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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으로 본 정현의 '테니스 신드롬'

2018년 03월 13일 10:50

'테니스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정현(22·한국체대).  정현이 세운 기록의 비결을 과학자가 분석했다. 

 

 

“조코비치보다 젊기 때문에 체력에서 유리했다.”


1월 말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2018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정현은 16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를 꺾으며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8강 진출 기록을 세웠다. 그는 내친 김에 4강 진출까지 이뤄내며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와 맞붙었지만, 발바닥 부상으로 아쉽게 기권하며 4강에서 멈췄다.

 

이미지 확대하기정현은 2018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를 통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그랜드슬램 대회 8강 진출의 역사를 썼다.  2018.01.24 - 사진 출처 뉴시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정현은 2018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를 통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그랜드슬램 대회 8강 진출의 역사를 썼다. 2018.01.24 - 사진 출처 뉴시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정현은 한국인 역대 최고 랭킹(29위) 등 기록을 남기며 국내에 ‘테니스 신드롬’을 일으켰다. 정현은 이런 기록의 비결로 ‘젊음’을 꼽았지만, 과학자들은 다른 비결을 얘기한다. 바로 물리학이다.

 

 

‘스윙 무게’는 물리학의 회전관성


지름 6.5cm, 무게 57g의 테니스공이 날아와 라켓에 부딪힌다. 공의 운동에너지를 라켓이 흡수했다가, 선수의 힘을 더해 상대방에게 보낸다. 테니스의 기본적인 운동 방식이다. 라켓 제작부터 스윙 방식까지 테니스의 모든 순간에는 과학이 담겨있다. 정현의 호주오픈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오픈에서 정현은 그간 약점으로 꼽히던 포핸드의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포핸드의 자세를 조정하면서 스윙 스피드를 높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대 스윙 스피드는 라켓의 ‘스윙 무게’가 결정한다. 이는 라켓을 휘둘렀을 때 느껴지는 무게감으로, 라켓 자체의 무게와는 다른 개념이다. 물리학적으로는 이를 회전관성(moment of inertia) 즉, 물체가 계속 회전하려는 성질로 나타낸다. 스윙 무게는 보통 손잡이 끝에서 약 10cm 안쪽으로 일반적으로 사람이 손으로 잡는 부분을 회전축으로 하는 회전관성으로 표시한다.

 

이미지 확대하기최대 스윙 스피드는 라켓의 스윙 무게가 결정한다. 이를 회전관성이라 한다. - 사진 출처 뉴시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최대 스윙 스피드는 라켓의 '스윙 무게'가 결정한다. 이를 '회전관성'이라 한다. - 사진 출처 뉴시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노재우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는 한국물리학회가 발행하는 ‘물리학과 첨단기술’에 라켓의 스윙 무게가 최대 스윙 스피드를 결정한다는 연구결과를 2014년 발표했다. 테니스 선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동일한 스윙 무게를 가진 경우, 라켓의 무게가 달라도 최대 스윙 스피드는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골프, 야구, 테니스 등 스윙을 이용하는 종목에서 스윙 무게는 중요한 개념”이라며 “골프 선수는 퍼터를 제외한 13개 클럽을 스윙 무게가 모두 동일한 것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실력이 비슷한 선수도 스윙 자세는 다르다. 하지만 최근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게서 공통점이 있다면 임팩트(공이 라켓에 부딪히는 순간) 때 라켓의 순간 속력을 높이기 위해 팔뚝과 손목의 회전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물리학적으로는 이를 ‘이중진자 모델’로 해석한다.

 

진자는 고정된 한 축이나 점 주위를 일정한 주기로 진동한다. 진자 운동으로 해석하면 테니스 스윙에는 두 개의 진자가 관여한다. 팔꿈치를 중심으로 하는 팔뚝의 회전과, 손목을 중심으로 하는 라켓의 회전이다.

 

선수들의 스윙 자세를 분석하면 백스윙에서 팔뚝이 빠르게 앞으로 나오다가 임팩트 직전에 속력을 줄이고, 동시에 손목을 중심으로 라켓이 빠르게 회전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자세에서 진자의 끝점이 되는 라켓 헤드에 최대 운동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확대하기테니스 라켓에 담긴 물리학 - 자료 출처: 물리학과 첨단기술, 사진 제공: 요넥스
테니스 라켓에 담긴 물리학 - 과학동아 3월호 제공(자료 출처: 물리학과 첨단기술, 사진 제공: 요넥스)

에너지 보존법칙에 의하면 임팩트 전과 후 라켓의 회전 운동에너지는 같아야 한다. 임팩트 순간 팔뚝의 회전 속력이 줄어든다면, 운동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 라켓의 회전 속력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의미다.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모두 이런 형태의 스윙을 구사한다.

 

한편, 정현이 호주오픈에서 사용한 라켓은 요넥스의 ‘브이코어 듀얼G’라는 제품이다. 요넥스코리아에 따르면 이 제품은 가장 효과적으로 힘을 전달하는 지점인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 넓고 프레임이 유연한 점이 특징이다.

 

뉴턴의 운동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라켓으로 강하게 공을 때리면, 그 반작용으로 라켓에도 강한 힘이 가해진다. 이 충격으로 라켓은 100~180Hz(헤르츠·1Hz는 1초에 1회 진동을 뜻함)로 진동한다. 스위트 스폿은 진동의 진폭이 0이 되는 지점이다. 물리학적으로는 ‘마디(node)’라고 표현하며, 이 부분에 공이 맞으면 라켓은 거의 진동하지 않는다. 가장 편안한 느낌으로 공을 쳐낼 수 있는 지점이란 의미다. 또 프레임이 유연할수록 진동수가 작기 때문에 라켓을 쥔 손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노 교수는 “공과 충돌 직후 라켓은 진동운동, 병진운동, 회전운동을 한다”며 “스위트 스폿에 공이 맞는 경우 진동은 없지만, 병진운동과 회전운동으로 인해 라켓이 손잡이 부분을 회전축으로 역회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확대하기초보자를 위한 테니스 ‘표준모형’ - 과학동아 3월호 제공
초보자를 위한 테니스 ‘표준모형’ - 동아사이언스 제공

 

초보자를 위한 테니스 ‘표준모형’

 

테니스는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다. 독학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코치마다 강습법도 다르다. 한원근 홍익대 기초과학과 교수는 2010년 테니스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특별한 프로젝트 연구팀인 ‘헤비볼(heavy ball)’을 꾸렸다. 헤비볼은 과학자, 전·현직 테니스 선수와 코치 등 40여 명으로 이뤄졌다. 헤비볼의 목적은 초보자들을 위한 테니스의 ‘표준모형’을 만드는 일이다.

 

테니스 선수 출신인 원경주 한국실업테니스연맹 경기위원장은 “코치들마다 강습법이 다르고, 블로그나 유튜브 등 인터넷에는 테니스의 기본기를 설명하는 자료가 중구난방으로 올라온다”며 “잘못된 자세가 익숙해지면 고치기 어려운 만큼 가장 단순하고 정확한 테니스 초보자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물리학자들이 ‘표준모형’을 만들어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를 규명하듯이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한 방식에 대한 답을 일종의 표준모형으로 정리해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테니스의 경기 운영 트렌드는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공의 속력이 훨씬 빨라졌고, 빠른 속력의 공을 따라가기 위한 새로운 스텝이 개발되기도 했다. 테니스 지침서도 이런 트렌드에 맞춰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원 경기위원장은 “가장 최신 지침서초자 10여 년 전 국제테니스연맹(ITF)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헤비볼은 테니스 관련 과학 및 스포츠 분야 논문들을 분석해 최적의 테니스 자세를 정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테니스 초보자를 위한 포핸드, 백핸드, 서브 자세를 정리한 4편의 논문을 ‘코칭능력개발지’ 등 관련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를 통해 헤비볼은 포핸드는 여섯 단계에 걸친 표준 모형(준비, 스텝, 백스윙, 포워드 스윙, 임팩트, 팔로우 스루)으로, 백핸드는 초보자가 빨리 학습할 수 있는 양손 백핸드를 중심으로 다섯 단계의 표준모형으로 정리했다.

 

한 교수는 “테니스 경기를 하면서 경험적으로 느낀 부분과 테니스 전문가들의 견해를 물리학적으로 해석하고 정리했다”며 “과학자, 선수, 코치가 협업한다는 점에서 이론과 실전이 결합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 검색서비스인 국가과학기술정보센터(NDSL)서 테니스 관련 논문은 1010편이 검색된다. 야구는 2194편, 수영은 무려 9538편이 뜬다. 한 교수는 “외국의 경우 테니스를 물리학적으로 해석한 논문의 양이 증가하는 추세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관심이 적은 편”이라며 “테니스 등 스포츠를 과학과 결합해 융합적 분석을 한다면 그 분야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예슬 기자

ys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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