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과학 지식을 접하는
가장 똑똑한 방법!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찰스 다윈은 정말 혼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걸까?

2018년 03월 04일 15:00
이미지 확대하기다윈은 정말 혼자서 진화론 창조라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얼 냈을까? -GIB 사진 제공
다윈은 정말 혼자서 진화론 '창조'라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냈을까? -GIB 사진 제공

 

진화론을 ‘창조’한 인물로 흔히 찰스 다윈을 이야기합니다. 초등학교 위인전만 보아도 다윈은 대단한 위인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찰스 다윈은 정말 혼자 이런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낸 것일까요? 대학 교수도 아닌 실업자가? 혹시 다른 사람의 공을 빼앗은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진화론을 둘러싼 재미있는 뒷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흙수저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
     
1823년 영국 웨일즈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태어납니다. 부모는 원래 중류 계급이었지만, 점점 가세가 기울면서 하류층으로 전락했죠. 월리스가 5살 되던 무렵 런던으로 이사했는데, 월리스는 초등학교를 조금 다니다가 학업을 포기합니다. 학비가 없었기 때문이죠. 14세의 월리스는 측량사의 조수나 목수 일을 하면서 생계를 도왔습니다. 


하지만 유난히 과학에 흥미가 많았던 월리스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지역 과학회관 노동자 클럽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혼자 공부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중고 책방에서 1실링을 주고 작은 식물학 책을 사보게 됩니다. 1실링이면 지금 가치로 약 1달러 정도 되는 돈이죠. 그 책은 어린 월리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습니다. 월리스는 책방 주인에게 보다 자세한 식물학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추천받은 식물 백과사전은 무려 3파운드였습니다. 현재 가치로 7~10만원 정도 되겠네요. 가난한 월리스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었습니다. 

     
 

이미지 확대하기1만년의 알프레드 월리스. 월리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자연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오지를 탐험했고, 자연선택에 관한 훌륭한 이론을 고안해냈다. -wikimeda(cc) 제공
1만년의 알프레드 월리스. 월리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자연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오지를 탐험했고, 자연선택에 관한 훌륭한 이론을 고안해냈다. -wikimeda(cc) 제공


월리스는 책방 주인에게 간청하여 책을 잠시 빌립니다. 그리고 책을 모조리 베낍니다. 손으로 베끼는 것도 저작권 위반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난한 소년 월리스는 열정만으로 과학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가죠. 반드시 열대 지방의 식물을 직접 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금수저 찰스 로버트 다윈
     
찰스 다윈은 월리스보다 14년 먼저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내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도자기 제조업으로 유명한 웨지우드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저명한 의사였던 에라스무스 다윈이었죠. 다윈은 평생 제대로 된 ‘정규직’을 얻은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늘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다윈은 아버지 병원의 일을 잠시 돕다가 에든버러 의대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그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늘 겉돌았습니다. 결국 2년 만에 학교를 중퇴합니다.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서 케임브리지 대학교 신학과에 들어갑니다만, 여기서도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 수업을 땡땡이 치고 숲을 마냥 배회하거나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시며 세월을 보냅니다. 본인 스스로 ‘내 시간은 헛되이 지나가고 있었다’라고 한 적도 있었죠 (그런데도 우등생으로 졸업합니다).
     
 

이미지 확대하기만년의 찰스 다윈.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다녀온 후 무려 18년 이상 은둔하다시피 하며, 진화론의 여러 이론을 다듬어갔다.  - pixabay 제공
만년의 찰스 다윈.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다녀온 후 무려 18년 이상 은둔하다시피 하며, 진화론의 여러 이론을 다듬어갔다.  - pixabay 제공

 


월리스의 탐험
     
어렵게 공부하던 월리스는, 측량을 가르치는 교사 자리를 얻습니다. 박봉이었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자리였죠. 그리고 헨리 월터 베이츠를 만납니다. 비슷한 나이의 베이츠는 딱정벌레 수집광이었는데, 이들은 금새 깊은 우정을 쌓아 나갑니다. 


월리스와 베이츠는 찰스 다윈이 1839년에 출판한 <비글호 항해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유명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도 같이 읽으면서 탐험에 대한 꿈을 같이 키워 나가죠. 


하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아마존에서 곤충과 동물을 모아 부유한 수집가에게 파는 방법을 택합니다. 이런 계획을 내걸고 브라질로 떠나는 군함, ‘미스치프’호에 동승하게 됩니다. 꿈에도 그리던 4년 간의 열대지방 탐사가 시작됩니다. 수많은 표본을 수집하고, 지도를 만들고 다양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베이츠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곤충의 의태에 대한 연구를 하는데, 이를 ‘베이츠 의태’라고 하죠.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월리스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귀국길에 배가 침몰하면서 채집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보험도 절반만 들어 두었기 때문에, 가재도구를 팔면서 어렵게 지냅니다. 깡통에 넣어두었던 야자나무 그림은 겨우 구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아마존의 팜 나무>라는 책을 펴내죠. 이 책은 영국에서 제법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큐 식물원에서 일하던 식물학자 조지프 후커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런데 후커는 다윈의 절친이었죠. 


월리스는 포기하지 않고 다음 탐험을 준비합니다. 8년 간의 말레이 반도 탐험을 통해서 수십만 개의 표본을 채집하고, 상당한 연구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말레이시아 사라왁 지역에서 머물며, 1855년 유명한 사라왁 법칙을 제안합니다. ‘모든 종은 기존에 존재하는 비슷한 종과 동일한 시공간적 상황에서 생겨난다’는 법칙이죠. 
     


다운 하우스의 은둔자
     

찰스 다윈은 1836년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돌아옵니다. 항해 중에 월리스와 마찬가지로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죠.  하지만 귀국 후에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런던 근교의 다운 하우스(Down House)에서 거의 은둔하듯이 지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내성적인 성격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간혹 책이나 논문을 발표했지만, 활달한 월리스에 비하면 은둔자에 가까웠죠. 

 

다윈은 1856년 초여름, 월리스의 ‘사라왁 논문’을 보게 됩니다. 다윈의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 집니다. 


“시간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책을 쓴다고 생각하면 혐오스럽지만, 누군가가 제가 생각한 원칙을 저보다 먼저 발표하게 된다면 정말 화가 나겠지요”
- 찰스 다윈이 라이엘에게 쓴 편지에서

     

찰스 다윈은 번민합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고민하던 내용과 비슷한 연구를 하는 월리스의 논문은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윈은 월리스에게 편지를 보내 논문을 칭찬합니다. 하지만 속마음은 타 들어갔죠. 편지에는 자신도 20년간 비슷한 연구를 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다윈이 먼저인가? 월리스가 먼저인가?
     
상황은 점점 촉박해 졌습니다. 1858년 초여름, 월리스는 이른바 ‘테르나테 논문’을 다윈에게 보냅니다. 다윈의 마음도 모르고, ‘선생님이 한번 봐주시고 내용이 그럴 듯하다면, 라이엘에게 전해서 발표해 줄 수 있겠는지’ 물은 것이죠. 거의 완전한 수준의 자연선택설을 담고 있는 논문이었습니다. 다윈은 경악합니다. 거의 처절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고통스러운 사실을 전합니다. 다윈의 친구였던 라이엘과 후커는 고민 끝에 타협책을 제안합니다. 같은 해 7월에 열린 린네 학회에서 월리스와 다윈의 논문을 같이 발표하자는 것이죠. 


논문 낭독회에서 발표된 월리스의 논문은 “원형으로부터 무한히 벗어나려는 변종들의 경향성에 대해” 였고, 다윈의 논문은 “변종을 형성하려는 종의 경향성에 대해; 그리고 자연 선택에 의한 종과 변종의 영속화에 대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제목도 거의 비슷했습니다. 라이엘과 후커는 ‘조정’작업을 통해서, 다윈의 논문을 먼저 읽고 월리스의 논문을 바로 다음에 읽도록 했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다윈’이 진화론의 창시자가 된 순간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다윈와 월리스의 논문을 낭독한 1858년 7월 1일, 린네 학회의 첫 페이지. 다윈의 이름이 월리스의 이름 바로 앞에 적혀 있다. -wikimeda(cc) 제공
다윈와 월리스의 논문을 낭독한 1858년 7월 1일, 린네 학회의 첫 페이지. 다윈의 이름이 월리스의 이름 바로 앞에 적혀 있다. -wikimeda(cc) 제공


   
다윈은 월리스의 공을 빼앗은 것일까? 
     
혹자는 그래서 찰스 다윈을 알프레드 월리스의 공을 빼앗은 후안무치한 과학자로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정말 다윈은 진화론을 훔친 악당일까요? 


사실 월리스도 다윈이 진화론의 창시자가 되는 것에 별 반대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월리스는 <비글호 항해기>를 읽으면서, 다윈이 자신의 논문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었죠. 심지어 1889년 월리스는 <다윈주의: 자연선택 이론의 해설>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월리스주의’가 아니라 ‘다윈주의’라고 책 제목을 붙이고, 심지어 서문에는 ‘다윈의 위대한 원리의 힘과 범위를 이해시키려는 목적’으로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다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윈은 <종의 기원> 서문에서 ‘자연 선택에 관한 이론은 월리스 씨가 경탄할 만한 힘과 명료함을 가지고 발표하였다’고 명시하였습니다. 다윈은 자신이 ‘남의 공’을 빼앗는 것이 아닌지 항상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월리스와 다윈은 서로를 존경했습니다. 나이가 든 월리스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지자, 다윈은 과학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죠. 
         

이미지 확대하기1908년 7월 1일 린네 학회는 알프레드 월리스에게 이른바 다윈-월리스 메달을 수여했다. 다윈과 월리스의 린네 학회 공동 발표를 기리는 기념 메달의 한 면에는 다윈, 다른 면에는 월리스의 얼굴이 양각되어 있다. -wikiemedia(cc)
1908년 7월 1일 린네 학회는 알프레드 월리스에게 이른바 다윈-월리스 메달을 수여했다. 다윈과 월리스의 린네 학회 공동 발표를 기리는 기념 메달의 한 면에는 다윈, 다른 면에는 월리스의 얼굴이 양각되어 있다. -wikiemedia(cc)


찰스 다윈은 이후에 <인간의 유래>나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과 같은 기념비적 저서를 계속 남깁니다. 월리스도 자연 선택에 대한 논문과 책을 더 써 나가지만, 다윈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둘은 서로 의견이 갈린 적도 있었습니다. 다윈은 ‘마음’도 진화한다고 생각한 반면, 월리스는 ‘영혼’만은 예외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월리스의 연구가 없었으면, 은둔자 다윈의 연구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다윈의 방대하고 체계적인 연구가 아니었으면, ‘듣보잡 하류층’ 에 불과하던 월리스의 연구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에필로그 
어떤 과학자들은 마치 올림픽 경주를 하듯이, 연구 성과를 선점, 독점하려고 합니다. 기밀이라도 되는 양 연구 내용을 절대 나누지 않죠. 누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절해 갈 것 같은 두려움때문이지만, 영광을 홀로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금메달은 단 한 명만 받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좋은 성과가 나올 지 모르겠습니다. 찰스 다윈과 알프레드 월리스는 ‘평소 놀던 물’이 아주 달랐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연구를 존경했고 협력했죠. 다윈을 언급할 때는, 월리스가 꼭 같이 등장합니다. 다윈-월리스 메달의 양면처럼 말이죠. 어떤 의미에서 과학 연구는 1등이 독식하는 스피드 경주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마지막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의 기록으로 승패를 판정하는 팀 추월 경주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

댓글쓰기

지금
이기사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