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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뇽뇽 사회심리학]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란?

2018년 03월 31일 15:00

사랑해서 죽였다?


“사랑해서 그랬다”는 변명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랬다’에는 심한 집착과 구속,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거나 염산을 붓는 일, 심지어 살해하는 행위까지 포함되곤 한다. 사랑한 나머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우발적’ 범행을 했다며 함께 끄덕여 주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랑과 폭력, 언뜻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이 둘을 꽤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연인 관계에서의 폭력은 정말 우발적일까?

 

 

연인 관계 또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 IPV)이란 연인, 가족관계에서 일어나는 언어적, 비언어적, 정서적, 물리적 폭력을 일컫는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매우 흔해서 미국의 경우 이성애자 커플 여섯 중 하나가 매년 적어도 한 번 이상의 폭력을 겪는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 다른 조사(UMHS, 2014)에서는 미국에서만 한해 데이트/가정폭력으로 인해 약 32만 명의 여성이 병원을 찾았고 약 1200명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에서도 2012년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만 집계했을 때,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으로부터 살해당한 여성이 최소 120명, 살인미수는 최소 49건이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 2013).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으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적 폭력의 근원: 강압과 통제


흔히 폭력이라고 하면 신체적 폭력을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에 있어서 핵심은 ‘강압(coercion)과 통제’다 (Johnson & Ferraro, 2000).

 

강압은 타겟이 되는 사람의 의사와 상관 없이 ‘순종’을 조건으로, 순종했을 때에는 보상을 주지만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는 나쁜 대가를 치르게 하는 힘으로 정의된다 (Raven, 1992). “네가 XX하지 않겠다면 폭력을 휘두르겠어 / 부모님이나 아이, 애완동물 등 네게 소중한 무엇무엇을 해치겠어 / 나체사진이나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려서 사회생활 못 하게 만들겠어” 등이 한 예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해자가 순종하거나 순종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피해자에게 ‘본인이 선택한 거 아니냐’ 또는 ‘좋아서 한 거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상당한 대가를 치를 위험이 존재하고 사실상 굴종을 강요받는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선택은 온전히 본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님을 강조한다. 야근을 하고 회식에 참석하고 학창시절에 순순히 기합을 받은 것이 온전히 자발적인 행위이며 사실 ‘즐겼다’고 보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질 수 밖에 없는 게임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가해자들의 요구의 다수가 상당히 두루뭉실하고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나 말고 다른 남자는 생각도 하지마’라는 요구를 하면서 남성 택배기사나 경비원에게 인사라도 하면 꼬리친 거라고 주장하며 집을 부순다던지, ‘나를 화나게 하지마’라는 요구를 하면서 작은 것에도 일일이 화를 내는 등이 한 가지 예다.


마치 피해자가 행동을 잘 하면 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이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애초에 피해자가 어떻게 해도 절대 만족시킬 수 없는, 오로지 가해자만 계속해서 승리하는 게임인 것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피해자에게는 폭력 발생에 대한 통제권이 없으며 모든 것은 가해자에게 달려있다고 이야기 한다 (Dutton & Goodman, 2005). 피해자 탓을 하는 것은 폭력을 계속 사용하기 위한 정당화일 뿐 폭력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가해자의 존재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 공들인 덫


미국 조지타운대학의 연구자 Mary Ann Dutton에 의하면 의하면 많은 IPV 가해자들이 폭력을 손쉽게 사용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교묘한 방법으로 피해자의 행동을 통제한다고 한다 (Dutton & Goodman, 2005).

 

1. 진정성 있는 협박


첫 번째는 진정성 있는 협박이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너와 네 주변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해코지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이야기해서 자신의 협박이 장난이 아님을 주입시키고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가해자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른 과거가 있다면 협박에 더 큰 진정성이 실리게 된다. 협박에 주로 사용되는 소재로는 돈, 직장, 아이, 신체적 상해 등이 있다. 아이가 생기기라도 하면 아이에게 해를 입히겠다는 협박을 하고 이런 협박이 꽤 효과적이어서 ‘임신과 출산’이 가정폭력의 한 가지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Stith et al., 2004).

 

2. 약점 잡기


두번째는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아이’가 좋은 협박의 요소이자 약점이 되곤 한다.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여성에게는 ‘내가 아님 누가 너랑 살아주냐’ 등의 후려치기를 통해 피해 여성이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하고 현 상태에 안주하게 만든다 (Smith, 2008).


약점을 일부러 만드는 경우도 있다. 빚을 지게 만들거나 직장을 그만두게 해서 피해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게 만든다. 심한 경우 범죄 경력을 만들어서 아무데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고립시킨다고 한다. 다년간의 정서적, 신체적 폭력으로 인해 피해자가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갖게 만들어서 도망칠 기운을 상실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Bargai et al., 2007; Golding, 1999).

 

3. 저항 수단 차단


세번째는 저항 수단을 차단하는 것이다. 돈, 이동 수단(차), 사회적 지지, 건강한 몸, 용기와 자신감 등 독립적이고 건강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을 차단한다. 가족이나 친구들을 잘 만나지 못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시켜 도움을 받을 가능성을 차단시킨다 (Bonomi et al., 2006). 누가 너 따위를 좋아하냐는 등의 지속적인 모욕으로 사람들을 찾아 나설 용기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

 

4. 의존 관계 형성


네 번째는 의존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폭력을 휘두른 다음 날에 장미꽃을 사다 바치며 다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며칠 잘 해주고 폭력을 휘두르고 또 며칠 잘해주고 폭력을 휘두르는 싸이클이다. 피해자에게 모든 것이 본인 하기에 달렸다는 가짜 통제감을 주고 ‘내가 잘못해서 그래. 사실은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야’ 같은 자책 및 환상을 동시에 갖게 만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 폭력이 발생하면, 일단 선을 한 번 넘은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은 훨씬 쉽게 폭력을 행사하게 될 뿐, ‘다시는 안 그러겠지. 내가 잘 하면 괜찮겠지’같은 예상은 어긋나기 쉽다고 한다. 폭력은 처음 발생했다고 해도 그간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을 통해 치밀하게 폭력을 휘둘러도 될만한 무대를 설치해왔을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눈치챘을 때엔 이미 잘 만들어진 덫에 먹이감으로 놓여진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5. 끊임없는 감시


이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관심을 빙자한 ‘감시’가 있다. 끊임없이 전화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피해자가 사사건건 자신의 행적을 보고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있는 경우 ‘오늘 엄마 어디 갔어? 누구를 만났니?’라고 물어 감시망을 확대하기도 한다고.

 

가해자의 일반적인 특징으로는 높은 성차별의식과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 관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추구하는 권력욕과, 자신은 사실 대단한 사람이어서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하고 파트너가 항상 자신의 ‘기’를 살려줘야한다는 비뚤어진 자기애, 다른 데에서는 참더라도 연인과 배우자 앞에서만큼은 화를 참지 않는 것 등이 있었다 (Finkel & Eckhardt, 2013).


데이트/가정 폭력 역시 오랫동안 발달시켜온 잘못된 정신상태 + 피해자를 통제, 감시하려는 치밀한 노력의 발현인 경우가 많으며 ‘한 순간의 잘못’, ‘우발적’ 등의 변명은 해선 안 되며 통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 사회에서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용인하는 정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명백한 폭력을 ‘사랑 싸움’이라거나 ‘둘 만의 일’, ‘집안 일’ 등으로 포장하며 폭력이 아닌 것처럼 보는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Kaufman Kantor et al., 1994).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IPV 역시 사회에서 용인하지 않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범죄임을 시사하는 결과다.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덫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아래 체크리스트를 살펴보자 (UC Davis Health).

 

당신이 :


- 파트너가 종종 두렵게 느껴진다.


- 나는 파트너에게 나쁜 대접을 받아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 내가 이상한 사람인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파트너가:


- 당신에게 모욕을 주거나 고함을 친 적이 있다.


- 비판적이고 자신감을 꺾는다.


- 자신의 공격적인 행동이 내 탓이라고 이야기한다.


- 나를 같은 한 사람이라기보다 소유물, 성적 도구로 여긴다.


- 나나 내 주위 사람들을 다치게 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


- 원치 않은 성관계를 요구한 적이 있다.


- 물건을 잘 부순다.


- 의심과 질투심이 많다.


- 내가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날지를 통제하려 든다.


-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

 

‘자살하겠다고 협박’해서 상대로부터 특정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 또한 폭력에 해당한다고 명시되어 있는 부분이 흥미롭다. 특정 행동을 하게끔 상대의 심리 상태를 조작하는 행위 전반이 강압과 폭력에 해당된다는 것. 힘을 쓰는 폭력만 폭력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의심이 간다면 한국 여성의 전화 (02-2263-6464~5)나 여성긴급전화(1366)에 문의해보도록 하자.

 

 

[1] Bargai, N., Ben-Shakhar, G., & Shalev, A. Y. (2007).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nd depression in battered women: The mediating role of learned helplessness. Journal of Family Violence22, 267-275.

[2] Bonomi, A. E., Thompson, R. S., Anderson, M., Reid, R. J., Carrell, D., Dimer, J. A., & Rivara, F. P. (2006). Intimate partner violence and women’s physical, mental, and social functioning. American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30, 458-466.

[3] Dutton, M. A., & Goodman, L. A. (2005). Coercion in intimate partner violence: Toward a new conceptualization. Sex Roles52, 743-756.

[4] Finkel, E. J., & Eckhardt, C. I.  (2013). Intimate partner violence. In J. A. Simpson & L. Campbell (Eds.), The Oxford handbook of close relationships (pp. 452–474).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5] Golding, J. M. (1999). Intimate partner violence as a risk factor for mental disorders: A meta-analysis. Journal of Family Violence14, 99-132.

[6] Johnson, M. P., & Ferraro, K. J. (2000). Research on domestic violence in the 1990s: Making distinctions. Journal of Marriage & the Family, 62(4), 948–963.

[7] Kaufman Kantor, G., Jasinski, J. L., & Aldarondo, E. (1994). Sociocultural status and incidence of marital violence in Hispanic families. Violence and Victims, 9, 207–222.

[8] Raven, B. H. (1992). A power/interaction model of interpersonal influence: French and Raven thirty years later. Journal of Social Behavior & Personality, 7(2), 217–244.

[9] Smith, D. L. (2008). Disability, gender and intimate partner violence: Relationships from the behavioral risk factor surveillance system. Sexuality and Disability26, 15-28.

[10] Stith, S. M., Smith, D. B., Penn, C. E., Ward, D. B., & Tritt, D. (2004). Intimate partner physical abuse perpetration and victimization risk factors: A meta-analytic review. Aggression and Violent Behavior10, 65-98.

[11] UC Davis Health, Domestic Violence & Abuse, https://www.ucdmc.ucdavis.edu/hr/hrdepts/asap/Documents/Domestic_Violence.pdf

[12] UMHS. (2014, Sep 16). Study: 1 in 5 men reports violence toward intimate partners. Retrieved from http://www.psypost.org/2014/09/study-1-5-men-reports-violence-toward-intimate-partners-28204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 스스로를 돌보는 게 서툰 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부탁해>를 썼다. 현재는 UNC 의과대학에서 연구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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