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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오늘도 식욕 앞에서 무릎 꿇었다면...

2018년 05월 20일 11:00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갖는 것은 모든 현대인의 바람입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침에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저녁에는 어느새 치킨과 맥주를 즐기고 있습니다. 달콤한 딸기 케익까지 해치워 버리고는 이내 후회를 다락같이 합니다.

 

의지력에는 자신이 있다는 사람들도 식욕에는 어김없이 무릎을 꿇고 맙니다. 원래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라고 변명해도 될까요? 그런데 최근 들어 식욕과의 싸움에서 무참히 패배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식욕 앞에서 나약한 인간.... - GIB 제공
식욕 앞에서 나약한 인간....  GIB 제공

 

탐식의 죄

 

기독교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죄가 있습니다. 교만, 질투, 분노, 탐욕, 나태, 정욕, 그리고 탐식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고, 탐식이 왜 죄라는 것인지 의아합니다. 너무 먹는 것이 건강에 안 좋을 수는 있지만, 도대체 ‘죄악’이라고까지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교부철학자들은 일곱 가지 죄악 중에서 가장 저급하고 강력한 죄악이 바로 탐식(gula)라고 생각했습니다. 탐식은 육체의 죄를 낳는 씨앗이라는 것이죠. 모든 욕망 중에서 음식에 대한 욕망이 가장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명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질병은 다름 아닌 비만입니다. 미국인 중 비만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30%가 넘습니다. 과체중 상태를 포함하면 거의 절반 이상입니다. 잘 알다시피 비만은 고혈압, 당뇨병, 심장 질환, 관절염, 암 등 다양한 질병을 유발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나는 사망 5건 중 한 건은 비만과 관련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영양 부족으로 죽는 사람보다 영양 과다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미국에서만 매년 1500억 달러가 비만과 관련된 의료비로 지출됩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문명 사회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만 매년 5만명 이상이 아사하는데, 이들의 진단명은 ‘거식증’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식사는 가장 행복한 경험 중에 하나다. 그런데 현대인의 상당수는 이러한 식사로 인해서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식사는 가장 행복한 경험 중에 하나다. 그런데 현대인의 상당수는 이러한 식사로 인해서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식욕의 진화

 

인류가 지금처럼 풍족한 환경에서 살게 된 것은 불과 백 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늘 굶주림과 싸웠습니다. 야생 환경에서는 식량을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조상들은 주로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구했는데, 둘다 녹록한 일이 아니었죠. 사냥의 성공률은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주로 식물의 열매나 뿌리를 채취했는데, 열매는 일년 사시사철 나는 것이 아닙니다. 뿌리 식물은 땅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죠. 

 

늘 굶주림에 시달리던 인류의 몸과 마음은 다음과 같이 진화했습니다. 

 

첫째 우리의 마음은 달고 기름진 것을 좋아하도록 적응했습니다. 야생의 환경에서는 이런 음식을 얻기 어렵습니다. 열매나 꿀, 그리고 다른 동물의 고기 등인데, 모두 양질의 에너지 원입니다. 인간은 육즙이 흐르는 고기와 달콤한 열매를 좋아합니다. 과거 조상들이 생각하는 파라다이스는 바로 이런 음식이 넘쳐나는 곳이었죠. 

 

둘째 우리의 몸은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적응했습니다. 이를 절약 유전자 가설이라고 합니다. 섭취한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잉여 에너지가 들어오면, 차곡차곡 지방으로 바꾸어 저장합니다. 내일은 굶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아주 연비가 우수한 자동차입니다. 

 

더불어 문화적 적응도 한 몫 했습니다. 음식을 굽고, 삶고, 튀기고, 볶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하면서 에너지의 흡수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불을 사용하여 요리를 하며, 인류가 크게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요리 가설이죠. 

 

이미지 확대하기인간은 음식을 요리해 먹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류의 진화가 요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을 이른바 요리 가설이라고 한다. - GIB 제공
인간은 음식을 요리해 먹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류의 진화가 요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을 이른바 요리 가설이라고 한다. - GIB 제공

 

눈 먼 식욕

 

그런데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예상치 못한 두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첫째 먹을 것이 풍부해지면서 과도하게 축적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게놈 지연 가설에 의하면, 현대인의 질병 상당수는 과거의 환경에 적응한 몸이 현대 문명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일어납니다. 아프리카나 남미 등에는 아직도 수렵채집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사성 장애를 거의 앓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만으로 인한 질병을 ‘문명의 질병’이라고 합니다. 

 

둘째 마음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교부철학자들이 탐식을 죄악의 반열에 올린 이유죠. 탐식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는데, 급하게 먹는 것, 게걸스럽게 먹는 것, 지나치게 먹는 것, 까다롭게 먹는 것, 사치스럽게 먹는 것입니다. 대부분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식이 장애의 증상입니다. 

 

식이 장애 중 식욕이 너무 떨어지는 상태를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라 합니다. 과거에는 아예 없없던 병입니다. 수십년 전부터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체중 증가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과 과도하게 까다로운 식이 조절이 특징입니다. 어떤 환자는 정말 말 그대로 ‘밥 알을 세어’ 먹습니다. 열 알 정도 먹고는 그만 먹습니다. 더 먹으라고 하면 아주 고통스러워 합니다. 이런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 세 명 중 한 명은 결국 ‘굶어’ 죽습니다. 

 

반대로 신경성 폭식증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서너 배나 되는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 치웁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양이죠. 그리고는 종종 먹은 것을 모두 토해 내기도 합니다.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마구 먹다가, 이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괴로워합니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서 폭식과 구토는 일과가 되고, 몸과 마음은 점점 망가집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식이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의 뒷모습. 식이장애는 불과 백년 전만 해도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질병이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식이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의 뒷모습. 식이장애는 불과 백년 전만 해도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질병이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식욕이 지배하는 문화

 

식이 장애 정도로 심한 경우가 아니라 해도 최근의 대중 문화는 ‘식욕’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요리 대결을 펼치거나 맛집을 알려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수십 개나 있지만, 좀처럼 인기가 식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먹는 모습을 찍어 돈을 받고 팔기도 합니다. 먹방입니다. SNS는 온통 먹음직하고 값비싼 음식 사진의 경연장입니다. 누가누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음식 포르노의 시대라는 한탄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뇌 안의 쾌락 중추는 다양한 자극을 구분하지 않고 활성화됩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오랜 준비 끝에 시험에 합격할 때 느끼는 ‘의미있는’ 쾌락과 딸기 케익을 먹을 때 느끼는 ‘값싼’ 쾌락은 동일합니다. 최소한 쾌락 중추에서는 말이죠. 그래서 직접 먹지 않고도, 먹방이나 쿡방을 보면 어느 정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짜 행복입니다. 물론 곧 허기가 찾아오고, 다시 채워야 합니다. 먹방과 쿡방이 중독성을 가진 이유죠. 

 

사회적 성취나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행복과 슬픔도 본질적으로는 동일합니다. 쾌락과 좌절, 포만감과 허기는 점점 경사가 가파른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립니다. 이러한 내적 불안정성이 식욕에 관해서는 쿡방, 먹방 열풍과 다이어트 열풍이라는 모순된 문화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지도 모릅니다. 극단적 쾌락을 향하는 천박한 문화적 풍토는 음식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식욕에 지배되지 않는 방법

 

음식에 대한 집착의 상당수는 보상성 행동입니다. 스트레스 받아서 먹고, 짜증나서 먹고, 슬퍼서 먹고, 심심해서 먹습니다. 만족스럽지 않은 약간의 심리적 허기를 못 견디기 때문에 끊임없이 먹는 것입니다. 심리적 공허함을 먹는 것으로 해결해서는 곤란합니다. 먹는 것 외에 다른 건강한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만남을 통한 기쁨이나 목표의 성취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족을 기다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장 먹으면 행복한데, 오랫동안 노력해야 얻는 행복이 눈에 차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가치있는 것은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만족의 지연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가급적이면 직접 음식을 해먹으면서 조금은 지루한 준비의 과정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먹방과 쿡방도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맛있는 것을 보고, 이를 먹으면서 숨이 넘어가도록 과장된 행복감을 연출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집니다. 연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소위 대가가 만들었다는 최상의 음식에 대한 대중 연예인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쉽게 넘어갑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그 멋진 음식은 사실 여러분의 상상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중용에 이르기를 ‘사람이 마시고 먹고 하지 않는 이가 없지만, 능히 맛을 아는 이는 드물다. 도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인데 사람이 스스로 살피지 못하니, 과함과 부족함의 폐가 있다(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 道不可離 人自不察 是以 有過不及之弊)’라고 했습니다. 식욕에 지배당하는 현대인이라면, 다시 한번 음미해 볼 말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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