의 슬픈 이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구한말의 혼란기에는 연해주와 사할린, 만주, 일본, 하와이 등으로 이주해 갔습니다. 일본과 만주에 각각 백만명이 넘는 한인이 정착했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즐겁게 이사 간 것이 아닙니다. 고향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혹은 타의에 의해서 억지로 떠난 것입니다. 1930년대에는 무려 20만명에 가까운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기도 했죠. 디아스포라는 거의 모든 민족이 겪었던 일이고, 일부 민족은 지금 당장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디아스포라는 인류사를 통해서 늘 일어나던 보편적이고 상시적인 현상이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디아스포라는 인류사를 통해서 늘 일어나던 보편적이고 상시적인 현상이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난민: 인류의 시작과 이동

 

인류 최초의 진화는 디아스포라에서 시작합니다. 수백만 년 전, 동아프리카 대지구대는 급격한 기후변화를 겪습니다.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 중 일부가 밀림을 떠나 초원에 정착하죠. 그냥 밀림에 머물러 있던 무리는 현생 침팬지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조상은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장소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어떤 기회와 위험이 기다리는지 모르는 곳으로 용감하게 떠난 것입니다. 


긴 진화사 동안 인류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세계 각지로 빠져나갑니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시아와 유럽으로 떠나 북경 원인이나 자바 원인 등의 조상이 됩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으로,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도 최소 두 차례에 걸쳐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이주합니다. 마지막 이주 때는 드디어 호주와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합니다. 


인류가 끊임없이 이주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일부 학자는 그저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변으로 부족이 확장되어 점점 이동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맘먹고 멀리 떠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죠. 하지만 설득력이 조금 부족합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인구가 크게 증가한 일이 없고, 점진적인 이동으로 보기에는 이주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예를 들어 베링기아 대륙을 거쳐 북미에 도착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최초 조상은 고작 70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칠레 남단까지 진출하는데는 불과 천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확대하기미토콘드리아 DNA로 추정한 인류의 이동경로. 인류는 다른 대형유인원과 달리 끊임없이 새로운 생태적 적소를 찾아 나갔다. 이는 기본적인 인간적 본성이다. - 위키미디어 제공
미토콘드리아 DNA로 추정한 인류의 이동경로. 인류는 다른 대형유인원과 달리 끊임없이 새로운 생태적 적소를 찾아 나갔다. 이는 기본적인 인간적 본성이다. - 위키미디어 제공

 

 

호모 쿠아에렌스

 

생화학자 찰스 파스테르나크에 의하면, 인간성의 본질은 바로 모험과 탐구 본능입니다. 이름이 낯익죠? 네. 닥터 지바고를 쓴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리스 파르테르나크의 조카입니다. 그는 퀘스트(Quest)라는 책에서, 인류의 끊임없는 확장과 문명, 기술, 종교, 과학 등 위대한 성취가 바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본성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호주는 신생대 이후에 한번도 다른 대륙과 연결된 적이 없습니다. 망망대해를 지나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아보리진이 호주에 도착한 때는 무려 5만년 전입니다. 아마 낡은 뗏목을 타고 갔을 것입니다. 모험과 탐구의 본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물론 대부분의 디아스포라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벌어집니다. 고향에서 편안히 살 수 있었다면 추운 만주와 연해주로 목숨을 건 이주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리 모험심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가족을 모두 데리고 위험천만한 도박을 할 리 없죠. 살던 곳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떠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고향을 버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과감하게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사람은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곳을 찾아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고 하는 열린 태도죠. 


일부에서는 이런 성향의 차이가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의 변이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11번 염색체 단완에 위치한 DRD4 유전자 다형성(DRD4 7-repeat polymorphism)이 이러한 성향을 유발한다는 것이죠. 물론 인간의 기질과 본성은 아주 다양한 요인에 의해 좌우되므로, 어느 유전자 하나가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긴 스펙트럼 위에 위치한 본성적인 탐구심, 새로운 곳을 동경하는 사회적 문화, 기존 거주지의 환경 변화에 따른 생태적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저명한 생의학자 찰스 파스테르나크는 인간성의 본질이 바로 퀘스트, 즉 새로운 곳을 찾아 탐색해가는 성향이라고 하였다. - wiley 제공
저명한 생의학자 찰스 파스테르나크는 인간성의 본질이 바로 퀘스트, 즉 새로운 곳을 찾아 탐색해가는 성향이라고 하였다. - wiley 제공

 

 

인류와 난민

 

아무리 큰 재난이나 지진이 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죄다 이주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무리 심각한 사태가 일어나도, 낯선 곳으로 이주를 결심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바로 새로운 땅을 찾아 만주와 연해주로 떠나고, 아메리카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떠난 우리의 조부모, 부모 세대입니다. 아마 이주를 결심하는 사람 중에는 이러한 진취적 모험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보다 많을지도 모릅니다. 


낯선 문화와 정서, 종교를 가진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왠지 꺼려집니다. 인간은 외집단 배척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선호하고 다른 사람은 가급적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험을 추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쿠아에렌스적 본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보다 활력으로 가득한 사회가 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아메리카 개척기에 미국으로 떠난 유럽인 중 부유하게 잘 살던 상류 계층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대부분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회 최하류층이거나 종교로 인해 차별받는 신교도였습니다. 지금의 미국을 만든 이들은 바로 어렵고 차별받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나선 혁신가, 그리고 그들의 자손이었습니다. 


난민 문제를 보는 여러 시각이 있습니다. 인류애적 차원의 이상주의적 시각부터, 잠재적 폭탄테러범으로 간주하는 시각까지 다양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난민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사회적 준비가 부족합니다.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빗장을 걸고, 대충 덮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이 점점 살기 좋은 나라가 되면, 우리와 같이 살고 싶은 사람도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다양한 논의와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난민은 우리 사회의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지만, 또한 강력한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높은 벽일까요? 아니면 넓은 길일까요?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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