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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화재현장에서 자기 아이부터 구한 소방관, 비난할 수 있을까?

2018년 04월 08일 13:00

뜨거운 세상입니다. 많은 이들이 무리를 지어 서로를 비난하고 욕합니다. 저들은 완전히 글러먹은 인간 말종이라며 극단적인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특히 인터넷 댓글에는 정말 철천지 원수라도 된 양 과격한 이야기가 도배되곤 합니다. 정말 용서할 수 없는 나쁜 놈이라고 비난하면서 정신적, 신체적 린치를 가하고 집단적인 따돌림도 서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위 ‘옳지 못한’ 사람은 나쁜 일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 천하의 악당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각자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단지 옳음의 기준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한 기준의 차이는 영원히 끊이지 않는 갈등을 유발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옳고 그름의 진화심리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다윈주의의 입장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말하려면 데이비드 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도덕이 사념적인 추론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덕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어떤 말을 듣거나 행동을 볼 때, 마음 속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불편한 정서’가 생겨나면서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성은 인간 보편의 정서, 열정, 느낌에서 비롯한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도덕 기준은 ‘정(情)’입니다. 사랑과 증오, 분노, 적개심, 관용, 너그러움 등의 감정에 지배됩니다. 진화적으로 선택된 형질입니다. 즉 옳고 그름과 관련된 감정은 오랜 기간 동안 개체 혹은 집단에 적응적 이득을 주었는 유리한 형질이죠. 당장의 이익뿐 아니라, 협력과 상리공생, 호혜적 이타성 등을 불러오는 심리적 모듈입니다. 


다윈주의적 도덕 이론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본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가족과 친족에 대한 돌봄
* 타인에 대한 동정
* 호혜성
* 사기에 대한 처벌


가족이나 친족을 돌보지 않거나 타인을 동정하지 않고 호혜성을 위반(빌린 돈을 갚지 않는 등)하거나 사기, 즉 거짓말이나 협잡을 꾸미면, 이를 ‘그릇된 것’으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지당한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진화적 도덕 모듈은 만능의 칼이 아닙니다. 오히려 첨예한 갈등과 격렬한 충돌을 일으키는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이미지 확대하기데이비드 흄. 그는 도덕이 감정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동정이라는 심리적 기초를 통해서 옳음과 그름의 판단이 생긴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공리주의의 밑바탕이 되었다. 다윈주의적 도덕이론과 비슷하지만, 집단 내의 다양한 도덕성에 대한 관점을 조율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 wikiimedia(cc) 제공
데이비드 흄. 그는 도덕이 감정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동정이라는 심리적 기초를 통해서 옳음과 그름의 판단이 생긴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공리주의의 밑바탕이 되었다. 다윈주의적 도덕이론과 비슷하지만, 집단 내의 다양한 도덕성에 대한 관점을 조율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 wikiimedia(cc) 제공

 

 

나의 옳음과 너의 옳음
     
한 화재 현장에 소방관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갇힌 사람 중 한 명이 자신의 아이였습니다. 소방관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공정하게 가까운 사람부터 구할까요? 아니면 자녀를 먼저 구하는 것이 옳을까요? 
     
자신의 자녀를 잘 보살피는 일은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도 옳은 일입니다. 쉽게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의료 보험에 의하면, A라는 병에는 B라는 약을 써야 합니다. C라는 약은 더 효과가 좋지만, 너무 비싸기 때문에 B만 쓰도록 한 것입니다. 다들 C를 쓰면 의료 보험 재정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B마저도 쓸 수 없게 될 수 있죠. 의사는 계약을 지키기 위해서 B를 써야 할까요? 아니면 환자를 위해서 C를 쓰는 것이 옳을까요? 
     
계약된 보험 규정을 준수하는 것은 호혜적으로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타인을 동정하는 것도 옳은 일입니다. 게다가 의료보험 규정은 일종의 강제 계약입니다. 계약을 다시 맺기도 어렵습니다. 딜레마입니다. 
     
위의 사례는 모두 실제 있었던 혹은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판단은 아주 엇갈립니다. 


누구는 소방관이 가까운 사람부터 구했어야 하며, 의사는 B라는 값싼 약을 처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적인 이익이, 사적인 이익이나 타인에 대한 동정심보다 우선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자식이나 환자를 위하는 마음을 사적 이익이라고 몰아 세울 수 있을까요? 


누구는 자기 자녀를 먼저 구하고, 효과가 좋은 C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인지상정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다들 그렇게 한다면 소방관 가족이 없거나 맘씨 좋은 의사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무척 억울하고 서운할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옳고그름의 판단이 늘 쉬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고, 타인이 그르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각자 모두 옳은 일을 주장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기준이 다를 뿐이다. - wikimedia(cc) 제공
옳고그름의 판단이 늘 쉬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고, 타인이 그르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각자 모두 옳은 일을 주장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기준이 다를 뿐이다. - wikimedia(cc) 제공


 


옳고 그름의 다양성
     
진화주의적 윤리학에 의하면, 도덕과 윤리도 적응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생태적 환경이나 생애사적 단계에 놓은 사람들은 서로 다른 도덕적 판단을 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성별과 연령에 따른 도덕적 판단의 차이 경향입니다. 남성과 여성,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이 가진 옳음과 그름의 기준은 다릅니다. 성비, 자원 수준, 불평등 정도 등 지역적인 생태적 환경도 큰 영향을 줍니다. 


조너선 하이트는 이런 입장을 반영하여, 이른바 도덕성 기반 이론이라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는 주로 다섯 가지의 가치에 따라 판단하는데,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죠. 그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돌봄과 위해: 타인을 돌보는 것이 올바르다
2. 공정과 사기: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올바르다
3. 충성과 배신: 집단에 충성하는 것이 올바르다
4. 권위와 혼란: 위계를 지키는 것이 올바르다
5. 정결과 오염: 정결한 일은 올바르다

     
소방관과 의사의 사례에 적용해 볼까요? 
     

돌봄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자녀를 먼저 구하고 허락되지 않은 비싼 약을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공정의 가치를 높게 치는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게 구출하고 자기 환자라고 비싼 약은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의 가치를 숭상하는 사람은, 소방관과 의사는 근무 규정이나 진료 지침에 적힌 대로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타고난 심리적 경향과 처해진 환경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릴 뿐입니다. 
     


무조건 옳은 가치는 없는가? 
     
이처럼 옳고 그름도 모두 상대적인 것이라면, 각자 자신이 옳다며 치고박고 싸우는 것은 숙명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정말 허무합니다. 결국 모두 자기 기준대로 하려고 하니, 영원히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진화적 게임 이론에 의하면, 무조건 옳은 가치가 있습니다. 사실 게임 이론이 등장하기 한참 전,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제시한 것을 새롭게 적용한 것입니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의하면, ‘주관적 경험과 무관한 도덕성의 보편적 기초’가 분명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욕망과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관통하는 유일한 이성적 판단 근거가 있다는 것이죠. 


“나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다른 식으로는 행동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은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동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네가 받기 원하는 대로 주어야 하고 인간은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외의 다른 도덕적 기준은 모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가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거죠. 


이를 게임 이론에서는 칸트 최적화(Kantian optimization)를 통해 수학적으로 정리했습니다. 타인의 최적 행동을 가정할 수 있다면, 다들 자신도 그렇게 행동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간주하고, 실제 그렇게 행동하면, 타인도 역시 나의 기대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예일 대학의 존 로머 교수가 제안한 주장이죠. 
     

이미지 확대하기존 로머 교수가 주장한 칸트 균형(Kantian equilibrium). 복잡한 수식으로 표현했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칸트의 말대로 행동하면, 일반적인 내쉬 균형보다 우월한 게임 이론 상의 균형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 www.wiki.hu-berlin.de
존 로머 교수가 주장한 칸트 균형(Kantian equilibrium). 복잡한 수식으로 표현했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칸트의 말대로 행동하면, 일반적인 내쉬 균형보다 우월한 게임 이론 상의 균형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 www.wiki.hu-berlin.de


     
옳음과 그름의 지혜로운 균형
     
흔히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으로 공리주의를 언급합니다.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을 가져다 주는 행동이 옳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기준은 ‘전체’의 입장에서 옳을 지 몰라도, ‘개인’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그릇된 것입니다. 어디에나 소수자들이 있습니다. 전체의 최대 이익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면, 억울하고 원통한 사람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자식을 먼저 구한 소방관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공정성을 위해서, 자식을 돌보려는 마음을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특수한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공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원칙이 항상 통용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규정을 어기고 비싼 약을 처방한 의사를 욕할 수 있을까요? 의료 보험의 재정 안정성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사람이 수단으로 취급되는 것입니다. 옳지 않습니다. 


권위를 지키는 것이 옳을 때도 있고, 공정성을 우선하는 것이 옳을 때도 있습니다. 충성이나 정결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닙니다. 가치가 충돌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는, 감정에 기반한 판단은 자제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그 결정에 의해 당하는 사람이라도 해도, 여전히 그런 결정을 내릴 것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어떤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라도, 절대 사람을 그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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