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굴기’ 中, 느슨한 규제 속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임상시험 독식?

2018.04.06 10:35

전세계 13건 중 10건이 中서 진행
간단한 윤리위만 통과하면 시험 가능

국내선 유전자 치료 허용 범위 제한적
툴젠, 2020년경 첫 임상시험 예상
“국내든 해외든 유리한 곳에서 진행할 것”

 

미국 국립보건원 제공
미국 국립보건원 제공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를 이용한 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이 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만 정확하게 잘라낼 수 있는 효소로, 난치성 유전질환까지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술로 꼽힌다.

 

5일 미국국립보건원(NIH) 데이터베이스(DB) ‘클리니컬트라이얼스’(ClinicalTrials.gov)를 분석한 결과 현재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거나 진행될 예정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대한 임상시험은 총 13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10건(77%)이 중국에서 이뤄졌다. 이어 미국이 2건, 홍콩이 1건 순이었다. 

 

중국은 2016년 세계 최초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임상시험을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폐암과 자궁경부암, 백혈병, 에이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난치성 질병 치료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담긴 용액을 주입하거나 피부에 바르는 등 체내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도 세계 최초로 사람에게 시험하고 있다. 기초임상과 1상 임상시험을 거쳐 2상 임상시험을 앞둔 치료제 4개 역시 모두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중국 베이징 중국인민해방군병원은 난치성 B세포 림프종 환자 80명을 대상으로 면역항암제 ‘UCART019’를 시험 중이다. 이 물질을 체내에 주입하면 면역T세포의 DNA가 암세포를 인식해 제거할 수 있는 ‘키메라항원수용체(CAR)’를 발현하도록 교정된다. 암에 대한 면역 기능을 강화하는 CAR-T 치료제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경우다. 항저우암병원은 지난해 3월부터 중국의 제약사 안후이 케드진 바이오테크놀로지와 함께 식도암 치료제에 대한 2상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이처럼 중국이 앞서갈 수 있는 이유는 우선 미국이나 유럽, 한국과 달리 임상시험 관련 규제가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기관 자체 윤리위원회만 통과하면 자유롭게 임상시험을 할 수 있다. 기초 연구는 이보다 더 자유롭다. 2015년 황 준지우 중국 중산대 교수는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에 성공한 바 있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중국에서 실제로는 더 많은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을 것으로 보고, 사실상 생명의료계 무법지대에 가까운 중국의 행보에 우려 섞인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에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임상시험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에 따르면 유전자 치료는 유전질환, 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그 밖에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병의 치료를 위한 연구에 한해 허용된다. 다만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 치료의 효과가 다른 치료법과 비교해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치료를 위한 연구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질병의 범위가 매우 좁다. 배아(수정란)나 난자, 정자, 태아에 대해서는 연구 목적으로도 유전자 치료가 전면 금지돼 있다.

 

세계적인 유전자 교정 기술을 보유한 국내 생명공학기업 툴젠은 올해 초 3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등을 활용한 임상시험을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김석중 툴젠 연구소장은 “질병마다 환자 수요와 관련 의료기술 수준, 인프라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꼭 국내로 국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질병에 따라서는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추진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서는 정부와 국회도 유전자 치료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생명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인 경우에는 질병의 종류나 대체 치료법의 유무에 관계없이 유전자 치료에 관한 연구를 허용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기존 ‘포지티브(제한적 허용)’ 방식에서 ‘네거티브(제한적 금지)’방식으로 전환한다는 취지다.

 

한편 올해는 가장 큰 규모의 임상시험도 추진된다.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는 이달부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겸상적혈구빈혈증 환자 16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나선다. 김 소장은 “아직까지는 대부분 연구 기관을 중심으로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지만, 올해부터는 제약사들도 임상시험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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