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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뇽뇽 사회심리학] 미투의 외침 나오는 이유? 성폭력 권하는 사회

2018년 03월 03일 15:00

성폭력을 피하려면 밤길을 조심하라는 등의 조언을 한다. 낯선 곳에서 수상한 낯선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라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 밤길보다 집, 학교, 직장이 더 위험하다. 성폭력의 약 60-80%가 낯선수상한 사람보다는 가족, 친척, 학교나 직장동료, 연인이나 배우자 등 일상 속의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미지 확대하기성폭력의 60-80%가 가족, 친척, 직장동료, 연인 등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GIB 제공
성폭력의 60-80%가 가족, 친척, 직장동료, 연인 등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GIB 제공


 
약 30개국을 대상으로 한 2004-2005 UN 조사 결과에서는 성폭력 가해자 중 전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11%, 학교나 직장 상사가 17%, 현재 파트너가 8%, 친한 친구가 16%를 차지했다 [1]. 미국 NIJ (national institute of justice) 보고에 의하면 대학생들이 겪는 성폭력에서 약 85%에서 90%에 달하는 가해자가 친구나 옆집 사람 등의 면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2]. 유럽에서 이루어진 한 조사에 의하면 성폭력이 발생하는 공간은 공원, 쇼핑몰 같은 공공장소(34%) 다음이 집(33%)이었다 [3]. 


가장 안전해야 할 친밀한 관계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만큼 여성에게 있어 성폭력은 조심한다고해서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닐뿐더러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Me Too’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세계 여성 인권 실태를 조사한 책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는 지난 50년간 여성이라는 이유로 낙태, 방치, 폭력 등을 통해 살해된 여성의 수가 20세기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남성의 수보다 많다는 통계를 언급하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망하거나 고통받는 수가 어마어마한데 별로 주목 받지 않는 게 놀랍다고 지적한 바 있다 [4]. 세상은 이렇게나 많이 발전했는데 아직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흔한 이유는 무엇일까?

 

 

허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캐나다 캘거리 대학(University of Calgary)의 심리학자 Chelsea Willness 등은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41개의 기존 연구들을 분석하며 다음과 같은 발견을 했다. 우선 많은 연구들에서 ‘성폭력을 용인하는 조직의 분위기’를 문제로 지적했다고 한다 [5]. 


성폭력 관련 문제를 제기하거나 고발할 때 피해자가 져야하는 위험부담이 큰 반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약한 것, 문제를 제기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분위기, 남초 직장의 경우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남성성을 우월시하는 등의 조직 문화가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성적 문제 행동에 대한 명확한 공식 가이드라인의 부재, 문제를 제기하고 조사를 요청할 수 있는 공식 절차 및 교육 프로그램의 부재, 성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한 내부의 강한 행동 의지 부재 같은 시스템, 정책, 절차, 행동력의 문제 또한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됐다. 


특히 성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남성이 성폭력에 관대한 환경을 만나면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성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6]. 성폭력은 이를 용인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실시하는 성교육에 제 3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성폭력은 이를 묵인하는 사람들을 통해 강화되며, 따라서 누군가가 불쾌할 수 있는 성적인 농담을 하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말을 할 때 “그 농담은 재미있지 않다.”, “너는 지금 선을 넘었다.”고 적극 개입할 것을 가르친다. 

 

 

앞날이 창창하던 그 여성들 


피해 여성의 경우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큰 손실을 입게 되고 직업 만족도와 생산성이 낮아지는 등 커리어에도 큰 손실을 입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직장에서의 성폭력이 여성의 꿈을 꺾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언급하며 이는 사회적, 국가적 손실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7]. 앞날이 창창했지만 성폭력으로 인해 꿈을 포기해야했던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필자 역시 학교와 대학원 등에서 성희롱 발언을 듣거나 교수들의 성폭력 혐의에 대해 듣는 일이 적지 않았다. 강간 혐의가 있었던 교수, 학생에게 사귀자고 하며 스킨쉽을 한다는 교수, 문자를 보내서 수 분 안에 답장이 없으면 반성문을 써오라고 했다는 교수, 여성의 성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낄낄 웃던 교수, 유흥주점에 학생을 동석시켜 수발을 들게 했던 교수와 그 교수의 잘못을 덮으려 함께 애썼다던 동료 교수 등. 가해자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늘 피해자만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노예로 살았다가 탈출한 경험을 쓴 프레드릭 더글라스의 수기에는 미국 노예제 시절 흑인 노예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이는 것이 자랑인 백인들이 있었으며, 아마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8]. 살인도 모두가 옳다고 하면 옳은 일, 심지어 자랑할만한 일이 되어 버린다. 원론적으로 살인은 나쁘지만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다거나, 그 흑인도 잘못했다고 하는 주변의 묵인이 뒷받침이었을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 역시 세상의 악을 늘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성폭력 위기 대응 센터(Orange County Rape Crisis Center)에서 주최한 공공 행사에서 한 ‘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체험한 ‘강간을 권장하는 문화(rape culture)’에 대해 들려주었다.


여섯살 때 오빠가 얼굴을 쳐서 이빨 두 개가 부러졌는데 엄마가 "너가 오빠를 건드렸겠지. 앞으론 건드리지마"라고 했을 때, 저녁시간에 아빠가 "요즘 여자애들 옷 야하게 입는 거보면 강간당해도 싸다"고 했을 때, 남자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도도한 척한다는 소리를 듣고 요구를 받아주면 걸레라는 소리를 들을 때,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처럼 굴지마'라는 말이 욕이 될 때, 그 정도는 성폭력이 아니라며 ‘예민하게 굴지마. 원래 다 그래'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사회는 아직도 강간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으며 따라서 여성이 조심해야 하는 문제라고, 되려 강간범을 옹호하고 피해자를 단죄함을 느꼈다고 한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1] UNICRI. "Criminal Victimisation in International Perspective: Key findings from the 2004-2005 ICVS and EU ICS"WODC in cooperation with the 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UNODC) and the United Nations Interregional Crime and Justice Research Institute (UNICRI): 77–79.

[2] National Institute of Justice. https://www.nij.gov/topics/crime/rape-sexual-violence/campus/Pages/know-attacker.aspx

[3] Lovett, J., & Kelly, L. (2009). Different systems, similar outcomes? Tracking attrition in reported rape cases across Europe. London: Child and Women Abuse Studies Unit, London Metropolitan University.

[4] Kristof, N. D., & WuDunn, S. (2010). Half the sky: Turning oppression into opportunity for women worldwide.

[5] Willness, C. R., Steel, P., & Lee, K. (2007). A meta‐analysis of the antecedents and consequences of workplace sexual harassment. Personnel psychology60(1), 127-162.

[6] Potter, S. J., & Banyard, V. L. (2011). The victimization experiences of women in the workforce: Moving beyond single categories of work or violence.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 스스로를 돌보는 게 서툰 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부탁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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