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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게으른 천재라는 착각

2018년 05월 27일 13:00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부지런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은 사람과, 항상 게으르지만 결과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여러분은 어떤 쪽을 선택하고 싶은가요? 물론 두번째 부류일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신통치 않은 쪽이라면, 정말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게으른 천재를 동경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이미지 확대하기우리는 게으른 천재를 동경한다 - GIB 제공
우리는 게으른 천재를 동경한다 - GIB 제공

 

‘노오력’ 사회

 

노력을 풍자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모든 부정적 결과에 대해 노력 부족을 탓하는 풍토를 비꼬는 말이죠. ‘만물노력설’이라고도 합니다. 사회나 제도의 개선보다,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세태를 재치있게 반박하는 것이죠. 고속 성장의 시대가 끝나면서 사회적 성공은 점점 얻기 어려운 귀중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팍팍한 현실에 대한 젊은 세대의 좌절감이 느껴집니다.


노력무용론의 논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어차피 승자의 수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모두 다같이 노력하면 결국 원점에 머무를 뿐입니다. 내가 천만 원을 벌었다고 해도, 다른 모든 사람도 같이 천만 원을 벌었다면 상황은 동일합니다. 좀 유치하지만 간단한 수학적 논리입니다. 게다가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쉽게 성공합니다. 경쟁의 과정마저 공정하지 않습니다. 타고난 외모나 좋은 인맥을 통해 지름길로 가로질러 가는 이도 있죠. 그러니 이래저래 가진 것 없는 자신은, 노력을 해봐야 들러리가 될 뿐이라는 자조적인 절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꽤 공감 가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으른 일상을 두고,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과 사회적 불공정을 거부하는 정치적 의사 표현’이자,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실천적 행동’이라고 옹호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명 세상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세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나태한 삶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존 윌리엄 고다드. <여름날의 나태함: 백일몽>, 1909년 작. 겉으로는 건강한 게으름과 병적 게으름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그 결과는 아주 다르다. - 위키미디어 제공
존 윌리엄 고다드. <여름날의 나태함: 백일몽>, 1909년 작. 겉으로는 건강한 게으름과 병적 게으름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그 결과는 아주 다르다. - 위키미디어 제공

 

게으름의 진화

 

게으름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형질입니다. '농땡이'를 치고 노는 것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미국 하버드대의 진화학자 대니얼 리버만 교수는,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게으름을 피우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인류의 선조는 아주 척박한 환경에 살았는데, 에너지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도 유용한 형질이었다는 것이죠.


개미는 대표적인 근면의 상징이죠. 하지만 놀랍게도 개미 사회 구성원의 20~30%는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 개미입니다. 하세가와 에이스케 일본 홋카이도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게으른 개미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힘을 비축해 두는 것이라고 합니다. 집단적인 차원에서 일개미는 모두 자매나 마찬가지죠. 그러니 일부 개체들은 에너지를 비축하며,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열심히 ‘빈둥거리는’ 것입니다. 적절한 휴식이 없으면 필요할 때 에너지를 모아줍니다. 베짱이가 이 사실을 알면 꽤 억울해 하겠습니다만.


실제로 수렵채집사회를 이루고 사는 원시 부족민은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인류의 선조들이 일주일에 8시간만 일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만, 분명 그들의 일상을 보면 그다지 근면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문명인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한 시간을 빈둥거리며 지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신체적인 운동량은 예상 외로 적습니다. 불필요하게 무리하지 않습니다. 포식자를 피하거나 사냥 혹은 채집을 나설 때면 전력을 기울이지만,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는 그저 낮잠을 자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하죠.


빈둥대는 게으른 수렵채집인. 그러나 내막을 알고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사실 아주 바쁩니다. 주변과 중요한 정보를 나누고, 사회적 친분을 쌓으며,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중입니다. 노닥거리는 시간은, 사실 집중적인 활동을 위한 준비과정이죠. 게다가 수렵채집사회는 높은 수준의 평등 사회입니다.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과도하게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먹고 살 자원을 획득하는데 주력하기 때문에, 척박한 환경에서도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 모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수렵채집사회는 절대 노동시간이 길지 않다. 그러나 무의미하게 빈둥거린다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노닥거리는 것 같은 그들의 시간은 사실 다양한 비공식적 활동과 내적 준비 과정으로 가득 차있다. - maxpixel 제공
수렵채집사회는 절대 노동시간이 길지 않다. 그러나 무의미하게 빈둥거린다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노닥거리는 것 같은 그들의 시간은 사실 다양한 비공식적 활동과 내적 준비 과정으로 가득 차있다. - maxpixel 제공

 

병적 게으름, 건강한 게으름 

 

하지만 게으름이 적응적 가치가 있다고 해서, 나태한 삶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전 인구의 30%가 일생에 한번을 앓고 지나가는 우울장애. 대표적 증상은 바로 무기력입니다. 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면, 슬프고 울적한 기분을 떠올리죠. 하지만 핵심 증상은 바로 기력 감소입니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에너지가 감소한 나머지, 심신이 푹 다운되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병적 게으름은 도저히 적응적인 형질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식욕도 떨어지고, 체중도 감소합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고, 잠도 잘 이루지 못합니다. 증상이 심해지면 일상적인 활동도 못하고, 일부는 자살 생각을 하기도 하죠. 멜랑콜리아라고 하는 정서적 슬픔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건강한’ 게으름은 다릅니다. 몸은 한가해보이지만, 머리는 팽팽 돌아갑니다. 폭발적인 창조적 순간을 위한 연습 과정입니다. 당연히 식욕이 떨어지거나 체중이 감소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람을 잘 안 만나는 경우는 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서 일부러 피하는 것입니다. 게으른 천재라는 대중적 환상이 생겨난 이유죠.


매일매일 놀기만 하다가 하룻밤에 멋진 교향곡이나 문학작품을 써내려 간 위인의 이야기를 알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빈둥거리다가, 느닷없이 천재성을 발휘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창조적 능력을 보인 사람의 상당수는 혼자만의 시간을 깊은 내적 성찰과 고민, 지적 훈련에 투자합니다. 누구보다도 부지런합니다. 게을러 보이는 천재는 있겠습니다만, 정말 게으른 천재는 없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위대한 천재의 삶은 종종 빈둥거림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사실 엄청난 창조의 시간을 위한 내적 준비로 바쁜 것인지도 모른다. - flickr 제공
위대한 천재의 삶은 종종 빈둥거림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사실 엄청난 창조의 시간을 위한 내적 준비로 바쁜 것인지도 모른다. - flickr 제공

 

당신이 게으르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나태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SNS를 보면 다들 분주하게 미래를 향하여 달려나가는 것 같은데, 자신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 같아 한심하다는 자책이죠.


그러나 건강한 게으름과 병적인 게으름은 분명 다릅니다. 만약 세상 혹은 자신에 대한 혐오에 빠져, 골방에서 컴퓨터 게임이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면 건강한 삶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편협한 자신만의 감옥에 영영 갇혀버리게 되죠.


하지만 자신만의 걸작을 위해서 큰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은 별로 이루고 있는 것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큰 집을 지으려면 땅을 오랫동안 다져야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적 계획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걸어나가기 바랍니다. 괜히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하다 보면, 뭔가 하고 있다는 성취감은 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삶은 그냥 게으른 것만도 못합니다. 언뜻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몹시 나태한 삶입니다.


세상에는 부지런한 척하는 게으른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들은 새벽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도서관이나 일터로 향합니다. 하루 종일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일합니다. 밤샘 공부나 야근도 자청합니다. 그렇게 하루의 일정을 빈틈없이 꽉 채우지만, 정작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원하던 길인지, 옳은 길인지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너무 바빠서 고민할 시간도 없습니다. 분주한 게으름뱅이입니다.

 

 

에필로그

 

빠삐용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무려 9번에 걸쳐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그의 삶 대부분은 감옥에서 썩습니다. 그는 어느 날 꿈에서 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는지 묻는 그에게, 신은 대답합니다. “너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것은 바로 인생을 낭비한 죄.” 어떤 의미에서는 삐삐용의 삶은, 분주한 일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우리의 게으른 삶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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