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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정신적 신분사회, 노력하면 행복할까?

2018년 04월 01일 11:00

 

신분제 사회를 좋아하는 분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면, 뭔가 가슴이 답답해져서 ‘그런 세상은 잠시도 살고 싶지 않다’고 하겠죠. 물론 ‘신분은 귀족이다!’라고 하면 생각이 좀 바뀔 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구상에는 아직도 신분 질서가 공고하게 남은 곳이 있지만, 대부분의 민주 사회에서는 출신 신분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과거 잔재일 뿐이죠.

 

그런데 이런 궁금증이 듭니다. 과연 신분제가 정말 없어진 것일까? 그렇게 수천 년 넘게 내려오던 제도가 싹 사라져버린 것일까?

 

이미지 확대하기자연의 사다리 (scala naturae). 봉건 사회는 신분제를 통해서 사람의 등급을 나누었다. 각 신분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었고, 절대불변의 가치는 아니었지만 신분이 바뀌는 일은 드물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자연의 사다리 (scala naturae). 봉건 사회는 신분제를 통해서 사람의 등급을 나누었다. 각 신분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었고, 절대불변의 가치는 아니었지만 신분이 바뀌는 일은 드물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사다리 사회

 

인류학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들입니다. 신분, 계급, 위계, 계층, 서열, 지위 등이죠. 각각의 의미는 논의의 맥락에 따라 상당히 의미가 달라집니다. 어떤 학자는 신분은 타고나는 것이고, 계급은 사회 구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급이야말로 타고난 것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생산 수단의 유무로 계급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경제적 수준이나 문화적 수준은 계층으로 차등화하기도 합니다. 영장류 사회나 뒷골목 하류 문화에서는 서열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죠. 너무 깊이 들어가면 정신 사나우므로 자세한 개념의 차이는 접어 두겠습니다.  ‘인간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사다리 구조가 있다’는 정도로 해두죠.

 

아니 ‘모든 인간은 평등’한데, 왜 이런 식으로 위아래를 나눌까요? 사실 서열을 정하는 것은 집단 생활을 하는 영장류의 본성입니다. 특히 침팬지, 고릴라는 모두 서열이 지배하는 집단을 이룹니다. 흔히 보노보 침팬지는 평등한 집단을 이룬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일반 침팬지처럼 ‘폭력’으로 서열을 정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죠.

 

현대 사회엔 ‘타고난 신분’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분명 누구나 법 앞에서 평등하죠. 하지만 이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면, 위계 질서를 인정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장부터 말단 사원까지, 장군부터 이등병까지,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위계를 나누어 각각에 맞는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서 복잡한 사회를 움직여 갑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오마바 대통령이 청소 직원과 격의 없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현대 사회는 타고난 신분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강력한 위계 질서가 지배하는 중층 사회다. 신분과 계급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것뿐이다. - 플리커 제공
오마바 대통령이 청소 직원과 격의 없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현대 사회는 타고난 신분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강력한 위계 질서가 지배하는 중층 사회다. 신분과 계급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것뿐이다. - 플리커 제공

 

 

평등 사회에 사는 계급주의자

 

현대 사회의 지위는 사회를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기능상의 분화입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간주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9급 공무원보다 ‘높긴 하지만, 동시에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공유된 믿음입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이러한 믿음은 ‘환상적 믿음’에 불과합니다. 사실 어떻게 봐도 대통령이 더 높거든요. 자동차도 더 좋고, 집무실도 더 좋고…

 

일종의 이중 사고입니다. 오늘도 역 앞에는 허름한 옷차림의 노숙자가 ‘사람 났고 돈 났지, 돈 났고 사람 났냐’라며 주사를 부립니다. 평등이라는 당위와 계급이라는 현실을 동시에 받아들여야만 하는, ‘실제로는 낮은 계급이지만, 명목상으로는 낮은 계급이 아닌’ 자의 비애가 있습니다. 거나하게 취한 취객은 높은 지위를 얻고 싶은 것일까요? 아니면 경제적 지위로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를 부정하려는 것일까요? 둘 다 일까요?

 

과거 부모님의 신분에 따라 위치가 정해지던 때는, 세상이 보다 단순했습니다. 노비로 태어난 자는 평생 그 신분을 벗기 어려웠습니다. 명문대가에서 태어난 출세한 양반이라도, 결코 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각자 주어진 상황에서 살아갈 뿐이죠. 삶의 행복은 비슷비슷한 사람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 지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말 불평등한 세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구조였죠.

 

그런데 현대 사회는 좀 복잡해졌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신분 제도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노력하지 않으면 출세하지 못합니다. 출세(出世), 즉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죠. 그래서 새벽밥을 먹고 나와 학원을 가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야근을 자청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평등할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출세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다집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외젠 들라르쿠아 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작.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로 기존의 전제 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무너진 왕권은 이내 다른 사람이 차지했다. 불과 15년 만에 프랑스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찬성표는 360만 표, 반대표는 2500표였다. - 위키백과 제공
외젠 들라르쿠아 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작.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로 기존의 전제 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무너진 왕권은 이내 다른 사람이 차지했다. 불과 15년 만에 프랑스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찬성표는 360만 표, 반대표는 2500표였다. - 위키백과 제공

 

노력하면 행복할까?

 

1학년과 2학년의 위계를 엄격하게 두는 대학 야구 클럽이 있습니다. 연배 중심의 클럽입니다. 그러면 1학년은 2학년이 되기 위해 노력할까요?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1학년이 2학년이 될 수는 없죠. 자연스럽게 1학년 회원 사이의 결속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같이 모여서 2학년 흉을 보기도 하고, 심지어 단체로 2학년을 보이콧할 수도 있죠. 정신의 에너지는 수평으로 흐르게 됩니다. 야구는 딱 즐거운 만큼만 합니다. 물론 실력은 조금씩 늘 뿐입니다.

 

그런데 옆 대학의 야구 클럽은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년은 관계없이 야구를 잘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야구만 잘하면, 2학년도 1학년에게 존댓말을 해야 합니다. 능력 중심의 클럽입니다. 1학년 사이의 동기애가 있을 리 없습니다. 언제 동기가 나보다 높은 계급에 오를 지 모르는데요. 정신적 에너지는 수직으로 향하게 됩니다. 불철주야 연습에 매진합니다. 실력이 쑥쑥 늘어납니다. 하지만 야구는 더 이상 즐겁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역설은 우리의 정신 세계의 신분제가 아직 공고하기 때문입니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게놈 지연 현상입니다. 한국 사회는 오랜 옛날부터 엄격한 반상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화기에 반상이 철폐되었지만 사실 용어와 제도를 없앤 것이지, 그 정신적 잔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이름의 위계가 금새 빈 자리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반상 철폐의 역설

 

조선의 과거 시험은 능력에 기반한 관리 등용 제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신분이 벼슬에 따라 연동되면서, 그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양반과 평민의 구분은 벼슬의 유무에 따라 정해지는데, 벼슬은 과거에 합격해야 얻을 수 있었죠. 그래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과거 시험에 몰렸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매번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응시자가 몰렸죠.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평민 출신 합격자가 약 절반에 달했고, 노비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양반이라도 대를 이어 과거 시험에 계속 불합격하면, 평민이 되었습니다. 과거 시험에 대한 사회적 집착은 일종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보통 5살부터 글공부를 시작했는데, 문과의 경우에는 평균 35세가 되어야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30년을 글공부만 한 셈입니다. 노인이 되어서야 합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죠. 과거 낭인입니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신분제도는 그 이름을 달리하여 여전히 존재합니다. 고급 공무원이나 법관, 교수, 의사, 고위 임원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계급은 ‘노력만 하면’ 얻을 수 있게 되었죠. 조선 시대는 한번 벼슬길에 오르면, 증손주까지는 양반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개인의 능력으로 귀속됩니다. 경쟁이 치열하니 ‘양반’이 되기도 어렵고, 간신히 되어도 언제 밀려날까 전전긍긍합니다. 동료애는 사라집니다. 모두가 경쟁자이기 때문입니다. 반상 철폐의 역설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작자 미상. 18세기 민화. 조선의 과거 시험은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작자 미상. 18세기 민화. 조선의 과거 시험은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근면하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과거 부모 세대의 근면함은 어떻게 해서든 더 높은 신분을 얻고 싶었던 절박함에도 일정 부분 기인합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노비 집안’이라고 욕하면 칼부림이 날 정도 였습니다. 한국인의 뿌리 깊은 ‘상놈 콤플렉스’는 근대 사회를 부흥시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노력해서 명문대만 들어가면, 사법 고시만 붙으면, 사장님만 되면 높은 신분을 얻을 수 있으니 전국민이 단체 경주라도 하듯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죠. 조선 시대 선비들은 일생 동안 과거 시험만 준비하느라 곤궁하게 살았습니다. 매 시험마다 수만, 수십만의 선비들이 몰렸으니 전국민의 평균 학식은 높아졌겠죠. 하지만 그들이 원래 학문을 즐긴 것인지, 아니면 단지 벼슬길에 오르고 싶었던 것인지는 자명합니다.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죠. 대학은 학문을 닦는 곳이 아니라, 신분을 높이기 위한 통과의례로 전락했습니다. 교수나 의사, 법관은 연구나 교육, 진료, 정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전국민 레이스에서 승리한 사람이 가지는 전리품이 되었죠.

 

 

무엇을 위한 노력인가?

 

현대인은 기회의 평등성과 과정의 공정성에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금수저, 흙수저 담론이 크게 유행합니다. 불공정한 채용 비리에는 전국민이 공분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과연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면 삶이 만족스러워질까요? 아무리 공정한 시험이라고 해도, 불합격자는 전혀 즐겁지 않습니다. 경쟁으로 점철된 상승 열망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달픕니다.

 

흔히 ‘노오오오력하면 성공한다’며 위트 있는 말로 현 시대를 비꼬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진짜 문제는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노력은 해야죠. 문제는 오히려 ‘성공’에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 향상이 성공의 유일한 척도라면 곤란합니다. 도대체 왜 성공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성공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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