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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뇽뇽 사회심리학] 가난과 불공정

2018년 02월 17일 15:00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가난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한 것이라고 가난에는 다른 이유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다른 무엇보다 가난 자체가 가난한 사람을 옭아매는 족쇄라는 것이다.

 

일례로 돈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되면 누구든지 일시적으로 아이큐가 심각하게 저하되고 (Mani et al., 2013), 권력감이나 통제감이 저하되면 쉽게 움츠러들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며 자신감이 떨어져 새롭고 과감한 도전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등 (Galinsky et al., 2008) 가난 자체가 사람의 건강과 인지능력, 성격적 측면에 심각한 데미지를 주기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연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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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실험사회심리학지(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에 비해 불공정한 상황에도 더 잘 수긍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Ding et al., 2017).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파트너와 함께 다음과 같은 게임을 하도록 했다. 만원이 있는데 한 사람이 그 만원을 파트너와 자신이 각각 얼마나 가질지를 정하고 파트너에게 제안한다. 예컨대 5:5로 나누자고 해서 파트너가 제안을 수락하면 각각 제안된만큼을 갖고 만약 파트너가 거절하면 둘 다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식이다. 만약 제안하는 사람이 본인이 8을 갖고 파트너에게는 2를 제안하는 경우 이는 명백히 불공정한 제안이지만 그래도 2가 아쉽다면 파트너는 2를 받기로 할 것이다. 인간은 절대적인 이익뿐 아니라 ‘룰이 공정한가’에도 크게 집착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약 50-70% 정도의 사람이 이런 불공정한 제안을 거절한다고 한다.


이렇게 많이들 불공정한 제안을 거절하지만, 연구자들의 분석 결과 나이, 성별, 교육수준, 인종과 상관 없이 집안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이 불공정한 거래에 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을 통해 더 많은 자본금을 가지고 게임에 임하는 부유한 조건과 부유하지 않은 조건을 만들었을 때도, 부유하지 않았던 조건의 사람들이 부유한 조건의 사람들에 비해 더 불공정한 거래에 쉽게 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어찌보면 상대적으로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부유한 사람들은 불공정한 거래에 의해 타격이 덜하고 따라서 이들이 더 불공정한 거래를 크게 게의치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타격을 덜 받는 사람들은 불공정한 제안을 거부하는 반면 타격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러한 거래에 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현상은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인가?’라는 판단 (sense of entitlement)와 깊은 관련을 보였다. 집안이 부유하거나 잠시 부유한 상황에 처했던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자신은 부당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불공정한 제안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대로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은 불공정한 대접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며 순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더 자신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빨리 인식하며 불공정한 상황에 더 즉각적으로 항의하는 편이라는 연구도 있었다고 한다 (Jost et al., 2004).


연구자들은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더 자신은 좋은 대접을 받을만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부를 쉽게 정당화 한다고 언급했다. 즉 자신이 부유한 건 다 자신이 잘난 사람이기 때문이며 반대로 누군가가 가난한건 다 그 사람이 못났기 때문이라고 불평등을 쉽게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쪽에서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싫어도 어쩔 수 없다고 불평등에 순응하기 때문에 불평등이 쭉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냐는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얼마 전 가난한 아이가 요즘 유행하는 비싼 패딩을 원했다며 고마운줄도 모르고 분수에 맞지 않는 걸 원한다고들 성토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옆집 아이가, 또는 자기 자식이 요즘 유행하는 패딩을 원해도 분수에 맞지 않는 걸 원한다고 생각했을까? 가난한 사람에게 적합한 대우, 가난한 사람에게 적합한 꿈이 어디까지인지 사회가 명확한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놓고는 또 가난은 죄가 아니라거나 꿈을 크게 꾸라고 설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심리학자 갈린스키는 권력은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힘일뿐 아니라, 주변으로부터의 원치 않는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했다(Galinsky et al., 2008). 자율성과 주체성도 재력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이, 사회가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씁쓸하게 느껴졌다.

 

참고:  

Ding, Y., Wu, J., Ji, T., Chen, X., & Van Lange, P. A. (2017). The rich are easily offended by unfairness: Wealth triggers spiteful rejection of unfair offer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71, 138-144.

Galinsky, A. D., Magee, J. C., Gruenfeld, D. H, Whitson, J. A., & Liljenquist, K. A. (2008). Power reduces the press of the situation: Implications for creativity, conformity, and dissona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5, 1450-1466.

Jost, J. T., Banaji, M. R., & Nosek, B. A. (2004). A decade of system justification theory:
Accumulated evidence of conscious and unconscious bolstering of the status quo.
Political Psychology, 25, 881–919.

Mani, A., Mullainathan, S., Shafir, E., & Zhao, J. (2013). Poverty impedes cognitive function. Science341, 976-980.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 스스로를 돌보는 게 서툰 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부탁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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