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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별이 되어 떠나다] 호킹이 남긴 21세기 이론 물리

2018년 04월 12일 19:00

루게릭병을 극복한 이론물리의 석학으로, 또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잘 알려진 스티븐 호킹은 과학자이기에 앞서 ‘셀럽(celebrity)’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렇지만 물리학자로서 남긴 유산 역시 적지 않다. 특히 호킹 열복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양자 현상의 발견은, 상대론과 양자역학이라는 20세기 물리학의 양대 축을 이어주는, 그리고 동시에 이 두 가지 패러다임 사이에 이을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알게 한 20세기 후반 이론물리학의 대 사건이었다.

 

▶스티븐 호킹에 대해서 더 쉽게 알고 싶다면?  

 

이미지 확대하기스티븐 호킹이 2015년 스웨덴 왕립공대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해, 블랙홀 정보역설에 대한 생각을 강연하고 있다. - Adam af Ekenstam/KTH Royal Institute of Technology 제공
스티븐 호킹이 2015년 스웨덴 왕립공대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해, 블랙홀 정보역설에 대한 생각을 강연하고 있다. - Adam af Ekenstam/KTH Royal Institute of Technology 제공

20세기 초 출현해 우리가 사는 우주에 대한 시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상대성이론이, 17세기 뉴턴 역학과 19세기 맥스웰의 전자기학 사이의 수학적인 충돌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아는 독자들은(오른쪽 QR코드를 스캔하면 관련 내용이 담긴 강연을 볼 수 있다), 호킹 열복사로 인해 촉발된 이론물리학의 위기가 학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양자적 물리학은 미시세계에서, 그리고 고전적 물리학은 거시세계에서 잘 맞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가지의 체계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학자는 없다. 근본적으로는 양자적인 물리법칙이 근저에 있으나, 다만 같은 법칙을 따름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인 물체들은 근사적인 의미에서, 고전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대부분 학자들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고전적인 일반상대론 역시 미시적으로는 같은 양자적인 원리에 근거해야 하지 않을까.

 

 

블랙홀의 양자적 실체는 무엇인가

 

일반상대론의 예측으로 발견된 물체 중에 그 구조가 가장 단순한 물체가 블랙홀인데, 아마도 궁극적인 질문 중 하나는 ‘이 고전적인 물체의 양자적 실체가 무엇인가’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물리학자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은 대답이 가능한 새로운 질문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호킹은 당시로서는 대답이 불가능했던 위의 질문을 하는 대신, ‘블랙홀 부근에서 빛이나 전자와 같은 소립자들이 어떤 양자적인 현상을 보이는가’ 라는 비교적 ‘쉬운’ 질문을 했고, 블랙홀은 외부에서 볼 때 마치 일정한 온도로 열복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됐다. 197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특히 이는, 블랙홀이 내부의 에너지를 모두 열복사로 소비하고 소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실제 우주에서 관측되는 블랙홀들의 경우 호킹이 말하는 ‘온도’가 워낙 작은 것이라 관측을 하는 천문학자들 입장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중력이론의 양자적인 구조에 관한 한가지 심오한 문제를 시사하는데, 이는 호킹의 열복사가, 양자역학적인 계산에서 유도됐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양자역학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소멸하는 블랙홀 속 슈뢰딩거 고양이


양자역학의 비상식적인 모습을 말할 때 흔히 회자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것이 있다. 양자역학적으로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살아있는 양자 상태와 죽어있는 양자 상태가 공존하는 소위 ‘중첩’ 상태가 가능하다는, 일종의 우화다. 이 우화를 차용해 호킹이 지적한 블랙홀의 문제를 재구성해보자. 물론 우화는 우화일 뿐, 세세한 부분에 집착하지 말라는 조언을 함께 드린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양자적 중첩 상태에 있는 슈뢰딩거 고양이가 100마리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이들이 중력으로 서로 잡아당기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하나의 블랙홀이 되었다고 하자. 중력도 근원적으로는 양자역학적이라면, 이 특이한 고양이들의 양자적 정보는 블랙홀 안에 잘 보호돼 있을 것이다. 블랙홀에서 나오는 호킹 열복사가 있다는 사실을 이 우화에 걸맞게 담아내보자면, 이 블랙홀이 가끔 고양이를 한 마리씩 뱉어내는데, 그 고양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절반의 확률로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보통의 고양이 이더라는 이야기다.

 

100마리의 양자적인 슈뢰딩거 고양이들이 블랙홀로 변환돼 흡수됐는데, 한참을 지나면서 이 블랙홀이 호킹 복사에 의해 소멸되고 나니 반반의 확률로 죽었거나 살아있는, 전혀 양자역학적이지 않은 100마리 고양이들이 남아 있더라는, 알고 보면 매우 비극적인 우화다.

 

그런데 고양이들의 생사를 도외시하고, 양자 정보에만 관심을 가져보면, 100% 양자적이었던 상태가 100% 고전적인 상태로 바뀌었으니, 중간 과정에 출현한 블랙홀이 ‘양자 정보를 없애버리는 지우개인 모양이다’라는 생각에 이른다.

 

더구나 블랙홀은 중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물체이니, 한 발 더 나아가면 중력과 양자역학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생기는데, 이것이 호킹의 블랙홀 양자정보 퍼즐이다. 이에 근거해 호킹은 중력을 포함하는 순간 양자역학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1970년대 중반의 일이다.

 

 

호킹의 블랙홀 양자정보 퍼즐과 초끈이론


이 주장이 옳은가 하는 것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론가들 사이에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한쪽에는 호킹을 위시한 상대론자들이, 그리고 반대쪽에는 트후프트와 서스킨드라는 두 거목을 필두로 하는 양자론자들이 두 캠프로 나뉘어져 소위 ‘블랙홀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이미지 확대하기호킹의 열복사이론을 시각화한그림.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생성된 입자-반입자 쌍의 한 입자(또는반입자)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남은 하나는 블랙홀을 벗어날 수 있다.이 때 블랙홀은 입자-반입자 쌍을 깨는데에 너지를 소모해 질량이줄어든다. - 과학동아 4월호 제공
호킹의 열복사이론을 시각화한그림.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생성된 입자-반입자 쌍의 한 입자(또는반입자)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남은 하나는 블랙홀을 벗어날 수 있다.이 때 블랙홀은 입자-반입자 쌍을 깨는데에 너지를 소모해 질량이줄어든다. - 과학동아 4월호 제공

2004년에 호킹 본인이 인정했듯이, 그 결론은 후자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1980년대 초에 양자역학적인 중력을 구현한 초끈이론이 출현한 것과, 1990년대에 최소한 특정한 종류의 블랙홀들에 해당하는 초끈이론적인 양자상태를 구현한, 두 가지 사실에 주로 기인하다.

 

호킹의 이 퍼즐은 그러나 아직 아쉽게도, 혹은 ‘업계 종사자’인 이론물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블랙홀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한 서스킨드의 지휘 하에 쓰여지던 블랙홀의 양자적인 시나리오에 다른 제동이 걸린 것은 약 5년 전이다. 최근 타계한 초끈이론의 대가 조 폴친스키 등이 ‘불의 장막’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면서다. 당시 호킹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반응으로, 양자정보퍼즐 자체가 사실은 오해에 불과했다는, 상당히 급진적이고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4년 전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4월호 특별부록 ‘굿바이, 호킹’ 34쪽 ‘호킹은 왜 블랙홀이 없다고 했는가’ 참조).

 

이미지 확대하기양자 중력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려고 시도한다. 호킹은 양자이론이 지배하는 입자들과 장들이 고전적 시공간 배경에서 어떤 현상을 보이는지에 주목했다. - SLAC National Accelerator Lab 제공
양자 중력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려고 시도한다. 호킹은 양자이론이 지배하는 입자들과 장들이 고전적 시공간 배경에서 어떤 현상을 보이는지에 주목했다. - SLAC National Accelerator Lab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론과 양자론의 충돌은 초끈이론을 근원적인 물리법칙으로 받아들이면 해결된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관점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수학분야처럼 보이는 소위 모듈러성정리에 연결됐듯이, 호킹이 던진 화두는 실험적 검증이 요원한 초끈이론을 검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전자기학과 역학의 충돌이 상대론의 출현으로 자연스럽게 해소됐던, 그러나 후자에 대한 실험적인 증거는 많지 않았던 한 세기 전의 물리학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이렇게 구현된 양자 중력의 실제 모습이 아직은 분명하게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초끈이론 자체에 남겨진 여러 가지 근원적인 문제들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20세기에 여러 번의 변혁을 거친 이론물리학이 21세기에 와서 다시 한 번 돌파구를 찾는 데 호킹의 양자정보 퍼즐이 아직도 중요한 열쇠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킹과 그의 블랙홀 열복사는 좋은 질문 하나가 과학자의 일생, 그리고 학계에도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경우라고 생각된다. 그런 질문을 하고 본인이 던진 화두에 빛나는 별 같은 이론물리학자들이 각자의 학문적 생명을 걸고 논쟁하는 것을 본 호킹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과학자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이미지 확대하기블랙홀 증발을 시뮬레이션한 그림. 방사선이 방출될 뿐 아니라 중심부의 질량이 소실되고 있다. - EU’s Communicate Science 제공
블랙홀 증발을 시뮬레이션한 그림. 방사선이 방출될 뿐 아니라 중심부의 질량이 소실되고 있다. - EU’s Communicate Science 제공

 

▶과학동아 기자들이 기록한 특별부록 ‘스티븐 호킹’ 

 

 

 

※ 필자소개
이필진 고등과학원 교수. 1994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컬럼비아대와 코넬대에서 연구원 생활을 거쳐 1998년부터 고등과학원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초끈의 모체라는 M이론의 존재 증명, 다양한 초대칭 솔리톤에 대한 연구, 초끈 이론을 사용한 양자색역학의 연구 등으로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필진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pil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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