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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기자의 영화 속 로봇③] 로봇은 새로운 종(種)일까… ‘오토마타’

2018년 02월 08일 16:25

이미지 확대하기영화 오토마타 포스터 - 인피니티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오토마타 포스터 - 인피니티 엔터테인먼트 제공
생물학에서 종(種)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표준 국어대사전에선 종에 대해 ‘생물 분류의 기초 단위. 속(屬)의 아래이며 상호 정상적인 유성 생식을 할 수 있는 개체군’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해 ‘교미(인간은 성교)를 통해 자손을 남길 수 있는 생명체의 집단’ 정도로 이해하면 되려나 싶다.

 

예를 들어 늑대와 개, 멧돼지와 돼지, 사자와 호랑이 등은 서로 생김새도 비슷하고 교미도 가능하다. 심지어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새끼가 생식능력을 갖지 못한다. 그러니 이들은 같은 종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즉 자손끼리 계속 교미해 서로 유전자 교환을 끊임없이 해 나갈 수 있어야만 같은 종으로 볼 수 있다. 동물은 태어나서 삶을 영위하고, 그 경험을 유전자에 담아 후세에 전달한다. 그렇게 생명체는 그 기능을 생존에 유리하도록 끊임없이 가다듬는다.

 

로봇 이야기를 하는데 왜 뜬금없이 생명체의 구분을 이야기 하고 있느냐 하면, 로봇을 다른 동물과 같이 하나의 ‘종’으로 구분하려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로봇이 자손을 남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로봇이 스스로 다른 로봇을 만들고, 그 다음 세대(?) 로봇의 기능을 한층 더 뛰어나게 가다듬을 수 있다면, 이는 스스로 진화하는 생명체의 특성을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나왔던 수많은 로봇 영화들 중, 이같은 고민을 가장 심도 깊게 영상에 담은 영화는 2014년 개봉한 ‘오토마타’가 아닌가 싶다.

 

오토마타는 스페인 감독 가베 이바네즈가 메가폰을 잡았다. 한국에는 오토마타 개봉으로 처음 이름이 알려졌지만, 3D와 시각특수효과 분야에서 많이 활동하고, 광고영상 감독으로도 활약하며 자국에서는 잘 알려진 실력파 감독이다. 1971년 마드리드 출생. 각본에도 이바네즈 감독이 직접 참여했다. 스페인 스텝은 물론 미국 헐리우드 영화 제작진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스페인과 미국의 공동제작 영화 정도로 보면 될 듯 하다.

 

오토마타(automata)는 영어 오토머튼(automaton)의 복수형이다.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 즉 로봇이라는 뜻이다 구어적 표현으로는 ‘로봇 같은 사람’이라고 쓰이기도 한다. 영화 제목을 오토마타, 즉 ‘로봇 같은 사람들’이라고 정한 것 역시 적잖은 함의가 느껴진다. 이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로봇 같은’ 존재는 인간일까, 아니면 진짜 로봇일까.

 

● 색다른 개념 ‘2대 프로토콜’

 

이미지 확대하기로봇 피해 보험사 직원 잭이 직접 로봇 진화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 인피니티엔터테인먼트 제공
로봇 피해 보험사 직원 잭이 직접 로봇 진화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 인피니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영화는 2044년의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사막화가 심해진 암울한 미래의 모습이 배경이다. 인간들은 환경이 통제된 도시에 산다. 발전된 기술 덕분에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두 팔과 두 다리가 달린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 실용화 돼 있다. 가사도우미나 공장 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로봇에 대한 규칙이라면 유명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인간보호, 명령복종, 로봇자신의 보호)이 유명하지만, 이 영화에선 독자적인 로봇 규칙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2대 프로토콜(규약)’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① 로봇은 생명체에 피해를 입혀선 안 된다
② 로봇은 자신이나 다른 기계를 고치거나 개조할 수 없다

 

고 정의하고 있다. 즉 두 가지 규약만큼은 어떤 로봇을 만들더라도 기본으로 넣어야 한다.

 

처음엔 이 2대 규약이 아시모프의 3원칙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첫 번째 규약은 두말할 나위 없이 로봇의 반항을 막기 위한 것으로, 아시모프의 3원칙 중 첫 번째 원칙과 비슷해 보인다. 이 때문에 ‘3원칙을 적당히 베껴 두 개로 줄인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세히 들여다 보면 이 2대 규약은 3원칙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만들어졌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규약에서, 굳이 인간이 아니라 ‘생명체’라고 정의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즉 감독이자 각본가인 가베 이바네즈는 로봇을 사람은 물론 개나 고양이 등 어떤 생명체에도 반항할 수 없는 존재, 즉 생명체가 주도하는 사회 속에서 가장 하위의 계급으로 본 것이 흥미롭다.

 

두 번째 규약을 처음 봤을 때는 ‘로봇이 로봇을 고치면, 사람은 수고를 덜 수 있으니 더 좋은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점차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규약은 결국 로봇이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 스스로 점점 똑똑해지는 상황, 즉 로봇의 ‘진화’를 막기 위한 장치로 그 의미가 컸다.

  

두 번째 규약은 인간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인간이 직접 만든 로봇은 인간에게 저항하지 않게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능을 갖게 된 로봇이 인간처럼 다른 로봇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이 허용된다면, 그렇게 개조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진 로봇은 인간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우려도 높아진다. 2대 프로토콜은 이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최적의 통제장치였던 셈이다.

 

로봇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 즉 영생의 개념에서 바라보는 작품은 간혹 등장하지만, 로봇이 세대를 반복하며 진화하는 개념을 담은 것은 아시모프의 3원칙은 물론 다른 어떤 소설, 영화 등의 작품에서도 주제의 전면에 드러난 적이 없었다. 기자가 이 영화의 2대 프로토콜을 감히 SF의 거장 아시모프의 3대 프로토콜에 비견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 로봇은 생명체처럼 ‘진화’할 수 있을까

 

이미지 확대하기영화에선 로봇 스스로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불에 탄 로봇을 살펴보고 있는 주인공.
영화에선 로봇이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불에 탄 로봇을 살펴보고 있는 주인공.

생명체의 한 세대는 의외로 길다. 고등동물의 경우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의 주기를 여러차례 반복해야만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한 민족이 키가 더 커지고, 지능이 더 높아지고, 팔다리가 길어지는 등의 변화를 기대하려면 적어도 수십~수백 년 이상의 막대한 시간이 소요된다.

 

반대로 로봇은 기계장치를 새롭게 만들거나 개조하면 그뿐이다. 늦어도 며칠이면 한 세대를 반복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대만 개발에 성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장점을 수많은 개체를 개조해 순식간에 나누어 주는 것도 가능하다. 로봇이 스스로를 제작, 개조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그 변화는 인간이 수만 년에 걸쳐 쌓아온 진화를 삽시간에 뛰어 넘을 수 있다. 이는 로봇이 인간이 범접하기 힘든 아득한 존재로 올라설 위험이 있다는 뜻으로도 통한다.

 

영화 오토마타는 로봇 스스로 진화를 시도하는 것을 목격한 보험 설계사 ‘잭 바칸’의 눈으로 본 로봇의 진화를 담고 있다. 로봇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 남겨 놓기 위한 만들어진 사회적인 규칙과 문화, 그리고 그런 프로토콜을 깨고 스스로 진화하려는 몇몇 로봇의 존재가 얽힌 복잡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감독은 영화 내내 이런 설정을 통해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지, 로봇을 우리는 과연 기계로만 보아야 할 것인지, 만약 로봇을 종으로 본다면, 그 종의 진화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관객들에게 철저하게 묻고 또 묻는다.

 

이런 면 때문인지 영화 오토마타에 대한 관객의  평가는 양극단으로 나뉜다. 대부분의 다른 SF물처럼 화려한 로봇들의 액션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은 ‘너무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며 끝없이 혹평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편에선 ‘철학이 있는 인공지능 로봇 영화’라며 극찬을 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영상미, 기술적 해석 등에서 현실감 높은 수작

 

이미지 확대하기다른 로봇을 창조할 수 있는 ‘보스 로봇’과 마주한 잭

다른 로봇을 창조할 수 있는 ‘보스 로봇’과 마주한 잭 

 

로봇에게 기본적인 규약을 가르치기는 어렵지 않다. 소프트웨어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논리회로를 구성할 수 있다. 일단 명령을 받아들이면 반드시 기본적으로 구성해 둔 조건과 비교해 본 다음, 조건에 부합할 경우에만 시행하도록 구성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을 미리 기본으로 장착해 둔다면 어떤 로봇이든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만들 수 있다.

 

오토마타에선 완전하진 않지만 이 부분에 대한 배려도 엿볼 수 있다. 오토마타에 등장하는 모든 로봇에는 소프트웨어가 밀봉된 동그란 공 모양의 코어가 들어 있는데, 전문 기술자들도 이 부분에 쉽게 손댈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코어는 기본적인 제어소프트웨어는 물론 로봇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에너지원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주인공 잭 바칸이 독자적으로 자신을 수리하거나 다른 로봇을 고치려 드는 로봇은 이 코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파괴된 불량(?) 로봇의 코어를 차지하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 속 로봇이 어떻게 인간에 필적한 지능을 얻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묘사돼 있지 않아 과학적 완성도를 평하기 어렵지만, 독자적인 두뇌 시스템, 신경계 등을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 즉 현대사회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연산장치를 응용한 인공지능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영화의 배경을 2040년대로 비교적 멀리 잡은 점, 컴퓨터 그래픽을 줄이고 실사 부품을 사용해 현실감 있게 촬영한 점 등에서 사실감이 상당히 높다. 기술적 논란이 될 만한 기술적 부분은 교묘하게 감춰두는 친절함(?)도 엿보인다. 이 정도 설정이라면 과학적으로‘도 ‘이런 로봇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느냐’는 논란에선 한 발 떨어져서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영화의 막바지에, 자아를 깨우치고 스스로 진화를 시작한 로봇들이 ‘인간의 도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폐허가 된 사막으로 떠난다. 이곳까지 따라갔던 잭 바칸은 우두머리 격 로봇과 대화하며 ‘너희는 한낱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로봇은 ‘너희는 한낱 유인원이 아니냐’고 되받는다. 이 대사가, 스스로 진화를 시작한 로봇의 눈으로 바라보면, 인간은 그저 조금 더 똑똑한 유인원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감독의 경고로 여겨진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영화 오토마타는 로봇의 발전에 대한 독특한 철학과 해석을 담은 수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화려한 액션보다는, SF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볼 것을 추천한다.


※ 편집자주.
 영화와 과학기술은 서로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영화 속 미래기술이 현실의 과학기술자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과학자들의 첨단 연구결과가 새로운 영화 탄생에 모티브가 되기도 하지요. 영화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는 일은 과학의 발전에도 분명 큰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이런 의미에서 가까운 미래에 가장 큰 조명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로봇기술에 대해 고정 코너를 연재합니다. 수많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봇이 과학기술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점은 비현실적인 그저 공상(空想)의 설정인지를 짚어주는 ‘영화 속 로봇 이야기’를 월 2회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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