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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최전선]체액서 스스로 헤엄치며 목표 찾아…‘나노로봇’ 암치료 새 희망

2017년 12월 29일 10:00

 

이미지 확대하기김민준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나선형 마이크로로봇. 환경에 따라 3가지로 형태를 바꾸며, 그에 따라 속도가 변한다. - 김민준 제공
김민준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나선형 마이크로로봇. 환경에 따라 3가지로 형태를 바꾸며, 그에 따라 속도가 변한다. - 김민준 제공

 

연말을 보름 앞두고 김민준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 기계공학과 석좌교수의 연구실은 바빴다. 연구원들이 사람 몸통만 한 고리 6개를 가로세로로 복잡하게 얽어 지름 70cm의 기이한 장비를 새로 설치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장난스럽게 장비에 ‘데스스타(Death Star)’라는 이름을 출력해 붙였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전투용 거대 인공위성 이름이다. 공상과학(SF)물에 나올 것 같이 생긴 이 장비는 손수 만든 3차원 자기장 제어기. 병원에서 볼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MRI) 장비처럼, 고리 모양의 장치에 전류가 흐르며 초당 200번 진동하는 자기장을 고리 안쪽 공간에 발생시킨다. 김 교수팀이 이 장비를 개발한 이유는 동물과 인간의 몸속에 침투시킬 목적으로 개발 중인 바이오공학의 첨병, 나노로봇을 무선 조종하기 위해서다.

 

  나노로봇은 주변 환경을 인지해 스스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수십~수백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인공 로봇이다. 미생물인 세균(박테리아)의 수십분의 1 크기로, 혈액 등 체액 안에서 자체 추진력으로 헤엄쳐 움직인다. 이때 외부에서 자기장을 이용해 방향과 속도를 지정해 주면 암세포 등 목적지를 정확히 찾아가거나 공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현재 의학 영상에 활용하고 있는 MRI 장비를 그대로 써서 로봇을 조종할 수 있도록 자기장 제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곧 동물실험을 통해 검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기장의 도움으로 목적지에 도착한 나노로봇은 세포를 뚫고 들어가거나, 운반해 온 약물을 표적 세포 안에 쏟아붓는 약물전달 치료를 할 수 있다.

 

이미지 확대하기김민준 교수의 나노로봇 제작법 - AIP/김민준 제공
김민준 교수의 나노로봇 제작법 - AIP/김민준 제공


  로봇이라고 불리지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로봇과는 제조 방법이 다르다. 크기가 너무 작아 전통적인 반도체 제조 공정으로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레이저를 이용해 제작을 시도한 연구팀도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김 교수팀은 미생물인 박테리아의 꼬리(편모)를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편모는 대장균이나, 식중독 균의 일종인 살모넬라 등 박테리아의 끝에 달린 추진 기관으로 채찍같이 긴 모습이 특징이다. 편모는 모터와 비슷하게 생긴 기관을 통해 박테리아의 몸통과 연결돼 있으며, 마치 프로펠러처럼 회전하며 추진력을 낸다. 주변 환경에 따라 모양과 길이를 바꿔 회전력을 조절해 추진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박테리아는 인간으로 치면 100m를 2초에 주파하는 놀라운 속도로 헤엄을 친다”며 “편모는 유체 환경에 따라 길이와 형태가 변하는 생물학적 센서이자 액추에이터(구동기)”라고 말했다.


  김 교수팀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의 일종인 살모넬라에 힘을 가해 편모만 떼어낸 뒤 열을 가해 녹였다. 이렇게 해서 얻은 편모 단백질을 미리 준비한 화학 용액 안에서 식혀 긴 나선 모양으로 재조합했다. 나선형으로 만든 이유는, 나노 세계에서는 물이 마치 꿀처럼 끈적끈적해지기 때문에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배의 노처럼 반복적인 움직임을 이용해서는 늪에 빠진 것처럼 전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펠러처럼 회전해야만 ‘물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만든 나선형 단백질에 지름 40~400nm의 자석 입자에 붙여 나노로봇을 완성하고 올해 10월 온라인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이 로봇은 체액의 산성도 등 환경 변화에 따라 느슨하고 긴 나선 모양에서 짧게 꼬인 나선까지 세 가지로 형태를 바꿀 수 있고, 그에 따라 속도를 바꿀 수 있다.

 

이미지 확대하기마이크로미터 단위의 구슬을 연결해 만든 모듈형 나노로봇. - 김민준 제공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구슬을 연결해 만든 모듈형 나노로봇. - 김민준 제공


  한 달 뒤인 11월 28일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나노로봇을 ‘응용물리레터스재료’에 발표했다. 마치 길고 가는 소시지 위에 두꺼운 빵가루를 입혀 핫도그를 만들 듯, 편모 나노로봇의 표면에 딱딱한 물질인 실리카를 편모의 10배 두께(200nm)로 입혔다. 여기에 미세한 니켈 금속을 코팅해 몸체 전체를 자기장으로 조종하게 바꿨다. 속도가 한층 빨라져서 박테리아의 거의 88% 수준의 속도로 헤엄칠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100m를 2.3초에 달리는 속도다. 적(암세포)을 만나면 이 속도로 돌진해 뚫어버린다. 김 교수는 “10월 개발한 나노로봇은 유연해 장애물을 피해 헤엄치기에 유리하고, 11월 개발한 나노로봇은 단단해 속도와 관통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나노로봇은 다양한 형태로 연구되고 있다. 구슬 형태의 나노로봇 여러 개를 마치 열차처럼 여러 개 연결해 목적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모듈화 나노로봇’, 헤엄치지 않고 조직 위를 ‘걷는’ 나노로봇 등이 있다. 올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팀은 DNA 분자가 서로 결합하는 성질을 이용해, 인체 안 조직에 부착한 채 6nm씩 위치를 옮기며 주변을 탐사하는 나노로봇을 만들어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이미지 확대하기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 지능시스템연구소가 개발한 정자형 로봇. 마이크로미터 단위이며 꼬리를 움직이며 헤엄친다. - 막스플랑크연구회 제공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 지능시스템연구소가 개발한 정자형 로봇. 마이크로미터 단위이며 꼬리를 움직이며 헤엄친다. - 막스플랑크연구회 제공


  크기가 수십~수백 배 더 큰 ‘마이크로로봇’은 나노로봇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한 곳에서 쓰인다. 합성 물질로 나선이나 고깔 모양을 만든 뒤 정자 등 세포를 포획해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는 로봇이 대표적이다. 활동성이 약한 정자를 도와 불임을 치료할 수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지능시스템연구소는 올해 3월 아예 정자 모양을 한 마이크로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고분자용액에 철 입자를 넣어서 정자 모양의 구조물을 만든 뒤 자기장을 주기적으로 변화시켜 주면 마치 진짜 정자처럼 꼬리를 흔들며 헤엄친다. 1초에 0.1mm를 이동해 비교적 빠른 속력을 자랑하지만 로봇의 몸통 자체도 그만큼 커서 나노로봇에 비해 이동 효율은 낮은 편이다. 연구자들은 미세한 칼이나 집게를 부착해 눈 수술이나 뇌 수술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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