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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VS 5층 다세대, 지진에 더 취약한 필로티는?

2018년 01월 04일 19:00

작년 말 발생한 포항 지진과 제천 화재로 필로티의 안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규모 5.4 지진으로 필로티 기둥이 처참히 부서졌고, 49명이 숨진 화재 발생 건물도 필로티 구조였다.

 

이후 필로티가 구조적으로 지진 같은 재난에 취약하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이유는 뭘까?

 

필로티 구조를 만든 사람은 현대 건축사를 대표하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다. 르 코르뷔지에가 1927년 발표한 ‘근대건축의 5원칙’에 필로티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다. 그전까지의 건물은 주로 두터운 벽체가 건물 전체의 하중을 지탱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런 벽체의 역할을 철근 콘크리트 기둥인 필로티(Pilotis)가 대체하도록 건물을 설계했다.

 

벽체가 더 이상 구조적인 역할을 하지 않자 건물 1층을 개방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건물 하중을 지지하는 기둥을 가리키는 말인 필로티는 개방된 공간을 비롯해 건물 전체를 통칭하는 단어가 됐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필로티 구조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 Valueyou(Wikipedia) 제공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필로티 구조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 Valueyou(Wikipedia) 제공


● 필로티 구조를 사람으로 치면 ‘머리가 큰 사람’

 

그렇다면 실제로 필로티는 1층에 벽체가 있는 건물에 비해 더 불안정할까?

 

김장훈 아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건물을 사람에 비유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필로티 구조는 머리가 큰 사람으로 비유할 수 있다”며 “같은 부재를 사용해서 짓고, 같은 질량을 지녔다고 해도 필로티는 벽체가 있는 건물에 비해 무게중심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게중심이 높아지면 평소에도 불안정하지만 지진 횡력에 더 취약해진다. 즉 지진에 의해 땅이 좌우로 흔들리면 더 쉽게 휘청거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건물 전체에서 가장 약한 부분인 필로티가 부서지고,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크다.

 

필로티가 비대칭 구조라면 지진 취약도는 더 높아진다. 필로티의 절반만 벽이 채워진 건물을 예로 들어 보자. 지진이 발생하면 벽이 채워진 곳에서는 지진에 저항하는 힘이 생긴다. 반면 기둥만 있는 곳은 지진 저항력이 떨어지고, 벽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건물이 비틀어지게 된다. 결국 기둥 쪽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지진 횡력에 의해 보통 건물(왼쪽)은 모든 층이 힘을 나눠서 받지만, 필로티 건물(오른쪽)은 개방된 1층에 집중적으로 힘을 받는다. - L. Teresa Guevara-Perez 제공
지진 횡력에 의해 보통 건물(왼쪽)은 모든 층이 힘을 나눠서 받지만, 필로티 건물(오른쪽)은 개방된 1층에 집중적으로 힘을 받는다. - L. Teresa Guevara-Perez 제공

국내에서 필로티 건물은 도시에 밀집돼 있다.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도시형생활주택 중에 필로티 구조는 1만 2321단지에 달한다. 이중 대부분이 서울과 경기, 부산 등 대도시에 몰려있다.

 

좁은 공간에 들어서는 도시형생활주택은 1층을 주차장으로 활용한다. 차량 이동을 위해 건물 입구가 되는 계단실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즉, 국내에 있는 거의 모든 필로티 건물은 지진에 취약한 비대칭 구조다.

 


● 필로티 구조로 지은 초고층 주상복합, 괜찮을까?

 

도시형생활주택뿐 아니라 요즘은 초고층 주상복합처럼 규모가 큰 건물도 필로티 구조로 짓는 사례가 많아졌다. 1층을 없애면서 사생활 노출을 줄이고, 대신 빈 공간은 주차장 외의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로티 구조의 초고층 주상복합은 이보다 낮고 작은 규모의 도시형생활주택보다 지진에 더 취약하지는 않을까? 김 교수는 “동역학적 측면으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다세대 저층 필로티 건축물이 지진에 더 취약할 가능성이 크다”며 “초고층 건물은 저층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해 지진으로 인한 진동의 영향을 더 적게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11월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부서진 필로티 기둥. - 뉴시스 제공
지난 2017년 11월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부서진 필로티 기둥. - 뉴시스 제공

또한 초고층 건물은 대부분 최근에 지어져서 내진 설계가 잘 되어있는 편이다. 반면 2005년 이전 지어진 5층 이하 건물은 당시 건축법에 따라 내진설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 11월 발생한 포항 지진으로 필로티 기둥이 부서져 내린 다세대 주택도 4층 규모였다.

 

현행법 상에는 면적 500㎡이상, 2층 이상 건물에는 내진설계를 해야한다. 하지만 5층 이하 건물은 건축구조기술사가 아닌 건축사가 내진설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 필로티 건축물 내진 보강 방법은?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국내 건축물의 내진설계 비율은 6.8%에 불과하다. 지진 발생시 피해 위험이 높은 학교 건물의 경우에도 내진설계 비율은 25%에 미치지 못한다. 학교 건물 4개 중에 단 한 곳만 내진설계가 적용된 셈이다.

 

즉 학교와 필로티 도시형생활주택을 비롯해 기존에 지어진 저층 건물에는 내진 보강이 필요하다. 내진 보강에는 지진력에 견디는 내력벽을 추가로 설치하거나, 철골을 보강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댐퍼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건물 외벽의 빈 공간에 내진 성능을 높이는 댐퍼를 보강한 모습. - ENKA Structure services 제공
건물 외벽의 빈 공간에 내진 성능을 높이는 댐퍼를 보강한 모습. - ENKA Structure services 제공

하지만 내진설계와 내진 보강을 적용한 건물이라도 제대로 시공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실제 국내 내진 보강 공사가 설계도와 달리 엉터리로 진행된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 교수는 “1994년 미국 캘리포니아 노스리지 지역에 규모 6.7의 지진이 난 적이 있는데, 당시 많은 건축물이 피해를 입었다”며 “이후 캘리포니아 전체 건물의 내진 수준을 높이기 위해 30년의 기간을 잡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내진 설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올바른 내진설계와 내진 보강을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사회 전체적 변화가 꾸준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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