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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는 왜 속삭였을까...ASMR 효과, 직접 실험해 보니

2018년 05월 06일 17:08

처음엔 방송 사고인 줄 알았다. 진통제 광고인데, 가수 아이유가 시종일관 작게 속삭이기만 하는 게 아닌가. 찾아보니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 쾌락반응)’을 유도하는 광고라고 한다. ‘사각사각’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의 자극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광고, 영화, 유튜브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큰 인기라고. 이렇게 유명한데 국내에 그 효과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논문은 없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직접 실험해보기로 했다.

 

이미지 확대하기경동제약 유투브 계정 캡쳐
경동제약 유투브 계정 캡쳐

“아프지 마세요. 호~”


광고 속 아이유가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입김을 불었다. 햇빛이 가득 들어와 따스한 느낌이 나는 거실, 보송보송한 러그 위에 앉은 그녀가 한 손을 입 가까이 대고 속삭이자 영상을 지켜보던 신용수 과학동아 기자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번졌다.

 

1분짜리 영상이 끝나고, 흥분 정도를 1~9점으로 평가하는 자가테스트에서 신 기자는 고민 없이 가장 편안한 상태인 ‘1점’을 선택했다. 그는 “굉장히 작은 소리인데도 귀에 더 잘 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이) 굉장히 많이 편안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미지 확대하기ASMR을 시청하며 뇌파 변화를 측정하고 있는 신용수 과학동아 기자
ASMR을 시청하며 뇌파 변화를 측정하고 있는 신용수 과학동아 기자

 

 

뇌 64개 지점에서 뇌파 측정


실험은 촉촉한 봄비가 내리던 식목일 오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연구단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연구팀은 피실험자인 신 기자를 사방이 차단된 실험 부스에 앉힌 뒤, 알록달록한 수영모를 연상시키는 뇌파(뇌전도·EEG) 측정 장치를 머리에 씌웠다. 뇌의 64개 부위에서 신경세포들의 전기적인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였다.

 

연구팀은 두피와 전극이 닿는 64개 지점에 전도성 재료인 식염수 겔을 주입했다. 그러자 신 기자의 뇌파가 부스 밖 컴퓨터로 전송되기 시작했다. 파형에 문제가 없음을 점검한 연구팀은 신 기자에게 헤드셋을 씌우고 모니터에 ASMR 광고 영상을 띄웠다.

 

실험의 목적은 ASMR 영상에 의한 뇌파 특성 변화를 보는 것. 신 기자의 경우는 미니 테스트였지만, 본 실험은 50분 동안 진행한다. 처음 5초 동안에는 실험 과제를 간단히 소개하고 이후 1분가량 자극 영상을 보여준다.

 

이때 자극 영상은 3가지 영상 중 하나가 랜덤으로 재생된다. 한 가지는 대조군 영상으로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같은 흥미 유발 영상 10개가 준비됐다. 다른 한 가지는 일반적인 ASMR 영상으로 ‘사각사각’ 종이에 글씨 쓰는 소리, ‘똑똑’ 처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등 10개 영상이 쓰였다. 마지막은 ASMR을 ‘의도한’ 광고 영상이었다. ‘후루룩’ 먹는 소리를 강조한 라면 광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극대화한 진통제 광고 등 5가지 영상이 사용됐다.

 

영상이 끝나면 피실험자의 감정(흥분 정도와 긍정적인 정도)을 스스로 평가하는 자가테스트 영상이 나온다. 그리고 1분 정도 화면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다가, 다음 자극 영상이 랜덤하게 재생된다. 이렇게 총 10번의 자극을 반복하고 휴식 시간을 가진 뒤 10번의 자극을 또 반복한다. 한두 차례 테스트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래현 KIST 바이오닉스연구단 책임연구원팀은 이 실험을 20대 남녀 6명(남자 3명, 여자 3명)에게 실시했다.

 

광고 ASMR 보더니 델타파 급증


“ASMR 영상을 감상할 때 델타파가 증가했습니다. 특히 전두엽 부분과 후두엽 부분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김 책임연구원은 ASMR 영상에 의한 뇌파 특성 변화를 이 같이 설명했다. 연구팀은 뇌의 64개 지점에서 마이크로볼트(μV) 수준으로 측정되는 약한 뇌파 신호를 증폭한 뒤, 신호처리를 통해 주파수별 뇌파의 세기를 분석해 ASMR을 볼 때와 보지 않을 때의 차이를 비교했다. 그 결과 우리 뇌의 기분 통제에 관여하는 전두엽과 시각 신호 처리와 관련된 후두엽 피질에서 1~4헤르츠(Hz) 대역의 델타파가 유의미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델타파는 깊은 잠이나 명상에 빠졌을 때 나오는 뇌파다. 보통 정신이 멍하거나 잠이 올 때는 세타파(4~7Hz)가, 휴식을 취할 때는 알파파(8~13Hz)가 나온다. 또 집중이 잘 되면서 머리가 맑을 때는 낮은 베타파(14~20Hz)가, 작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한 상태에서는 높은 베타파(21~30Hz)가 나온다. 따라서 ASMR 영상을 볼 때 델타파가 급증하는 현상은, 깊은 잠에 빠졌을 때 편안한 것처럼 뇌가 느낀다는 뜻이다.

 

재밌게도 델타파는 일반 ASMR 영상을 볼 때보다 광고 ASMR을 볼 때 훨씬 더 많이 나왔다. 김 책임연구원은 “광고 ASMR은 개인적인 체험을 유도한다”며 “이것이 공감각을 더 생생하게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령 종이에 글씨 쓰는 영상을 볼 때는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입김을 불어 주는 광고 영상을 볼 때는 귀가 간지러운 듯한 느낌까지 함께 얻을 수 있다.

 

김 책임연구원은 “ASMR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평소 라면을 좋아하고 자주 먹는 사람들이 라면을 광고하는 ASMR에 더 강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험자 수가 적어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아이유 광고’도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큰 호응을 얻었다.

 

한편 ASMR이 전두엽, 후두엽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스티븐 스미스 캐나다 위니펙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평소 ASMR을 느끼는 사람 11명과 그렇지 않은 사람 11명을 대상으로, ASMR을 볼 때 뇌에서 DMN(Default Mode Network·내정상태회로) 부위의 활성도 차이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분석했다. DMN은 멍하게 있을 때에도 활동하는 뇌 부위로 피로를 느끼는 것과 관련이 깊다. 분석 결과, ASMR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DMN의 활성도가 대조군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았고, 전두엽과 측두엽, 후두엽의 활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doi : 10.1080/17470919.2016.1188851)

 

 

수면 유도, 심신 안정… 의학적 기전은 안 밝혀져


뇌파의 변화는 본인이 자각할 수 있다. KIST 연구팀은 ASMR 영상을 볼 때 뇌파 변화가 본인이 평가하는 감정 변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했다. 감정 변화는 영상을 보고난 뒤 흥분하는 정도를 스스로 1~9점으로 평가하게 했고, 이것을 알파파와 베타파의 비율과 비교했다. 알파파 대분석 결과 개인차가 있지만 대체로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대조군인 흥미 유발 영상을 보고난 뒤에는 전두엽 부분의 알파파 대비 베타파가 컸고 본인도 각성한 상태로 평가한 반면, ASMR을 보고 난 뒤에는 이 부분의 알파파 대비 베타파 비율이 줄어들었다. 본인도 흥분 상태가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이미지 확대하기‘쪼로록’ 차를 따르는 모습과 소리는 여러 가지 감정과 신체 변화를 유도한다. 그러나 의학적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과학동아 제공, 사진 GIB
‘쪼로록’ 차를 따르는 모습과 소리는 여러 가지 감정과 신체 변화를 유도한다. 그러나 의학적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과학동아 제공, 사진 GIB

 

김 책임연구원은 이 같은 분석을 통해 ASMR 콘텐츠의 효과를 평가하고 검증하는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ASMR 콘텐츠가 워낙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ASMR’을 검색하면 최근 한 달간 게시된 콘텐츠만 180만여 개다.

 

ASMR의 정의가 구체적이지 않다보니 그중에는 ‘백색소음’에 더 가까운 것들도 있다. 집 안에서 쓰는 가전제품의 소리, 교실에서 듣던 칠판 소리 등 익숙한 환경에서 오는 소리들은 편안함을 주지만 ASMR로 분류해야할지는 애매모호하다. 또 성적인 자극을 유도하는 콘텐츠도 최근에는 ASMR 이름을 들고 나온다.

 

김 책임연구원은 “ASMR 같은 부드러운 자극이 수면을 유도하거나 심신을 안정시킨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의학적 기전은 아직 모른다”며 “추가 연구를 통해 차차 밝혀질 부분”이라고 말했다.

 

*출처: 과학동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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