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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의 곤충記] 우아한 나비의 독점적 번식욕

2018년 05월 16일 17:06

※편집자주. 곤충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 왔고, 지금도 우리보다 더 많은 수가 지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후에도 곤충은 여전히 지구를 지키겠지요. 하지만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과 마음에서 곤충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곤충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신비에서도 멀어졌지요. 
그래서 우리 곁 곤충들의 한살이와 생태를 담은 글과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 주는 작은 알림이 됐으면 합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고 꽃 잔치가 막바지다. 잎눈을 뒤집고 막 나온 새순의 보드라운 연녹색이 꽃보다 더 예쁜 봄의 끝.

 

이미지 확대하기애호랑나비 애벌레(좌), 솔나방애벌레 머리(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애호랑나비 애벌레(좌), 솔나방애벌레 머리(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보름 전 족두리풀에 낳았던 영롱한 진주 모양의 알에서 애호랑나비 애벌레가 깨어났다. 그렇게 예쁜 알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고 온 몸이 털투성이여서 송충(松蟲)이를 연상시킨다. 이 시커먼 애벌레가 다시 아름다운 나비로 환생하니 반전에 또 반전이다. 

 

이미지 확대하기송충이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송충이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애호랑나비가 자취를 감추자 모시적삼처럼 시원해보이고 속살이 훤히 비치는 날개를 단 아름다운 모시나비가 나타난다. 바쁠 것 없다는 듯 풀밭을 너울너울 나르는 모시나비가 여유롭다. 

 

붉은점모시나비도 벚나무모시나방도, 모시라는 이름이 들어간 곤충은 다 우아하다. 마음 바쁜 모시나비 수컷은 먹이는 관심 없이 화려한 붉은 엉겅퀴 꽃에서 허겁지겁 꿀을 빠는 암컷 배를 꽉 잡고 짝짓기를 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하기모시나비 짝짓기(좌), 벚나무모시나방(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모시나비 짝짓기(좌), 벚나무모시나방(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애호랑나비와 모시나비는 공통점이 많다. 호랑나비과에 속하며 배에 털이 많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공통점은 짝짓기 한 암컷 배 끝에 길쭉하고 칼 같은 모양의 덩어리가 있다는 점이다.

 

사는 동안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무게처럼 지고 사는 이 덩어리는 그리스어로 'Sphragis', 즉 봉인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로, 짝짓기 후 다른 수컷과 짝짓기 할 수 없도록 만든 물리적 장벽이며 암컷이 이미 교미(交尾)를 했다는 시각적 신호이다.  흔히 수태낭(受胎囊)으로 지칭되지만 수태(受胎)는 수정과 같은 의미로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상태를 말하므로 ‘수태낭’이 아니라 ‘짝짓기 후 만들어진 봉인’이다.

 

이미지 확대하기붉은 원이 애호랑나비의 짝짓기주머니(Sphragis)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붉은 원이 애호랑나비의 짝짓기주머니(Sphragis)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짝짓기 주머니(Sphragis)는 1912년 곤충학자인 엘팅험(Eltringham)이 '짝짓기 후 왁스 모양의 봉인(Wax-like seal after pairing)'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한 단어로 수컷이 짝짓기 후 암컷 7~8배마디의 교미관(交尾管) 구멍을 막는 외부 덩어리를 이른다. 덩어리의 재료는 수컷 부속샘에서 만들어지며 성분은 지질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짝짓기 중 수컷은 암컷에게 정자를 포장한 정포와 최소한의 보상인 영양분을 전달하며, 암컷은 난자 형성이나 신체 활동 유지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지 확대하기모시나비(좌), 붉은점모시나비(우) Sphragis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모시나비(좌), 붉은점모시나비(우) Sphragis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진화한 나비목 곤충(약 98%)의 암컷 대부분은 2개의 문을 갖고 있다. 하나는 짝짓기를 위한 문, 또 하나는 알을 낳기 위한 문 그래서 이문아목(Ditrysia, 二門亞目)이라 부른다. 짝짓기 후 교미관을 막은 것이 바로 ‘짝짓기주머니’다.

 

이에 반해 크기가 아주 작은 꼬마굴나방과 같은 원시형 나방 무리는 1개의 생식구만을 가진 단문아목(Monotrysia, 單門亞目)으로 만약에 이런 종류의 물질로 구멍을 막아버리면 알도 낳을 수 없게 되므로 알아서 만들지 않는다.

 

이미지 확대하기이문아목(위), 단문아목(아래) - www.writeopinions.com/ditrysia
이문아목(위), 단문아목(아래) - www.writeopinions.com/ditrysia

‘짝짓기주머니’를 만드는 곤충이 한반도에는 호랑나비과의 모시나비, 붉은점모시나비, 애호랑나비 3종이 알려져 있지만, 발정 난 수컷 간의 치열한 번식 경쟁으로 영역을 지킬 수 없는 열대우림 지역은 장난이 아니다.

 

통속적으로 나비로 분류되는 호랑나비상과(Papilionoidea)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종류가 232종으로 호랑나비과의 호랑나비아과, 모시나비아과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는 전혀 기록이 없는 네발나비과의 왕나비아과, 표범나비아과, 오색나비아과, 뱀눈나비아과에서 발견되었다(Ana et al., 2017).

 

원초적으로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으려 방어 물질을 만드는 방법과 유전자원을 풍부히 하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짝짓기를 하려는 행동 중 번식에 유리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진화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미지 확대하기애호랑나비 Sphragis와 산란구(위), 붉은점모시나비 Sphragis와 산란구(아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애호랑나비 Sphragis와 산란구(위), 붉은점모시나비 Sphragis와 산란구(아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짝짓기주머니(Sphragis)는 놀라운 자연 현상으로 다른 수컷이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아예 차단한, 자기 자식만을 번식시키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특수 장비라 할 수 있지만 내 씨만 전달하려는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곤충을 따라다니다 보면 진화의 긴 시간을 뒤돌아보게 된다.

 

 

참고문헌
-Matsumoto, K., Orr, A. G., & Yago, M. (2018). The occurrence and function of the sphragis in the zerynthiine genera Zerynthia, Allancastria and Bhutanitis (Lepidoptera: Papilionoidea: Papilionidae). Journal of Natural History, 52(21-22); 1351-1376.

-Ana et al., (2017). A review of the occurrence and diversity of the sphragis in butterflies (Lepidoptera, Papilionoidea). ZooKeys, 694: 41-70.

-Mega, N. O., & De Araújo, A. M. (2010). Analysis of the mating behavior and some possible causes of male copulatory success in Dryas iulia alcionea (Lepidoptera, Nymphalidae, Heliconiinae). Journal of ethology, 28(1); 123.

-Orr AG and Rutowski RL. (1991). The function of the sphragis in Cressida cressida (Fab.) (Lepidoptera: Papilionidae): a visual deterrent to copulation attempts. Journal of Natural History, 25; 703–710.

-http://www.writeopinions.com/ditrysia

 

 

 

※ 필자소개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국립인천대학교 매개곤충 융 복합 센터 학술연구 교수. 과학 동아 Knowledge 칼럼 ‘애벌레의 비밀’을 연재했다. 2015년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Ⅰ 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 Ⅰ’(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2016년 캐터필러 Ι, 2017년 캐터필러Ⅱ(도서출판홀로세)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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