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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청바지 파란색 인디고, 녹색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2018년 01월 23일 12:30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중략)
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이미지 확대하기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 GIB 제공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 GIB 제공

 

“야, 그런 여자가 어딨냐?”

“바랄 걸 바라야지...”

 

라디오에서 변진섭 씨의 ‘희망사항’이 흘러나오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한다. 필자는 마감이나 약속이 없는 날이면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화실에 가서 오후를 보낸다. 평일에는 그림에 취미가 있는 주부 몇 분과 함께 있을 때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화실 라디오는 7080 노래를 주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에 채널이 고정돼 있다.

 

신년 특집으로 청취자가 뽑은 가수 열네 명 가운데 매일 한 명의 (역시 청취자가 뽑은) 대표곡 세 곡을 들려주는데 이날은 변진섭 씨 차례였다.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희망사항들이 줄줄 이어지자 이런 반응들이 나온 것이다. 필자는 속으로 웃었는데, 곡이 발표된 1989년 이래 이 노래가 나올 때마다 주변 여성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혀를 찼기 때문이다.

 

한편 변진섭 씨의 주옥같은 발라드 곡들을 제치고 ‘희망사항’이 세 곡 안에 뽑혔다는 게 좀 뜻밖이기도 했다. 물론 곡의 경쾌한 리듬도 인상적이지만 특히 가사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흔적을 남긴 게 아닐까. 사실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보면 한 편의 뛰어난 서정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참고로 ‘희망사항’은 노영심 씨가 작사작곡했다.

 

이 노래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청바지와 티셔츠 조합은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이 봄에서 가을 사이 즐겨 입는 대표적인 패션이다. 몸매가 뛰어난 여성 연예인들의 화보에도 이런 차림이 빠지지 않는다.

 

 

대체할 파란색 염료 없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청바지는 참 이상한 옷이다. 데님(denim)이라고 불리는 면 소재의 천이 그렇게 고급스러운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물이 빠진다는, 옷감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어떤 옷보다도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에서 매년 팔리는 청바지는 40억 벌이 넘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대부분 청바지 한두 벌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청바지의 놀라운 성공 요인 가운데 일등공신이 바로 물 빠짐이다. 파란 염료로 물들인 데님이라도 물이 빠지지 않는다면 청바지가 아니다. 그리고 청바지 특유의 물 빠짐 현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파란색 염료는 딱 하나다. 바로 인디고(indigo)다. 인디고의 연간 생산량은 5만 톤(2011년)인데 이 가운데 95%가 데님을 물들이는 데 쓰인다. 청바지가 인디고의 존재의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디고 염료는 왜 천에 꼭 들러붙어있지 못하고 빨 때마다 조금씩 물이 빠지는 걸까.

 

보통 천을 염색할 때는 염료와 함께 매염제를 넣어줘 염료가 천의 섬유와 단단히 결합하게 한다. 합성화학이 발달하면서 매염제가 필요 없는 염료도 여럿 나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입은 옷 대다수는 염료 분자가 섬유 분자와 화학적으로 결합돼 있기 때문에 세탁을 할 때 물이 빠지는 걸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면 인디고는 미세한 결정이 섬유 표면에 흡착돼 있는 상태다. 따라서 세탁 과정에서 마찰로 결정이 떨어져 나간다(인디고 분자가 물에 녹는 게 아니다). 평소 착용할 때도 조금씩 인디고 결정이 떨어져 나간다. 섬유 표면에 붙어있는 인디고 결정이 물리적 힘을 받아 떨어져 나가는 것이므로 천의 돌출된 부분에 있는 섬유 표면, 즉 마찰을 많이 받는 쪽의 탈색이 더 심하다. 입은 지 꽤 되는 청바지를 자세히 보면 실의 노출된 부분이 더 많이 탈색돼 있고 틈새에는 색이 꽤 남아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청바지의 물 빠짐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래 입어 자연스럽게 물이 빠진 상태를 기다리지 못해 물을 뺀 상태의 청바지를 사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해 번역출간된 ‘청바지 인류학’이라는 책에서 로베르타 사사텔리 이탈리아 밀라노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의복과 달리 청바지 표면의 반복 착용과 색 바랜 흔적 속에 숨은 시간은 일종의 부가가치로 여겨진다”고 쓰고 있다.

 

이미지 확대하기전통 청바지는 인디고로 염색한 데님이라는 면 소재 직물로 만든다(왼쪽). 청바지는 인디고가 미세한 인디고 결정이 섬유 깊이 침투하지 못하고 표면에 흡착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마찰 같은 물리적 힘을 받으면 떨어져 나간다. 따라서 청바지를 오래 입으면 돌출된 부분은 인디고 결정이 떨어져 나가 하얗게 되지만 마찰에서 보호되는 틈새는 여전히 파란색이 남아있다(오른쪽). 그 결과 물 빠진 청바지의 전형적인 느낌이 나온다. - wikipidia(cc) 제공
전통 청바지는 인디고로 염색한 데님이라는 면 소재 직물로 만든다(왼쪽). 청바지는 인디고가 미세한 인디고 결정이 섬유 깊이 침투하지 못하고 표면에 흡착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마찰 같은 물리적 힘을 받으면 떨어져 나간다. 따라서 청바지를 오래 입으면 돌출된 부분은 인디고 결정이 떨어져 나가 하얗게 되지만 마찰에서 보호되는 틈새는 여전히 파란색이 남아있다(오른쪽). 그 결과 물 빠진 청바지의 전형적인 느낌이 나온다. - wikipidia(cc) 제공

 

염색공장 수질오염 심각

 

이처럼 인디고는 청바지의 정체성을 부여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환경의 측면에서는 좀 문제가 있다. 원래 인디고는 여러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 염료이지만 청바지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므로 오늘날 대부분은 화학적으로 합성한 것이다. 즉 석유에서 얻는 벤젠을 출발물질로 해서 유독한 화합물인 아닐린을 거쳐 인독실(indoxyl)이 만들어지고 이를 산화해 인디고가 나온다.

 

 

이미지 확대하기인디고는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물에 녹는 형태인 류코인디고로 환원시켜 염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 쓰이는 환원제가 설비를 부식시킬 뿐 아니라 염색과정에서 나온 폐수가 방류되면서 심각한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한 청바지 염색 공장에서 나온 폐수로 인디고가 포함돼 있어 파랗다. - Greenpeace Asia 제공
인디고는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물에 녹는 형태인 류코인디고로 환원시켜 염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 쓰이는 환원제가 설비를 부식시킬 뿐 아니라 염색과정에서 나온 폐수가 방류되면서 심각한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한 청바지 염색 공장에서 나온 폐수로 인디고가 포함돼 있어 파랗다. - Greenpeace Asia 제공

그런데 인디고는 물에 녹지 않는 분자라는 게 문제다. 염료가 물에 안 녹으면 실이나 천을 염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염색공장에서는 먼저 인디고를 물에 녹을 수 있는 류코인디고(leucoindigo)형태로 바꿔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디티온산나트륨(sodium dithionite) 같은 강력한 환원제를 써야 한다. 그런데 디티온산나트륨은 쉽게 분해돼 황산염이나 아황산염이 되고 그 결과 공장설비가 부식될 수 있다. 게다가 염색공장 대다수는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 있는데 염색과정에서 나온 폐수를 정화하지 않고 강으로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류코인디고(류코는 하얗다는 뜻으로, 인디고는 류코인디로로 환원되면 파란색이 사라진다)가 녹아 있는 물에 실이나 천을 담근 뒤 꺼내 널어두면 공기 중의 산소가 류코인디고를 산화시켜 다시 인디고로 바꾼다. 인디고는 용해도가 낮으므로 분자들끼리 모여 결정으로 석출되는데 이게 섬유 표면에 닿으면 달라붙어 염색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흡착된 인디고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색이 연하다. 따라서 이 과정을 반복해야 점점 짙은 파란색이 나온다.

 

 

쪽의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어

 

버클리 캘리포니아대가 주축이 된 미국 공동연구자들은 인디고를 만드는 식물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박테리아인 대장균에서 재현해 친환경 인디고 제조 및 염색을 구현했다고 학술지 ‘네이처 화학생물학’ 1월 8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여러 식물이 인디고 색소를 만드는데 대표적인 예가 남아시아 원산인 인디고(Indigofera속)와 동아시아의 쪽(Polygonum속), 유럽의 대청(Isatis속)이다. 이 가운데 인디고와 쪽에서 양질의 인디고 색소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식물의 잎은 파랗지 않고 평범한 녹색이다. 인디고 색소가 인디칸(indican)이란 배당체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배당체(glycoside)란 보통은 불용성인 분자에 포도당 같은 당분자가 붙어 수용성을 띠게 된 구조다. 식물은 불용성인 분자를 고농도로 저장하기 위해 배당체 형태로 바꾸는 전략을 즐겨 쓴다. 당전이효소가 이 반응을 촉매한다. 한편 식물은 배당체를 다시 해체하는 배당체가수분해효소도 갖고 있어 필요할 때 사용한다.

 

이미지 확대하기쪽을 비롯한 많은 식물이 인디고를 만들고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이를 파란색소로 이용해왔다. 식물은 잎 세포의 액포에 물에 녹는 배당체인 인디칸 형태로 저장하고 엽록체에 이를 분해하는 효소를 갖고 있다. 세포가 손상돼 액포가 분해효소에 노출되면 배당체가 인독실로 분해되고 최종적으로 인디고로 산화돼 남색을 띄게 된다. 식물이 왜 인디고를 만드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상은 배당체가수분해효소를 처리한 쪽의 액포로 인디고 결정이 생긴 부분이 파랗게 보인다. - ‘플랜트셀 생리학’ 제공
쪽을 비롯한 많은 식물이 인디고를 만들고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이를 파란색소로 이용해왔다. 식물은 잎 세포의 액포에 물에 녹는 배당체인 인디칸 형태로 저장하고 엽록체에 이를 분해하는 효소를 갖고 있다. 세포가 손상돼 액포가 분해효소에 노출되면 배당체가 인독실로 분해되고 최종적으로 인디고로 산화돼 남색을 띄게 된다. 식물이 왜 인디고를 만드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상은 배당체가수분해효소를 처리한 쪽의 액포로 인디고 결정이 생긴 부분이 파랗게 보인다. - ‘플랜트셀 생리학’ 제공 

예를 들어 쪽의 잎 세포를 들여다보면 인디칸은 액포에 저장돼 있고 배당체가수분해효소는 엽록체에 들어있어 서로 만나지 않는다. 그런데 잎 조직이 손상돼 한 세포 안에 있는 액포와 엽록체가 터져 내용물이 섞이게 되면 배당체가수분해효소가 인디칸을 인독실로 분해한다. 뒤이어 인독실 두 분자가 만나 류코인디고가 만들어지고 이게 인디고로 산화하면서 짙은 청색, 즉 남색을 띄게 된다. 무지개색 빨주노초파남보의 ‘남(藍)’이 영어로 indigo다.

 

식물은 아미노산 트립토판을 원료로 해서 인돌을 거쳐 인독실을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독실을 배당체인 인디칸으로 바꿔주는 당전이효소의 유전자는 규명하지 못한 상태였다. 연구자들은 게놈 연구가 잘 돼 있는 쪽을 선택해 이 효소의 유전자를 찾았고 마침내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찾은 쪽의 당전이효소를 대장균에 집어넣었다. 트립토판이 잔뜩 들어있는 배지에서 이 대장균을 배양시키자 배당체인 인디칸을 만들어냈다.

 

한편 또 다른 대장균에는 박테리아 바실러스(Bacillus circulans)의 배당체가수분해효소(BglA) 유전자를 집어넣었다. 즉 대장균 한 균주는 인디칸을 다른 균주는 배당체가수분해효소를 만드는 미생물 공장인 셈이다.

이미지 확대하기인디고의 연간 생산량은 5만 톤으로 대부분 석유에서 합성한다. 그리고 염색 과정에서 환원제(Na2S2O4)를 써 물에 녹는 형태인 류코인디고로 바꿔야 한다(위). 최근 미국의 연구자들은 식물의 잎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대장균에서 재현해 배당체인 인디칸을 만들어 섬유에 뿌려준 뒤 이를 인독실로 분해하는 효소가 들어있는 용액에 담가 인디고 염색을 하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아래). 오른쪽은 인독실과 그 배당체인 인디칸의 전환 반응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각각 당전이효소(UGT)와 배당체가수분해효소(BGL)가 반응을 촉매한다. - ‘네이처 화학생물학’ 제공
인디고의 연간 생산량은 5만 톤으로 대부분 석유에서 합성한다. 그리고 염색 과정에서 환원제(Na2S2O4)를 써 물에 녹는 형태인 류코인디고로 바꿔야 한다(위). 최근 미국의 연구자들은 식물의 잎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대장균에서 재현해 배당체인 인디칸을 만들어 섬유에 뿌려준 뒤 이를 인독실로 분해하는 효소가 들어있는 용액에 담가 인디고 염색을 하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아래). 오른쪽은 인독실과 그 배당체인 인디칸의 전환 반응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각각 당전이효소(UGT)와 배당체가수분해효소(BGL)가 반응을 촉매한다. - ‘네이처 화학생물학’ 제공

이렇게 얻은 인디칸 용액을 흰 데님 천에 뿌려준 뒤 배당체가수분해효소 용액에 담그고 나서 말리자 천이 점점 파랗게 바뀌었다.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하자 충분히 짙은 청색이 나왔다. 즉 인디고 제조에서 염색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유해한 화합물이 개입되지 않는 친환경 방법이 성공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당장 산업현장에 적용되기는 어렵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는 촉매 효율이 더 높고 반응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효소를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청바지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염색 과정의 환경오염 문제도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친환경 인디고 제조 및 염색법이 채택돼야 할 것이다. 미래에는 블루진에도 녹색(green)을 입혀야 한다는 말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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